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고쳐야 할 문화 중의 하나로 '질투'와 그에서 비롯된 '못난 것들끼리의 연대'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더라도 그러지 말라는 권고일 수 있어도, 우리나라처럼 그걸 당연시하는 문화가 있을거라고는 믿기 힘들다.
어쨌거나 이런 '투현질능妬賢嫉能'의 문화가 있다보니, 보통 잘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조직에 있다보면, 성과를 내는 사람들에게는 그 성과를 내기 위한 스트레스에 더하여, '투현질능'의 부담을 얹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다. 아마도 자유경쟁이 아니라, 사기업에서는 '오너그룹', 검찰 조직에서는 '광어, 도다리, 다금바리'같은 '레디메이드'된 진골, 성골 그룹이 이미 있다보니, 그들을 제치고 성과를 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 상식이 되고, 그게 싫으면 성과를 내지 말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숨이나 간신히 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성과도 내고, 질투도 견디는 이중적 구조('능력도 있는데, 겸손하기도 하네'같은)이다 보니, 모든 조직원들은 '성과를 내도 질서를 깨지는 않겠다'같은 모종의 합의를 내재화하게 되고, 그런 검증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진골, 성골의 비호 내지는 묵인하에 승진이나 진급의 영예를 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성폭행이나 성추행은 그저 흔한 범죄를 넘어, 자기 조직의 불안정성을 극도로 높여 버리는 '치트키'같은 느낌이 들어 버린다. 성과를 내도 겸손하게 복종하는 머저리를 십수년 키워 놨더니, 어디서 웬 듣도 보도 못한 아랫것이 나와서 '개망신'을 주고, 조직을 흔들어 놓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과를 낸 죄인'임을 견뎌야 하는 사회에서 '성추행'이란 조커패를 들고 있는 여성들을 가만히 놔둔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지금 검찰에서 나오고 있다는 2차 피해의 모습은 사실 성폭행 2차 피해가 아니라, 원래 그 조직에 내재하는 투현질능의 변태적 버전일 뿐이다. 그 조직이 해체적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2차 피해를 주지 맙시다'같은 구호로는 절대로 그걸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