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추억이 담긴 인생 노래가 있다.
내게는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콘서트가 최고로 꼽힌다.
한창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커피숍에 앉아,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 친구와 커피 한 잔 씩 시켜놓고는 네 시간, 다섯 시간을 버티던 그 시절. 그때는 듣고 싶은 음악 한 곡을 구매하기도 부담스러웠던,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버지 서재에서 발견한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콘서트 CD. 음악을 들으며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고개를 돌리니, 여자 친구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노래 한 곡에 서로의 마음을 담아 말없는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암울했던 불안의 시기를 함께 이겨냈던 보석 같은 추억이다.
그 후로 우리는 각자 취업에 성공했고, 함께 습관처럼 다양한 뮤지컬 음악을 들었다. 빌리,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싱글즈, 메리 포핀스, 시카고, 맘마미아, 광화문연가, 투란도트, 그리고 위키드. 위키드!
'불후의 명곡'에서 차지연이 부른 '세 박자'를 본 후, 차지연의 에너지에 매료되었더랬다. 그리고 차지연이 주연을 맡은 '위키드'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 자리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예매했다. 덕분에 한 달간 커피를 끊고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해야 했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배우들의 열연과 현장감 넘치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매료되어, 그날 밤은 꿈을 꾸듯 몽롱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뮤지컬을 보기는 처음이라는 아내와 한창 노래와 배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아쉽다.'
왜일까? 뭐가 그렇게 아쉬웠을까? 배우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에 취했던 그날 밤은 그토록 아름다웠는데. 무엇이 그렇게 아쉬웠던 것일까?
난생처음 대학로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보았을 때, 나는 스물일곱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배우들이 관객과 함께 잡담을 나누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았다. 배우 중 한 사람이 지인이었던 관계로 따로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그 광경은 무척 인상 깊었다. 배우와 관객 모두 같은 감상에 젖어, 같은 마음으로 미소를 나누며 기념을 남기는 광경. 마치 마법 같은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더랬다.
비록 초라하고 작은 소극장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 화려한 마법이 담긴 장소가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교차하며 생기는 그런 마법. 그런 소극장에 비해, 예술의 전당은 겉모습이 화려할지언정 마법을 지속시키는 마음의 교차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배우의 실력이 더 좋은데도 불구하고. 세트장의 완성도가 그토록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원어로 하는 공연이 듣고 싶어요."
집에 다 와갈 무렵, 아내가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내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안하다. 어렸을 적 미국에서 긴 시간을 보낸 탓에, 단순 정보전달이 아닌 감정을 나누는 소통에는 영어가 더 편하고, 또 공감하기가 더 좋다고. 아이튠즈에서 위키드 오리지널 트랙을 받아두었다가, 아내와 차를 탈 때면 늘 위키드를 틀곤 했다. 그 기간이 몇 달 계속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 가볼까? 뮤지컬 보러.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왕복 티켓 값이 얼만데! 돈이 썩어 나나? 그냥 뮤지컬 보겠다고 미국을 간다고?라고. 하지만 내게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매일같이 하는 일이 있다. 매일 밤 잠들기 30분 전, 아내와 나는 마주 앉아 홍차 한 잔을 내려 마신다. 지금은 함께 노력한 덕에 제법 근사한 식탁이 생겼지만, 신접살림에는 식탁조차 없어 원룸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맨바닥에 찻잔을 놓고는 했다.
촛불 하나와 향기로운 찻잔. 잔잔한 음악. 1.5룸의 숨 막히는 좁은 공간에서, 그것만으로 우리는 다시 마법에 걸렸다. 하루를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는 우리의 대화는 비좁은 공간을 시카고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그리스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보석이 빛나는 에메랄드 시티로 바꾸었다. 연애기간을 포함하여 아내와 함께한 7년의 시간 동안, 우리가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2017년 5월. 나의 충동적인 계획은 현실이 되었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내 몰래 예매했던 비행기표. 미국은 거의 20년 만이라는 아내의 미소. 뉴욕에 대한 그리움과 우리의 힘겨웠던 추억을 짬뽕시킨 멋진 선물이었다고, 스스로 대견해했다.
사실 공연 자체는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에서 보는 뮤지컬은 뭔가 많이 다르지 않을까 했던 기대감은 '굳이 뮤지컬을 보러 미국까지 오지는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안도감으로 대신했다. 그래, 앞으로는 오리지널 공연에 너무 목멜 필요 없겠다, 앞으로는 돈이 많이 굳겠구나,라고.
그렇다고 해서 공연이 별로였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공연은 멋졌다. 막이 내리고도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아 우리는 계속해서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대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관객이 빠져나가고 제법 한산해진 극장인데, 혹시 저 무대 위에 서서 기념사진이라도 찍으려는 걸까?
그렇게 '무슨 일이지?' 하고 두리번거리던 때에, 무대 한쪽 끝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아!
방금 전까지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쳤던 배우들이 눈 앞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 둘 무대에 걸터앉아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당연히 이런 자리가 있을 것을 알았는지, 끝까지 남아있던 관객들은 배우들의 소개에 박수로 화답했다.
"언제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극 중 어떤 노래가 가장 마음에 드나요?"
"다른 해보고 싶은 작품은 없나요?"
"배우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요?"
"극 중 XX곡에서 알파바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이라고 해석하셨나요?"
관객들은 손을 들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배우와 연출가, 스텝들은 각자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공연 이야기, 그리고 오늘의 연기에 대해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 이거였다! 나는 이런 소통에 목말라 있었다. 감동에 젖은 마음을 말없이 아내와 나누었듯이, 환한 미소로 함께 사진을 찍듯이, 나는 더 많은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곳에는 배우의 위엄도, 관객의 소비자로서의 권위도 없었다. 갑과 을이 아닌 대화. 격의 없이 진심을 담은 이야기. 돈을 받고 공연을 '파는' 배우와 돈을 내고 공연을 '사는' 관객의 자리가 아니었다. 한 작품을 너무도 사랑하는 배우와 관객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고, 공연과는 또 다른 설렘을 선물해주었다.
관객과 배우의 대화는 약 40분 가까이 이어졌다. 배우들은 관객의 질문이 모두 끝날 때까지 한 명도 자리를 먼저 뜨지 않았다.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작품을, 배우의 연기를, 그리고 음악의 편곡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공연장을 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어두웠다. 가까운 식료품 점에서 물과 음식을 사서 숙소로 들어온 뒤에도, 공연의 잔향은 여전히 우리 두 사람을 그림자처럼 따라오고 있었다.
"혹시 기억나요? 우리 신혼여행 때 철판요리 먹었었잖아요?"
아내가 말했다.
"응. 귀국하기 하루 전이었죠. 거기서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어요."
"그때, 여자아이 하나가 와서 이야기하던 거, 기억나요?"
기억난다. 공손하게 "저도 연어랑 랍스터를 먹을 수 있나요?" 하고 묻던, 정말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다.
저녁 뷔페여서 기본 요리들은 모두 제공되는 것이었지만, 우리 식사는 따로 금액을 지불하는 코스 요리였던 탓에 요리사는 아마도 난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몰디브 청년은 환하게 웃으며 소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꼬마 아가씨. 이 음식은 여기 신혼부부를 위한 특별한 요리예요. 다음에 멋진 남편과 함께 오면 그때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연어와 랍스터를 만들어 줄게요. 대신 오늘은 끝내주는 망고 셔벗을 가져다줄게요."
소녀는 밝게 웃으며 자리로 뛰어갔다. 아마도 소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연어와 랍스터를 먹을 그 날을, 내 운명의 왕자님 얼굴을 상상하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망고 셔벗을 먹지 않았을까.
마음을 나누는 일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능하다면 어깨 위에 걸친 '권위'같은 것은 내려놓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서로의 눈을 보고, 진심을 다해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다. 무대에 걸터앉은 청바지 차림의 배우가 아름답다. 소녀의 눈을 바라보며 셔벗 한 숟가락 건네주는 달콤한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