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폴리애나와 벌
1시 30분이 되자 티머시가 폴리와 폴리애나를 태우고 800미터 정도 떨어진 네다섯 군데의 좋은 양장점을 다녔다.
폴리애나에게 새 옷을 사 준다고 하자 사람들이 모두 흥분했다. 폴리는 화산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다 마침내 땅을 밟은 사람처럼 사지에 힘이 풀려 안도하며 상점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을 상대하던 점원들의 얼굴은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폴리애나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일주일 내내 깔깔대며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폴리애나 역시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상점을 나왔다. 한 점원에게는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선교 전도품이나 부인회를 통해서만 옷을 얻어 입었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가게에서 새 옷을 사다니 정말 멋져요. 옷이 맞지 않아 단을 접거나 내릴 필요도 없고요!”
쇼핑을 하고 나니 오후가 다 가 버렸다. 저녁을 먹고 폴리가 외출한 사이, 폴리애나는 정원에서 톰 할아버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설거지를 마친 낸시와 뒤쪽 현관에서 수다를 떨었다.
톰 할아버지에게 엄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폴리애나는 너무 행복했다. 낸시는 10킬로미터나 떨어진 ‘코너스’라는 곳에 있는 작은 농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곳에는 어머니와 사랑스러운 동생들이 살고 있었다. 낸시는 폴리가 허락한다면 언젠가 폴리애나를 집으로 데려가 가족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동생들은 이름도 사랑스러워요. 아가씨도 마음에 들 거예요. ‘앨저넌’과 ‘플로라벨’, ‘에스텔’이거든요. 전 ‘낸시’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요!” 낸시가 한숨을 쉬었다.
“낸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 예쁜 이름이 아니잖아요. 제가 첫째라 엄마가 아직 예쁜 이름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을 많이 읽지 못해서 그래요.”
“하지만 난 ‘낸시’란 이름이 정말 좋은걸요. 낸시는 그냥 낸시니까요.” 폴리애나가 말했다.
“흥! ‘클라리사 마벨’이라는 이름이 더 예쁘지 않아요? 그런 이름이었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뭔가 당당해 보이잖아요!”
폴리애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이름이 ‘헵시바’가 아닌 걸 기뻐하세요.”
“헵시바!”
“네. 화이트 아주머니의 이름이 헵시바거든요. 남편은 ‘헵’이라고 부르는데 아주머니는 그걸 아주 싫어하셨어요. 남편이 ‘헵, 헵!’이라고 부를 때면 그 다음에 ‘만세!’라고 외칠 것 같대요. 그렇게 놀림을 받는 건 싫다고 하셨어요.”
낸시의 우울했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아가씬 정말 놀라운 분이세요! 이젠 ‘낸시’라고 불릴 때마다 ‘헵, 헵!’이 떠올라 웃게 될 거예요. 전 정말 기뻐요.” 낸시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깜짝 놀란 눈으로 폴리애나를 바라보았다. “아, 아가씨는 내 이름이 ‘헵시바’가 아니라는 걸 기뻐하라는 뜻으로 그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폴리애나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크게 웃었다.
“낸시, 바로 그거예요! 난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놀이를 하고 있는 때가 있죠. 낸시도 그런 때가 많을 거예요. 그리고 기뻐할 거리를 찾는 데 익숙해지죠. 열심히 찾기만 하면 모든 일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답니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죠.” 낸시가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8시 30분이 되자 폴리애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방충망이 아직 오지 않았고 꼭 닫힌 다락방은 찌는 듯 더웠다. 폴리애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두 개의 닫힌 창문을 바라보았지만 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옷을 벗어 단정히 개어 놓은 다음 기도를 하고 촛불을 껐다. 그리고 침대로 올라갔다.
폴리애나는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도 없었다. 분명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어둠 속을 더듬어 방문을 열었다.
다락방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동쪽 지붕창에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이 은빛 길을 만들어 주고 있을 뿐이었다. 어둠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은 듯, 폴리애나는 빠른 숨을 내쉬고 은빛 길을 따라 창문까지 걸어갔다.
이 창문에는 방충망이 있기를 바랐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바깥은 요정의 나라처럼 아름다웠다. 뜨거운 뺨과 손에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창가에 더 가까이 다가가 간절하게 밖을 내다보던 폴리애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창문 바로 아래 마차 출입구에 폴리 이모의 넓고 평평한 베란다 지붕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폴리애나의 마음은 갈망으로 가득 찼다. 저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폴리애나는 걱정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저곳 어딘가에 자신의 뜨거운 다락방과 그보다 더 뜨거운 침대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무섭게 깔려 있어 팔로 더듬더듬 찾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베란다 지붕 위에는 달빛과 시원하고 달콤한 밤공기가 있었다.
내 침대가 저기에 있다면! 그리고 밖에서 자는 사람도 있을 텐데. 고향에 있는 조엘 하틀리라는 사람은 폐결핵 환자여서 밖에서 잠을 자야 했다.
문득 폴리애나는 이 다락방 창문 근처에 죽 걸려 있던 길고 흰 자루가 생각났다. 낸시는 여름 동안 겨울옷을 그곳에 담아 보관한다고 말했었다. 조금 무서웠지만 폴리애나는 자루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침대로 쓸 두툼하고 부드러운 것을 하나 골랐다(그 안에는 폴리의 물개가죽 코트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포개어 베개로 쓸 좀 더 얇은 것도 하나, 이불용으로 또 하나를 골랐다(마지막 것은 너무 얇아서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준비를 마친 폴리애나는 기뻐 날뛰며 달빛이 비치는 창가로 다시 걸어갔다. 창문을 열고 짐들을 아래 지붕으로 던진 다음 자신도 뛰어내렸다. 그리고 뒤로 창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다리에 더러운 것들을 묻혀 옮긴다는 파리를 잊지 않은 것이다.
아, 이렇게 시원한 것을! 폴리애나는 너무 기뻐 깡총깡총 뛰면서 신선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발아래 양철 지붕이 따닥 소리를 내며 울려퍼지는 것이 듣기 좋았다. 폴리애나는 지붕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두세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무덥고 작은 방에서 나와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지붕은 매우 넓었고 평평해서 떨어질 위험도 없었다. 마침내 폴리애나는 만족한 숨을 내쉬며 물개가죽 코트 요 위에 베개와 이불 자루를 놓고 누웠다.
“방충망이 오지 않아서 기뻐.” 폴리애나가 별들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게 있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야!”
아래층의 베란다 옆에 있는 폴리의 방에서는 폴리가 허겁지겁 가운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얼굴은 두려움에 하얗게 질려 있었다. 조금 전 떨리는 목소리로 티머시와 통화를 끝낸 참이었다.
“빨리 좀 와줘! 톰 할아버지도 같이. 손전등도 가지고 와. 베란다 지붕에 누가 있어. 장미 아치를 타고 올라온 게 분명해. 다락방의 동쪽 창문을 통해 바로 저택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고. 이곳으로 통하는 문은 잠가 두었지만. 하여튼 빨리 와줘!”
잠시 후, 막 잠이 들었던 폴리애나는 손전등 불빛과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근처에 놓인 사다리 꼭대기에 티머시가 보였고, 톰 할아버지는 막 창문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모는 할아버지 뒤에서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폴리애나, 이게 다 뭐니?” 폴리가 외쳤다.
폴리애나가 졸린 눈을 깜박이며 일어나 앉았다.
“어, 톰 할아버지. 폴리 이모!” 폴리애나가 더듬거렸다.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조엘 사틀리처럼 폐결핵에 걸린 건 아니에요. 그냥 너무 더워서요. 다락방이요. 하지만 파리들이 더러운 것들을 묻혀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은 꼭 닫아 두었어요, 폴리 이모.”
티머시가 급히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톰 할아버지도 재빨리 손전등을 폴리에게 건네주고는 티머시를 뒤따랐다. 폴리는 두 남자가 사라질 때까지 힘껏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엄하게 말했다.
“폴리애나, 그 자루들을 내게 주고 이리 들어와라. 이런 별난 애가 다 있다니!” 잠시 후 폴리는 손에 손전등을 들고 폴리애나와 함께 다락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깥의 시원한 바람을 쐰 폴리애나에게는 집 안 공기가 훨씬 더 숨 막히게 느껴졌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긴 한숨을 한 번 내뱉을 뿐이었다.
계단 꼭대기에서 폴리가 건조하게 말했다.
“오늘 밤은 내 침대에서 나와 함께 자자. 방충망은 내일 도착할 거야. 그때까지는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널 두는 것이 내 의무인 것 같구나.”
폴리애나가 숨을 들이쉬었다.
“이모와 함께, 이모 침대에서요?” 폴리애나가 미친 듯 기뻐하며 외쳤다. “아, 폴리 이모, 정말 감사해요! 언젠간 누군가 함께 자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부인회가 아닌 가족과 말이에요. 부인회원들과는 함께 자본 적이 있거든요. 세상에! 방충망이 오지 않아서 너무 기뻐요! 그렇죠, 이모?”
폴리는 아무 대답 없이 앞을 보고 걷기만 했다. 사실 폴리는 이상하게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폴리애나가 도착한 이후 벌써 세 번째이다. 폴리애나에게 벌을 주었는데, 벌써 세 번째나 그녀의 벌을 마치 특별한 상이라도 되는 양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폴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