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북스 전자책 폴리애나 1] 1장. 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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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폴 리 

어느 6월 아침, 폴리 해링턴은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이렇게 서두르는 일은 거의 없다. 차분한 태도가 그녀의 자랑거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던 낸시가 놀란 눈으로 해링턴을 바라보았다. 낸시가 해링턴의 부엌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불과 2개월 전이었지만, 여주인이 수선을 떨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낸시!” 

“네, 마님.” 낸시는 여전히 주전자를 닦으며 명랑하게 대답했다. 

“낸시.” 이번에는 폴리의 목소리에 매우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이야기할 때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내 말을 들어 줬으면 좋겠어.” 

당황한 낸시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급하게 닦고 있던 주전자와 수세미를 내려놓다가 바닥에 그만 엎을 뻔했다. 낸시가 더욱 당황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알겠습니다, 마님.” 낸시는 주전자를 바로 잡아 급히 올려놓으며 더듬거렸다. “오늘 아침에 이 설거지거리를 빨리 끝내 놓으라고 특별히 말씀하셔서 그랬을 뿐이에요.” 

여주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만 됐어, 낸시. 변명 따윈 듣고 싶지 않아. 앞으로 조심 좀 해.”

“네, 마님.” 낸시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도대체 주인마님을 기쁘게 할 방법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아했다. 낸시는 한 번도 ‘가정부’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픈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데다가 동생들도 셋이나 있어, 자신이 가족을 먹여 살릴 수밖에 없었다. 언덕 위의 이 멋진 집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낸시는 무척 기뻤다. 그녀는 여섯 마일이나 떨어진 ‘코너스’라는 곳에서 살았는데, 폴리 해링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읍에서 가장 부유한 오래된 해링턴가의 여주인이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이 두 달 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폴리가 항상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엄격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바닥에 칼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거나 문이 쾅 닫히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칼이나 문이 잠잠할 때에도 웃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아침 일이 끝나면 계단 위에 있는 작은 다락방을 깨끗이 치우고 침대를 정리해 줘. 바닥도 쓸고. 물론 트렁크와 상자들을 모두 정리한 다음에 해야겠지.” 

“네, 마님. 그런데 트렁크와 상자들은 어디로 치울까요?” 

“앞 다락에 갖다 놔.” 폴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너에게도 말을 해 둬야겠지. 조카인 폴리애나 휘티어라는 애가 여기서 나와 함께 살게 될 거야. 열한 살이고, 저 다락방을 내줄 생각이야.” 

“그렇게 어린 아가씨가 온다고요, 마님? 정말 잘됐네요.” 낸시는 ‘코너스’에 있는 자신의 어린 여동생들이 늘 집을 밝고 따뜻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렇게 외쳤다. 

“잘됐다고? 글쎄,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저 이 상황에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지. 난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거든.” 폴리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낸시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물론 그렇지요, 마님. 저는 그저 이곳에 어린 아가씨가 오면 집에 활기가 넘치고 마님께도 좋을 것 같아서….” 낸시가 더듬거렸다. 

“고맙구나. 당장은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야.” 폴리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마님도 언니분의 따님을 만나고 싶으시겠죠?” 낸시가 위험을 무릅쓰고 말했다. 자신만은 이 외로운 어린아이를 어떻게든 따뜻하게 맞아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터였다. 

폴리는 오만하게 얼굴을 치켜들며 말했다. 

“낸시, 어쩌다 보니 언니란 사람이 바보 같은 결혼을 하고 가뜩이나 붐비는 세상에 불필요한 아이까지 낳았는데, 내가 어떻게 이 아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돌볼 수 있겠어?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어. 구석구석 방 청소나 깨끗이 해둬.” 폴리는 차갑게 말하고 방을 나가 버렸다. 

“네, 마님.” 낸시는 반쯤 마른 주전자를 집어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말라붙어 다시 헹구어야 했다. 

방으로 돌아온 폴리는 멀리 떨어진 서부의 어떤 마을에서 이틀 전 날아온 편지를 다시 한 번 꺼내 들었다. 자신에게 달갑지 않은 놀라움을 선사한 편지였다. 버몬트 벨딩스빌, 폴리 해링턴 앞으로 되어 있는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부인, 2주 전 존 휘티어 목사님이 열한 살 된 따님만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음을 알려 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사실 그분이 남긴 것은 책 몇 권이 전부입니다. 부인도 잘 아시겠지만 그분은 이 작은 선교회의 목사로, 월급이 변변치 않았으니까요. 

목사님이 부인의 돌아가신 언니의 남편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양쪽 집안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목사님께 들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부인께서 언니를 위해 이 아이를 맡아 키워 주실 것이라 믿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지요. 

부인께서 이 편지를 받으실 때쯤이면 이 어린아이는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상태일 것입니다. 부인께서 아이를 맡아 주실 수 있으시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이를 바로 데려오라고 허락하신다면, 곧 동부로 떠날 부부가 있으니 아이를 보스턴까지 데리고 가 벨딩스빌 열차를 태워 주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폴리애나가 도착할 날짜와 열차편은 미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러마이어 화이트” 

폴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편지를 접어 봉투에 밀어 넣었다. 그녀는 어제 당연히 아이를 맡겠노라 답장을 보냈다. 자신의 의무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했다. 그 의무가 아무리 내키지 않는 것이라도 말이다. 

폴리는 편지를 손에 든 채 이 아이의 엄마였던 제니 언니를 떠올렸다. 언니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젊은 목사와 결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한 부잣집 남자가 언니와 결혼하길 원했고 가족들도 목사보다는 그 남자를 훨씬 좋아했다. 하지만 언니는 그렇지 않았다. 부잣집 남자는 돈만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나이도 더 많았다. 그와 달리 목사에게는 젊은이의 이상과 열정이 가득했고 사랑이 충만했다. 결국 언니는 목사와 결혼했고, 전도사의 아내로 남부로 떠나 버렸다. 

그 후 언니와는 연락이 끊겼다. 그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막내딸 폴리는 그 당시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전도사의 아내가 된 제니와 인연을 끊었다. 제니가 몇 번인가 편지를 보냈고 막내 아이 이름을 두 동생인 폴리와 안나의 이름을 따 “폴리애나”라 지었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이것이 제니가 보낸 마지막 편지였다. 몇 년 후 목사로부터 언니가 죽었다는 짧지만 비통에 잠긴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서부의 한 작은 마을 소인이 찍혀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언덕 위 큰 저택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폴리는 멀리까지 뻗어 있는 골짜기를 내다보며 지난 25년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 마흔 살이 된 그녀는 세상에 오직 혼자였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수 년 동안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수천 달러와 이 집의 여주인 노릇을 해왔다. 그녀의 외로운 삶을 불쌍히 여긴 몇몇 사람들이 친구나 함께 살 사람을 구하라고 충고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들의 동정이나 조언 따윈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은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폴리는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조용한 것은 더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폴리는 입을 꼭 다문 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자신이 좋은 여성이며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시행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폴리애나라니! 이름도 정말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케이트북스 전자책 폴리애나 1] 1장. 폴 리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