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주와 성장주라는 말장난

Words
647
Reading
3 min
Listen
Play
8y

가치주와 성장주를 비교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데 둘은 비교 대상도 아니거니와 순전히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상아탑이나 제도권에서 사용하는 정형화 된 밸류에이션 툴은 분명히 존재하고, 특정 기업에 대해서 사회가 합의하고 용인하는 적당한 가치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합의하면 그것이 가격이 되지만 그렇다고해서 가격이 그 기업의 적정가치를 반영하지는 못합니다. 시장은 조울증이 있어서 기업의 가격은 시시각각 변화하지만 기업의 가치가 실제로 매일 수백억, 수천억씩 요동치지는 않을겁니다.

보편적으로 가치 평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주당순이익(이하, EPS)와 주당순자산(이하, BPS)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시장은 이 EPS와 BPS에 멀티플을 적용하여 시장가격을 반영하지만 가격은 때때로 시장 참여자들의 미래 전망에 따라 크게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가치라는 단어는 어쩌면 군더더기 단어일 수 있습니다. 투자 대상에 대해서 싸다고 느끼는 사람은 매수를 할 것이고 비싸다고 느끼는 사람은 매도를 할 것 입니다. 똑같은 음식을 놓고도 호불호가 갈리고, 똑같은 미남미녀를 놓고도 누구는 예쁘고 잘 생겼다고 하는 반면에 또 다른 누구는 못생겼다 말하기도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가치란 '각자의 마음 속에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비싸다고 말하는 바이오관련 주식도 미래 가치를 생각해서 내가 싸다고 생각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고, 내가 보기에 아주 훌륭한 게임 회사도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가치가 전혀 없는 회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안전마진'이라는 개념입니다. 실제로 1,000원~1,300원 정도의 가치가 있는 주식이 있다면 가격이 700원이나 600원 밑으로 떨어질 때 매수하자는 간단한 전략입니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서 해당 기업의 경쟁력이 향후 몇년 이상 유지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적정가도 1,000~,1300원 정도라고 산출했다면 이 기업이 사람들의 오해로 폭락할 때, 가령 600원 정도의 가격으로 매수를 했다면 400~700원 정도의 안전마진을 확보한 상태에서 주식을 매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투자의 가장 기본적인 이념이고 철학입니다.

글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가치주에 투자하면 가치투자자고, 성장주에 투자하면 성장투자자라는 분류 자체가 왜 오류인지 이쯤에서 눈치를 채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치투자자들도 여러가지 분류가 있는데, BPS 중심의 안전마진에 치중하면 자산가치에 중점을 두는 투자자, EPS 성장률과 미래의 현금흐름, 그리고 미래의 성장을 미리 당겨와서 싸다고 생각하며 투자하는 투자자는 성장가치에 중점을 두는 성장가치 투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치주, 성장주라는 단어 자체가 군더더기인 이유입니다.

가치투자자라고 매해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이 늘어나는 회사를 안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가치투자자들도 실적이 성장하는 회사를 좋아합니다. 다만, 안전마진이 없는 것과도한 멀티플을 경계할 뿐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시장에는 강력한 회귀법칙이 존재합니다. 합의 가능한 적정한 수준의 멀티플을 넘어서 무한히 멀티플이 오버할 순 없습니다. 반대로, 아주 망해서 없어질 회사가 아니라면 투자자들이 일시적으로 외면해서 멀티플이 과소평가 된다고 해서 그것 역시 영원하지 않습니다. 안전마진만 충분하다면 가치투자자들도 되도록 매출과 이익이 성장하는 회사를 매수하려고 합니다.

EPS는 주가의 상방을 열어주고, BPS는 주가의 하방을 방어해줍니다. 가치투자자들이 BPS를 보는 것은 조금이라도 덜 잃기 위함이지 BPS 자체로 성장을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닙니다. 분석이 철저하게 되었고, 밸류에이션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안전마진을 확보하면 좋은점은 남들이 크게 손실을 낼 때, 손실 폭을 꽤 훌륭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고, 반대로 주가가 반등을 하기 시작하면 남들보다 더 큰 수익을 냅니다. 어떤 주식이 5만원이 되었다고 가정합시다. 누군 평단가가 2.5만원이고, 누군 1만원이고, 누군 5천원입니다. 순서대로 수익률은 100%, 600%, 900%입니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면 살수록 수익률은 폭발적으로 격차가 벌어집니다. 부의 크기와 인생 자체가 달라지는거죠. 가치투자자들은 중위험 고수익 내지는 저위험 중수익 전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치주와 성장주라는 멋 모르는 말장난을 하면서 도박주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예측은 대부분 틀리는데, 하물며 일개 개인투자자의 예측은 거의 다 틀립니다. 아무리 고성장을 하는 회사여도 PER을 100배, 500배씩 줄 수 있다면 그들은 예측이 아니라 도박을 하는겁니다. 물론 그들 예상대로 EPS가 매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 주가는 엄청난 속도로 오를거고 PER은 금방 낮아지긴 할겁니다. 그러나 그런 예측은 도박입니다.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언론에도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고, 5% 공시도 열심히 하시는 지인들 중에서도 차트에 줄을 직직 그어가며 자기합리화하는 식의 주술적 투자를 하는 사람이나, 엄청난 멀티플에 돈을 지불하고 허황된 미래를 예측해서 돈을 번 사람들은 한명도 없습니다.

주술적 차트를 볼 시간에 세상을 조금 더 보고, 그 회사에서 일 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을 보고, 독서와 여행을 꾸준히 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엄청난 멀티플에 돈을 배팅하겠다 마음 먹었으면 정규 시장 보다는 차라리 벤처캐피털을 만드는게 나을수도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장기 자본총계 변화

삼성전자의 장기 실적 변화

장기적으로 주가는 결국 EPS와 BPS의 규모를 따라간다. 투자는 기업의 미래 재무제표(특히, EPS와 BPS)를 예측하는 게임이다. 그걸로 땡이다. 허황된 예측은 맞으면 막대한 돈을 벌지만 틀리면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위험 대비 수익을 높이는 방법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예측하고, 적절히 대응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