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표 어르신과 짧았던 추억

Words
261
Reading
2 min
Listen
Play
8y

2005년인가 2006년 새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야간 해안 경계 근무 시간이 끝나고 소대원 전원이 해안 순찰을 돌았습니다. 1월 1일이니 모두들 기분은 들떠 있었고, 공기는 아직 차가웠습니다. 해는 떠오르기 직전이어서 사방이 어두컴컴했습니다. 소대가 줄지어 걷는 가운데 왼쪽은 바닷물이 부서지며 쏴르르 소리를 내었습니다. 비몽사몽 상태이던 우리의 정신을 깨웠고, 오른쪽은 가파른 산이 있어서 음산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구역을 30분 정도 걸어서 나가면 포항 시내 북쪽 끄트머리의 작은 포구에 닿게됩니다. 보통은 여기까지가 제가 속해있던 소초의 순찰 구역이었기 때문에 아직 조용한 포구 마을의 방파제에서 잠깐 쉬다가 해안소초로 복귀를 하는게 해안 경계를 서던 시절 매일 아침의 임무 중 하나였습니다.

매일 가던 곳인데, 새해 첫날이었던 그날 새벽에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에쿠스 한대가 서 있었습니다. 평소에 고급차가 들어오지 않던 곳임은 물론이고 이 시간에 사람 구경을 하기 힘든 곳이기 때문에 소초장과 소대원들은 그 차를 향해서 걸어갔습니다. 저희가 걸어가자 덩치가 좋은 어르신이 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함께 차에서 내렸습니다.

저는 긴가 민가했지만 소초장님을 비롯한 몇몇 대원들은 곧장 그 사람이 이왕표 선수라는 걸 알아보았습니다. 소초장은 거리낌 없이 이왕표 선수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건냈고 이미 아는 사이라도 되는 듯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왕표 선수가 저희 대원들을 향해서 입을 열었습니다.

"조용하게 해돋이를 보고 싶어서 여기로 왔습니다. 추운데 나라를 지키느라 수고들 많으십니다."

말에는 자신감이 묻어났지만 고생하는 병사들을 향한 걱정과 따뜻한 마음도 묻어났습니다. 이왕표 선수가 조용히 해돋이를 즐길 수 있도록 저희는 간단하게 단체 사진 한장을 찍은 후 짧은 작별인사를 마치고 소초로 복귀하였습니다.

오늘 그의 소식을 듣고 군복무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가 떠 올랐습니다. 훈훈하게 웃던 그의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모든 건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될테지요. 저 역시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야 할테구요. 저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사람으로 살다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왕표 어르신과 짧았던 추억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