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참 재밌는 게임들이 많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30대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쉴새없이 게임을 해 왔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꾸준하게 플레이한 게임은 다름아닌 스타크래프트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처음 출시된 이후 15년 정도는 스타 외에 다른 게임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간은 다른 게임으로의 외도(?)에 나섰습니다. 몇년만에 와우도 다시 해봤고, 리그오브레전드, 오버워치, 히오스까지 잠시라도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대세가 된 게임을 다시 한 것이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새는 다시 스타를 다시 해보고 있습니다. 사실 지인들 사이에서 대세 게임은 배틀그라운드입니다만 솔직히 FPS 종류는 잘 할 자신도 없고 객관적으로 볼 때 제 에임이 너무 최악인지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타를 다시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기본적으로는 팀게임에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이유가 큽니다.
롤이나 옵치, 히오스 모두 랜덤한 사람들과 팀게임이 강제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많습니다만 저의 의지나 실력과는 무관하게 아군의 행동 때문에 게임을 진 적도 많습니다.
물론 제가 실력이 좋아서 멱살캐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이미 30살이 넘은 굳은 손으로 '캐리'는 무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버워치를 한창 할 때는 주로 디바, 루시우, 젠야타를 플레이했는데, 아무래도 캐리력이 부족한 것 같아 한동안 맥크리를 연습했습니다. 제 아이디와 맞물려서 맥크리를 고를 때면 팀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긴 했습니다만, 객관적으로 제 맥크리 실력은 2400점의 맥크리로 보기는 매우 민망한 실력이었습니다. 근거리전에서는 피스키퍼를 상당히 잘 썼다고 자평합니다만, 조금만 거리가 벌어져도 샷발에서 밀려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일이 많았습니다.
디바를 할 때는 정확한 궁 타이밍을 맞추려면 팀원이 잘해줘야 합니다. 라인하르트 망치와 연계할 때가 제일 적절한데, 아무리 팀보이스로 라인하르트 궁타이밍 알려달라, 궁쓰기 전에 한마디만 해달라고 해도 절대 이야기 안해줍니다. 루시우 패치로 힐 사거리 줄어들었으니까 혼자 멀리 가시는 분은 힐을 줄 수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혼자 따로 나가다가 죽고 왜 힐 안주냐고 징징대는 소리도 여러번 들었습니다.
두어달 전 쯤, 한 친구의 권유로 오랜만에 스타를 잡았습니다. 꾸준히 스타 외길을 걸은 친구에게 연전연패 했습니다만, 몇판 하면서 슬슬 감도 잡고 있고, 전태규, 이성은 등 과거 프로게이머들의 강의 동영상 챙겨보면서 10년 전의 감각을 다시 떠올리고 있습니다.
스타에도 롤, 옵치와 마찬가지로 실력이 비슷한 사람과 경기를 할 수 있는 랭킹전 시스템이 있는데, 팀게임과 달리 스타의 랭킹전은 스트레스가 적습니다. 너무 실력이 떨어지는 상대와 붙으면 10분 정도에 대체로 승패가 갈리고 재미가 없습니다. 반면 너무 실력이 높은 상대와 붙으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저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떨어집니다. 스타를 한창 하다가 팀게임으로 넘어갔던 이유는 스타의 1:1 매칭이 사실상 랜덤이나 마찬가지고, 소위 '양민학살'을 즐기는 이들 때문에 1:1 대결에서 점점 재미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스타 1:1게임의 진짜 재미는 중후반 이후의 운영입니다. 양측 모두 자신이 원하는 기반시설을 다 세운 상태에서 얻어진 정보를 토대로 상대의 조합을 예측해 자신의 조합을 만들고, 한타 싸움에서 적절하게 스킬을 잘 써야 합니다. 중앙 한타 싸움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소규모 교전이 이어지기 때문에 점점 손이 바빠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손목이 아파오기도 합니다.
실력이 비슷한 이와 게임을 하게 되면 20분, 30분이 넘어가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분명히 내가 유리한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혹시 상대의 다른 노림수는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일꾼은 기본이고 정보를 알기 위해 약간 병력의 손해를 감수할 때도 있습니다. 자원과 병력, 업그레이드 모든 면에서 내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확인하기 전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게임이 끝난 뒤에는 리마스터에서 자동으로 저장해준 리플레이를 확인합니다. 일방적으로 학살했거나 학살당한 게임은 사실 리플레이로 배울 것이 거의 없습니다. 상대가 나보다 APM이 100 이상 높은 경우 상대의 전략을 알아도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상대와의 경기 리플레이는 어떤 것을 봐도 다 배울 점이 있습니다. 이 타이밍에 게이트를 더 늘렸어야 했는데, 이 타이밍에 상대방 빈집털이를 가는 판단을 했었어야 했는데 등등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플레이에서도 나는 이렇게 하는데 얘는 이렇게 했구나. 내가 테크트리를 빨리 올렸을 때 상대의 이런 대처가 효율적이구나 등을 알 수가 있습니다.
뭐 이런저런 말이 많았는데 결론은 간단합니다. 제가 스타크래프트를 다시 시작한 이유는, 스타크래프트가 팀게임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컸습니다. 이겨도 내가 잘해서 이긴거고, 져도 내가 못해서 진 것입니다. 롤이나 히오스에도 리플레이 기능이 있긴 합니다만, 스타는 롤, 히오스보다 가벼운 게임이기 때문인지 리플레이를 통해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도 훨씬 쉽습니다.
8월에 리마스터가 나왔을 때는 서버랙이 못해먹을 수준인 데다가, 리마스터인 사람과 아닌 사람이 경기할 경우 갑자기 튕겨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리마스터가 나오고 잠시만 즐기다가 금세 스타판을 떠났는데, 지금은 서버랙도 거의 없는 것 같고, 여러 자잘한 버그들이 대부분 사라진 것 같습니다.
팀게임 스트레스에 지친 분들이라면 오랜만에 스타 1:1 등급전을 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빠른무한도 많이 즐기고 있으니, 가볍게 빨무 한판 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주의 : 리마스터를 구입하면 절대로 구버전 스타를 할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한두번 하고 말 것이라면 리마스터를 사지 말고 무료로 풀린 구버전 스타를 하는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