어린이집 방학 마지막날이라길래 한동안 또 보기 힘들테니 나갔다.
할 일은 있었지만 그냥 미루고 나갔다.
조카를 만나려거든 나중에도 할 일을 미뤄야 할 것이니까, 그리고 그 일의 막중함은 삶이 앞으로 나갈 수록 커질 것 같아서 오늘 만나기로 했다.
나는 삼촌이라 일찌감치 역할이 정해져있다. 이모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거의 엄마노릇을 했던 이모에게 달려가는 조카가 넘어지지 않을까 받칠 준비 하는 역할. 놀다가 힘든 거 도와주는 역할. 나는 언제나 조카의 안전장치이고 싶다. 이모도 물론 잘하겠지만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이 여자아이는 자기 엄마, 나의 둘째 누나를 아주 닮았다. 볼때마다 참 반갑다. 누나가 아이를 낳아서, 내가 모르는 누나의 어릴적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만 같아서.
하루 만나고 돌아올 때 조카가 서운해서 풀이 죽었다. 집에 가야지. 근데 가면 자기가 서운하잖아, 하고 말이다. 기분이 안좋단다. 서운하단다.
조카는 어릴 때부터 만나면 헤어지는 거야, 헤어져야 다시 만나는 거야, 하는 말을 많이 들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겨우 만 세살 짜리 꼬마아이가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또래 아이들보다 좀 더 빨리 어른스러운 표현으로 우리를 붙잡기 위해 말이 유창한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울려고 했는데, 손등에 묻은 눈물자국을 봤는데 돌아설 땐 눈물 흘린 적 없다는 듯 우리를 본다.
조카를 만나면 늘 미안하다. 자기도 어렸으면서 더 어린 나를 챙기느라 누나노릇만 해야했던 어린 누나가 이제 나에게 은혜 갚을 기회를 주는 것만 같은데, 그 어렸던 누나보다 내가 조카를 못 챙기는 것 같아서. 누나의 걱정과 부탁은 단순했는데. 단순한 것이 이리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