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린이날이었다.
내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다.
중학생이 어린이일까?
올해는 이런 고민을 했다.
중학생은 청소년이지 어린이는 아니다.
어린이가 아니니까 어린이날에 주는 선물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아들하고 등산을 했다.
등산은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말을 나누었다.
내 아들은 약간의 장애가 있다.
육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이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나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최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어제는 등산하기에 매우 좋은 날이었다.
산을 오른다는 것.
그것은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인생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고,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느끼는 어려움, 인내심, 정상으로 오르는 희망 등이 생각되었다.
아들은 이러한 인생의 주제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다.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질 뿐.
아들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난관이 생각된다.
장애인으로서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일까?
다행스러운 것은 아들은 정신적인 장애 때문에 다른 사람의 차별이나 냉대와 같은 시선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혹시 그러한 어려움을 아는 것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인생을 아주 편하게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남이 나에 대해서 갖고 있는 시선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장애.
이러한 장애가 오히려 아들에게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아들이 "힘들다"고 한다.
나는 아들이 많은 것을 느끼길 원한다.
세상과 결별되어 혼자만의 세계에 젖어 있지 않고, 이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고, 그 가운데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경험했으면 한다.
산은 관대하다.
다양한 생명체의 생존을 허용한다.
나무가 있고, 곤충이 있고, 새가 있고, 작은 생명체가 있다.
그 가운데 인간도 등산을 한다.
산의 포용성!
산의 넓은 아량을 배우고 싶다.
넓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산에 심겨진 푸르름을 느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