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여행]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서 슬프다 - 서대문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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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이

나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유관순 열사 유언 -

keydon@keydon의 역사 여행 시리즈
이번 편은 지난 편에 이어서
서대문 형무소를 소개해드리는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편 다시 보기 - 단두대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이번 편에서는 서대문 형무소의
여옥사, 전시장, 운동장, 추모비, 기타시설을
저와 함께 둘러 보도록 할게요~

여옥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유관순 열사 등.....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수감하였던
여구치감입니다.

옥사에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하던 물건들과
여러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겨울에 차디찬 옥사 바닥에서
얼마나 발이 시리셨을까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수형기록표입니다.
간호사, 버스안내양, 경리, 학생, 주부 등.....
직업도 다채롭습니다.

그중 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표가 눈에 띄었습니다~
도대체 유관순 열사의 죄목은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대한 사람이다!
나라를 위해 독립 만세를 부른 것도 죄가 되느냐?

유관순 열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딸들은 차디찬 옥사에서
모진 수난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보여줬습니다.

위의 사진은 사형을 받기 전,
동료들 또는 착한 간수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주고 떠나기 위해 없는 재료를 어렵게 구해
직접 만든 것들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천사들이 왜 고통을 받다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요?

가슴 아픈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감옥에서 출산한 여성 수감자들은
더 힘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동료 여성 수감자들은 자신의 밥도 부족한데
출산한 동료 수감자를 위해서 자신들의
밥을 기꺼이 덜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중 유관순과 임명애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유관순 열사는 혹독한 한겨울에
임명애의 아이를 위해
오줌에 절어 꽝꽝 언 아이의 기저귀를 자신의 허리춤에 넣어
체온으로 녹여서 주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는
이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지하에서
석방을 단, 석 달 남기고
지속적인 고문과 고문 후유증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납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오기 전에는

누구보다 말괄량이였으며
누구보다 장난꾸러기였고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았던...

그녀가 숨을 거둔 나이는 겨우 18세였습니다...............

차디찬 옥사에서 내 한 몸 기꺼이 내놓으며
나라의 독립을 끝까지 외치다 가신 당신들을

100년이 가고...... 1,000년이 가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여옥사를 빠져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데 벽화가 눈에 띄더군요~
영화 "암살"의 포스터 같은데 잘 그렸네요~

길가에 커다란 무쇠솥이 있더라구요~
수감자들의 밥을 지었던 무쇠솥이라고 하던데
사람들이 저 안으로 동전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좋은데 쓰이길 기원합니다~
솥이 워낙 커서 동전이 정말 작아 보이네요~

여기는 수감자들이 운동하던 격벽장입니다.
수감자들 상호 간에 대화를 방지하고
감시를 쉽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개의
칸막이를 만들어서 분리 수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방차가 와서 훈련을 하더라구요~
밖은 어수선하여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전시장으로 한 번 가볼까요?

<을사늑약문>
을사오적 이완용 등이 나라를 팔아먹어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조선은 이 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당합니다.

<태극기 목각판>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수감자들의 손목에 채웠던 "수갑"입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 형태는 여전하네요~

수감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킬 때,
도망가지 못하게 허리에 채웠던 "요"라고 합니다~
일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저 무거운 것을 허리에 찼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수감자들에게 밥을 배식하기 위한 도구라고 하네요~
틀의 높이를 조정할 수 있어서~
밥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간수들이 차고 다니던 칼입니다
저 칼은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얼마나 괴롭혔을까요?

전시장을 빠져나와 마지막으로
추모비를 향해 찾아갑니다~

추모비 모양이 독특한데
"민족의 혼 그릇"이라고 하여~
내부에는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최근에 일본의 총리가 여기에 와서
무릎을 꿇고 묵념을 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이후,
독재 정권기에는 민주화를 이루고자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희생당한 현장입니다.

이러한 고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불굴의 의지로 독립과 민주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 저력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현장을
기회가 되시면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기를
추천해드립니다.


여행지 정보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통일로 251

관련 링크
● http://www.sscmc.or.kr


[역사 여행]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서 슬프다 - 서대문 형무소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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