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통해서 린튼 가족의 이야기를 접했다.
윌리엄 린튼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호남 충청 지역에서 교육, 선교활동을 펼쳤다.
1919년 전북 군산의 만세운동을 지도하고, 3.1운동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전주 신흥학교 재직중에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40년 일제로부터 강제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6.25 전쟁이 마친 이후에는 대전기독학관을 설립했다. 이후 대전기독학관은 현재의 한남대학교에 이르게 된다.
정부는 2010년 윌리엄 린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의 아들 휴 드와이트 린튼은 순천에서 태어났다.
미 해군에 복무하며 6.25 때 인천상륙잔적에 참전했다.
휴 린튼은 한국을 너무나 사랑했다. 자녀들이 이런 아버지를 이해하는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휴 린튼은 음주운전을 하던 버스와의 충돌사고로 의식을 잃고 광주기독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두고 만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 존 린튼은 이후 119 구급 체계를 마련하는 데 도화선의 역할을 맡게 된다. 아버지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고로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 필요한 것이 이런 응급의료 체계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휴 린튼의 아들 존 린튼은 광주 민주화 시위 때 삼엄한 경계를 대사관 직원이라고 기지를 발휘하여전남 도청으로 진입하여 외신기자들에게 광주 시민들의 호소를 전하기도 했다.
왜 우리를 지켜야 할 총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는지 일단 그것부터 이해가 안 됩니다. ...사실대로.. 보고 느낀 것을 전해주십시오.
이후 미국인임에도 문무대에 입대했다. 이후 한국에서 최초로 한국형 구급차를 제작했다.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