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스 쉐로 – 여왕 마고(Queen Marg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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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 쉐로 – 여왕 마고(Queen Margot)

쟁쟁한 프랑스의 모든 영화배우들이 총출동한 것과 같은 이 영화에서 단연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있다.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를 연기 하는 바르나 리지이다. 프랑스 영화이기에 프랑스 배우들이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연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는 이 프랑스라는 공간 안에서 굵직한 이탈리아 악센트를 사용하여, 불어를 구사한다. 그녀의 고집스럽고도 표독스러우며, 치밀함과 용단을 두루 갖춘 그러면서도 지독하게 편견에 가득 찬 기득권 귀족의 존재감은 그녀의 이탈리아 악센트 안에서 구현되는 불어를 통해서 영화 속에 명확하게 표현된다.
이자벨 아자니 역시도 너무나 훌륭하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수식은 불필요하다. 그녀는 이 영화를 찍을 당시 마흔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이십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이 영화는 이자벨 아자니가 자신의 스타성과 자신이 가진 모든 영화적 파워를 동원해서 스스로 기획에 적극 참여함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알고 있다. 그녀의 배우로서의 특징은 하나의 작품을 쥐고 흔드는 굉장한 스타성과 그녀 자신의 광기와 아름다움, 집착과 자학을 넘나드는 역동성이 넘치는 연기력에 있는데, 그것은 당시 프랑스적 영화의 세계와 그리 잘 맞는 특징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 영화의 제작에 적극 참여함으로 인해서 자신에 맞는 배역을 자신이 기획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샤를 9세를 연기하는 장 위 앙글라드 역시 매우 훌륭하다. 그는 유약하고, 병약하지만, 끝끝내 왕권을 쥔 왕으로서의 권위를 지켜보려는 유약하고 병적인 히스테리를 잘 드러낸다. 이것을 프랑스적 섬세함이라고 보아야 할까? 여동생 마고의 결혼식에 신교도를 모두 척살하라는 왕명을 내릴 때, 이 배우의 육체는 무언가의 홀린 듯이 진동하며, 고통스러워 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선량한 인물이다. 하지만 당시의 프랑스는 신교와 구교로 국가가 나뉜 상태였고, 그렇기에 국가의 통합을 위해서는 한 명의 유능한 국왕을 필요로 했다. 종교를 떠나서 국가를 하나의 통합된 전체이자 공동체로 만들 수 있는 그러한 국왕을 말이다. 하지만 이 유약한 왕은 그러한 역량을 자신에게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에게 모든 주체적인 면을 잠식당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그는 어머니가 신교를 척살하라는 명을 내릴 때, 그것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몸은 지진이 일어난 지반처럼 덜덜 떨게 된다. 이 이중적인 연기를 장 위 앙글라드가 기가 막히게 연기해 낸다.
프랑스의 세종대왕이라고 일컬어지는 명군 앙리 4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은 다니엘 오떼이유가 연기한다. 이 배우 역시도 선악이 모호하다. 내가 인상이 깊던 모습은 하네케의 히든이라는 영화에서 이중적인 방송국 피디를 연기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강단이 있고, 프랑스를 하나로 통합시키고픈 야심차면서도 선량한 신교도의 공작으로 등장한다. 그는 아자니가 연기하는 마고와 정략결혼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마고는 자신의 또 다른 애인과 사랑에 빠진 상황이고, 그렇다.
사실 이 영화를 세 번 정도 보았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시작이 굉장히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대륙의 대성당에서 펼쳐지는 마고와 나바르 공작 앙리의 결혼식은 스케일 면에서 압도적이다. 그리고 성 바르톨로메오 대학살의 과정까지도 영화는 속도감 있게 진행이 된다. 아자니의 모습은 등장할 때마다 아름다움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하지만 영화의 진행이 상당히 속도감이나 리듬감이 사실 갈수록 떨어진다. 영화의 속도의 조절은 편집에서 재빠르게 진행이 되는 듯싶지만 중간 중간마다 작위적인 설정 덕에 조금은 의구심이 들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근친상간과 학살, 도덕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 것도 없는 이 인간군상들 사이에서 영화의 초반은 상당히 인상을 끌게 만들지만,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이 되자, 어느 순간에는 그 같은 묘사나 인물의 행동이 따분하게 보이는 점도 있다.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아들들을 왕으로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예언은 프랑스의 왕이 나바르의 공작 앙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점도 사실 맥을 빠지게 한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다.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의 등장할 때마다 섬찟하게 놀라게 하는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치밀하고, 사악한 계략이 마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앙리는 죽지 않는다. 그는 살아서 프랑스의 왕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역사적 사실을 몰라도 영화의 긴장이 팽팽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영화가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하나를 놓아야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면 역사, 개인적 실존이면 실존. 이런 식으로 하나를 잡고 늘어져야 했을 것인데, 영화는 모두 다 끌고 가려한다. 그러니까 영화가 길어지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가 겹질러 지면서 문제가 커진다.
그것은 마고의 애인인 라 몰의 매 사냥 책에서 드러난다. 그 책이 온 프랑스를 헤집어 놓는다. 그 책을 우연히 서점에서 판매하는 라 몰. 왜냐하면 돈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 책이 또 어느샌가 메디시스 왕후의 손에 쥐어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책에 독을 일일이 한 장 한 장에 발라 놓고, 잘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풀도 먹여 놓은 상태이다. 그래야 침을 손가락에 묻혀서, 책을 넘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독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사람에게 들어갈 것이니까. 그녀는 이 책을 자신의 미운 사위 놈인 앙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의 책상에 놓아둔다. 그런데 그 책을 보게 되는 사람은 자신의 아들 샤를 9세이다. 샤를 9세는 그 책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그 사이 앙리는 건물 밑에서 한가하게 부하들과 놀고 있는 상황이다. 샤를 9세는 죽고, 그 책의 원래 주인이었던 라 몰도 죽는다. 자기 책이라, 책장 첫 페이지에 지 이름을 적어 놓아서... 책은 왕과 라 몰까지 골로 보낸다...
이런저런 계획은 치밀한 듯 하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그렇기에 이런 설정이 다소 아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상보다는 조금 더 큰 상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이 영화에 돌아간 심사위원 상도 이 영화에 컸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점이었다. 영화는 조금 더 무엇인가 깊이 들어가서 조금 더 그럴 듯한 것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영화는 그러지 못한다. 약간 산으로 가는 느낌도 있다.
나는 세 번째 볼 때에도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굵직한 이탈리아 악센트 속의 프랑스어는 매우 독특했다. 유려하게 흐르는 프랑스어 속에서 확 튄다. 그런데 그 억양이 프랑스 배우들을 어떤 의미에서 압도하는 느낌을 부여한다. 그녀의 시간은 적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하지만 역사는 그녀의 손을 들어 주지 않을 것이다.
글쎄, 이 영화를 다시 본 소감은 멋있는데, 뭔가 비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하지만 영화적인 미장셴과 색감 그리고 전체적인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같은 것이 영화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아쉽다는 느낌이 계속 드는 것 같다. 조금 쓸데없는 로맨스를 쳐냈으면, 영화의 중후반부에 조금 더 속도를 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