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
오늘 전국소년체육대회 태권도 대표 최종 선발전이 있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대거 출전하였다. 난 체육부장교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데, 학교 체육교육의 총괄 기획을 담당하는 자리라, 격려차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오후에 방문하였다.
작년에 전국소년체전에 시 대표로 출전했던 우리 학교의 여학생은 5학년의 나이로 6학년들을 모두 물리치고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올해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그 학생은 학교 앞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관장님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 대회가 있을 때면, 다른 도장에서는 그 여학생이 출전하는 체급을 피하는 일도 생길 정도로 아이의 기량은 출중하다.
작년에 시 대표로 출전했던 우리 학교 선수는 1명이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최종 선발전 결과, 4명이 소년체전 대표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태권도 감독 선생님에게 조금 전 전해 들었다. 한 학교에서, 하나의 태권도장에서 4명의 태권도 시 대표를 배출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의 뛰어난 성적은 관장님의 지도 역량으로부터 비롯된다. 선천적인 자질이 있는 한두 명을 훈련시켜 훌륭한 선수로 길러내는 건 우연히 가능할지 모르지만, 선천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아이들을 훈련시켜 높은 수준에 이르게 하는 것은 지도자의 특별한 역량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최고의 제다이 요다 밑에서 다음 세대의 최고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가 만들어졌듯이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최고에 이르기 위한 필수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태권도장은 아이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태권도 외에 여러 가지 놀이와 스포츠를 접목하여 활동한다. 심지어 영어를 가르쳐주는 태권도장도 있다. 우리 학교 앞 관장님도 언젠가 그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힘들게 운동하는 걸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이 놀이 위주로 활동하는 다른 태권도장으로 몰린다는 것이다. 자신도 신념을 접고 그렇게 해볼까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정통 태권도만을 지도하는 길을 걸어왔다. 훈련이 힘들어도 태권도만을 집중한 아이들은 빠르게 성장했고,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태권도 문외한인 내가 경기를 관전할 때도, 관장님 아래서 배운 우리 학교 아이들의 기술이 월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까 낮엔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이미 앞선 대회에서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아이에게 관장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강한 발차기를 가급적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아이는 경기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경고가 누적되어 상대방에게 2점이나 주고 있었다. 갑자기 심판이 관장님에게 다가왔다. 정상적으로 경기 운영을 하라는 부탁을 한 것 같았다. 관장님이 아이에게 다시 뭔가를 지시했다. 아이의 날카롭고 강력한 발차기가 시작되었다. 0:2던 포인트는 순식간에 18:2로 뒤집혔다. 경기는 그걸로 마무리되었다. 상대팀 지도자는 경기를 포기한다는 의사를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 태권도 선수들을 보면 어떤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갖는 것과 ‘탁월한’ 경지에 이르는 것은 배울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음악가를 아버지로 둔 아이가 음악적인 두각을 드러내고 좋은 성과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아버지가 글 쓰는 사람이었다면, 내게 탁월한 글쓰기 선생이 있었더라면, 내 글쓰기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진작 벌써 몇 권의 책을 냈을 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상상도 해본다.
난 어쩌면, 우리 학교 아이들을 상대로 만나 당황하는 상대팀 아이들과 같은 처지인지도 모른다. 넘을 수 없는 상대방의 기량에 기가 질려 지레 움츠러들던 그 아이들처럼 가장 높은 곳은 바라지도 못하고, 적당한 경지에 오른 것으로 만족하고 마는.
그런 생각 때문인지 몰라도, 난 경기를 보면서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우리 학교 아이들보다 그 상대 아이들의 심정이 어떨까에 자꾸 마음이 갔다. 그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그 아이의 부모님과 지도자의 심정은 어떨까. 마음을 찌르는 아픔이 밀려왔다. 아무리 애써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확인하는 그 기분을 짐작하자니, 마음이 아렸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이겼을 때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면서도, 지고 나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상대방 선수들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