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시절 - 우연찮게 알게 된 친구를 통해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NGO 단체를 알게 되었다.
미리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 와 있는 유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유학생들은 미리 본국에서 한국어를 어느 정도 공부해왔기 때문에 의사소통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일 주일에 한번 캠퍼스에서 만나 한국어 발음 부분을 도와주고, 같이 식사하기도 했다.
그 때는 중국 유학생이 많았다. 그리고 가끔씩 일본, 베트남, 몽골, 캐나다 등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다.
보통 중국 유학생의 경우는 학교 기숙사에서 한 학기 정도 생활하다 자취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음식을 직접 요리해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2년여 동안 유학생들과 함게 하면서 중국 유학생들 집에서 여러번 식사를 같이 했다.
그 때 만났던 중국 유학생들은 정말 존경받을만한 인품을 가진 이들이었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정부 입장에서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을 견지했던 이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중국을 배웠고, 그들의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다.
태극권 시연을 정말 멋지게 했던 친구, 유학생 후배들을 챙겼던 큰형님 같은 존재, 어쩌면 20대의 마지막 때에 소중한 추억을 갖게 해 주었던 존재들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 중국 유학생들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내도 중국 유학생들 몇명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공부가 마친 후 중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면 진한 아쉬움이 남았었다.
10여년이 지난 이후 그 때 만났던 학생들은 교수로.. 선생님으로.. 사업가로, 직장인으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아직 한국에 남아있는 이는 한국에서 교사로 재직중이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졸업한 이후 대학원을 다시 한국을 택했다. 감사를 아는 이였다. 당시 중국에서는 곤경에 빠진 이를 도와주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오빠는 중국에서 어려운 상황에 빠진 이를 돕다가 병원에 몇 주를 입원할 정도로 의가 있었던 이다.
이런 그가 이번 주에 결혼식을 한국에서 올린다고 한다.
선생님. 진심으로 초대합니다.
라는 메세지와 함게 청첩장을 보내왔다.
그의 초대에 이전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게 된다.
결혼식이 축복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