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의사였다.
일제시대 시절, 일본인을 모두 누르고 평양의전 수석 자리를 차지한
전국에서 꼽히는 외과의였다.
큰 돈을 벌 수도 있었건만,
두 번의 개원과 두 번의 폐원을 경험하셨다.
매번 공짜로 수술을 해주니,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거라고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돈 없다 그러면 병원비를 옥수수로 받고, 배추로 받고, 쌀로 받고...
덕분에 밥을 굶는 일은 없으셨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적십자 병원 원장을 지내셨다고 하고,
아직 라이온스 클럽이 의사들만 가입할 수 있었던 봉사단체였던 시절
라이온스 클럽의 초대 회장을 지내셨다고 하고...
그러다가 적십자 병원을 은퇴하신 후,
일본의 친구가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혜민서(무료진료병원)와 같은 일본의 기관에서
자신을 도와달라며.
그 길로 일본에 건너가 평생을 사람 살리는 일에 매진하셨던 할아버지.
어렸을 적
나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근엄한 표정으로
늘 책을 읽으셨던 분.
경미한 치매가 왔을 때,
글을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몇 시간이고 책을 거꾸로 든 채 뚫어져라 보고 계셨던 분.
가끔
만약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꼭 여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렇게 사셨느냐고.
할아버지의 선택은
왜 남들과 한참 달랐던 것이냐고.
대답을 들을 길이 없기에,
그저, 나 혼자 이야기해볼 뿐이다.
나도, 당신을 닮고 싶다고.
아주 많이 그립다고.
오랜만에 옛날 앨범을 정리하다가
외할아버지의 정겨운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제게 장기를 가르쳐주셨던게 외할아버지인데, 많이 그립네요.
외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브런치에 쓴 글이 있어 함께 올립니다.
https://brunch.co.kr/@kylelee/121
소중한 사람에게,
오늘은 사랑한단 말 한마디 건네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