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책을 집필할 일이 있어서, 3개월에 걸쳐서 약 500페이지 정도 되는 글을 힘겹게 쓴 적이 있다(처음 한 달은 헤맸고, 직장도 때려치고 남은 두 달동안 집중적으로 썼다). 책은 지능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앞부분에 지능의 역사에 대한 서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43억년 전 최초의 생명이 발생했을 때부터, 인간이 나오기까지, 인간들이 문명을 일으키고, 문명들이 충돌하는 역사도 간략히 기술해 보았다.
지금은 과학의 세기이고, 서양 근대화 이후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동서양 문명충돌이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서양의 완벽한 승리로 귀결됨으로써 우리는 동양의 자생적 문화보다 서양에서 시작된 문화를 더 많이 익히고 배우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서양문명이 동양문명보다 다소(혹은 훨씬) 우월하며, 서양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문명을 발달시킨 덕분에, 그들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 로마 문화로 부터의 전통은 공자, 맹자, 노자에서 시작된 중국 인문문명의 그것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암암리에 하게 된다.
무리도 아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을 배우고, '기독교'나 '천주교'의 '교회'를 다니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풍요롭게(혹은 빈곤하게) 살거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빈곤하게(혹은 풍요롭게) 살아간다. 그리고 작은 따옴표로 인용한 개념들의 역사를 배울 때, 우리는 늘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알키메데스, 히포크라테스 등등)에서 시작하여, 유럽에서 발흥한 과학 혁명의 영웅들에 대한 서술을 듣게 되며, 대부분이 대천재인 그들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그런 방면의 성취가 미미한 동양의 역사는 어쩌면 보잘 것 없다는 생각도 암암리에 하곤 하는 것이다(우리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좌절은 덤).
하지만, 세계의 역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면, 사실상 지구를 정복한 유럽의 성취는 사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이 나온 직후의 일이고(사실 과학혁명을 이 시기로 잡는 의견도 다소 무리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이후로 갈릴레오까지 특별한 성취가 발견되지 않으므로 사실상 17세기부터로 잡는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한다. 여하튼), 그 이후 아편전쟁이 시작된 19세기까지를 시간으로 따져보면, 길게 잡아야 약 400년의 세월동안 발전된 문명에 불과하다.
여러분들이 아는 거의 모든 유럽의 영웅들, 예를 들어, 바흐, 헨델, 모짜르트, 파스칼, 라이프니쯔, 오일러, 드 모르간, 조지 부울, 베이컨, 데카르트 등이 모두 이 시기 초기의 사람들이고, 그 외 여러분들이 위대하게 생각하는 서양 사람들은 모두 이 이후 출생자들이고, 지금 나열한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아마, 거의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기독교의 비조鼻祖인 '예수' 정도일 것이지만, 엄밀히 예수나 그 제자들과 바울 등은 모두 아시아 사람이다).
때문에 유럽사람들이 자기들의 역사를 거론할 때 걸핏하면 들곤 하는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그 시기의 성취와 사실 큰 상관이 없다.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서 중고등학교 용 자국 역사책이 가장 두꺼운 나라는 '미국'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의 역사라는 것은 1776년 독립선언 이후의 일이며, 이 해는 조선에서 영조가 죽고, 정조가 즉위한 때이다. 그들의 역사는 우리로 따지면 근대사 정도에 불과한데도 역사책은 나날이 두꺼워 진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유럽의 역사는 습관적으로 자신들의 뿌리를 그리스에 둔다. 하지만, 그리스의 학문적 성취는 사실 이집트의 성취(특히 나일강 유역에서의 기하학)와 불가분이고, 이집트는 누구나 알듯이 아프리카 문명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로마의 성립 이후엔 맥이 다 끊겼고, 로마는 황제권 강화를 위해 기독교를 국교로 성립한 이후, 기나긴 암흑의 시대에 진입한다.
유럽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상적 뿌리를 그리스 영웅들로 묘사하길 즐기는 반면에, 중간에 2,200여년을 존속한 로마제국에서 그 뿌리를 연결시켜 준 인물들을 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학의 시초를 히포크라테스로 생각하는 그들이지만, 19세기 중반까지 산부인과 의사들은 손도 씻지 않았고, 인체 해부학도 르네상스 이후에나 발달했다. 우상론을 제시한 플라톤의 진정한 후계자는 로마에 있지 않았고, 그를 재발견한 건 과학혁명 시기의 영국의 베이컨이었다. 로마제국은 강대하고 불가침의 성역이었지만, 그 문명의 발달은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그 시기, 유럽 문명의 발달은 춘추전국 시대 이래로, 명, 청에 이르기까지 중국 문명이 발달시킨 과학에 비하면 허접한 수준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유럽문명의 그리스 기원설은 대대로 내려온 것이라기보다는 (심하게 말하면) '억지로' 재발견한 것에 불과하고, 아마 추측컨대, 굳이 그리스 사람들이 아니었더라도 과학혁명이 일어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과학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원인 아테네도 마찬가지다. 망한 나라였고, 그 제도는 그 이후 반복되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그 역내에서는 최강이었는지 몰라도, 동아시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제국 통치기간 중에 유럽은 훈족의 아틸라(406~453)에게, 그리고 몽골의 오고타이칸(1186~1241)에게 두 번 묵사발이 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럽을 세계 최강의 과학 문명으로 발달시킨 원인은 그들의 조상인 그리스나 로마가 아니라, 동방에서 온 죽음의 사신 페스트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당시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절멸시켰다(물론 중국 인구도 절반이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페스트는 동서양 모두에서 제국을 붕괴시켰다(사실상 유럽 봉건제의 끝이고, 원나라도 멸망했다). 하지만 유럽에서 더 크게 기승을 부렸던 건, 그들이 그만큼 더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페스트 균은 쥐에서 옮기보다는 이나 벼룩에 의한 사람간 전염이 더 심각했다고 한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안 된 일지만, 죽은 사람들의 재산은 모두 산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병은 왕, 귀족, 부르주아, 신부, 농노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신분제는 철폐되었고, 농토를 떠난 사람들은 도시에 모여서 시장을 형성했고, 그렇게 형성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해서 왕과 결탁했으므로, 중간에 낀 귀족들은 사실상 그 지위를 상실했다. 왕은 군대로 시장을 지켜주면 된다는 '야경국가'이론이 이 때 나왔다. 시장은 귀족들이 바치는 세금보다 막대한 돈을 왕과 나누었다.
신분제가 폐지되자 상인들의 시대가 왔고, 그들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그리고 그런 일에 귀천이 따로 없었다. 때문에 좋은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이 큰 대접을 받았고, 상인들의 지위도 높았다. 세리로 천시받던 금융업도 발달했고, 무엇보다 기술과 기술을 뒷받침하는 과학이 발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학이 열렸고, 사람들은 과학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유럽의 부흥은 전적으로 이 때 생긴 자유민들의 부와 지위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건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도 마찬가지고, 대륙의 혁명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는 명, 청, 그리고 조선에서 시행되던 과거제도와 사농공상의 엄격한 신분제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동양에서의 제한적 신분과 서양의 다양한 직업의 발달을 생각해 보면, 서양에 대한 동양의 패배는 이 때 예견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페스트 이후의 유럽은 페스트 이전의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였고, 그 덕에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래 잡아야 400년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의 그리스 기원설은 그저 후대의 재발견일 뿐이다. 유럽의 역사가 400년이라고 그들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다. 그 4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한 그 발랄한 힘은 세기를 넘나드는 대천재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천재들의 배경에는 오로지 돈이 있을 뿐이었다(전통계승같은 고상한 별도의 이유가 있지 않았다).
뭐, 여하튼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