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 상상력. 그리고 공간.
"사람은 말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거래."
영화 명대사다.
창의력, 상상력. 늘상 키우고 장려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잘 안되나 보다. 키우자, 맡겨라, 키워주마... 잘 안 되니 그 난리가 아니겠는가.
집 앞 도서관에 종종 들른다. 벽면에 노르웨이나 덴마크 같은 선진 북유럽 도서관들이 소개되어 있다. 공통점이 있다.
공간.
그들의 공간은 특별하다. 그렇기에 경쟁력을 갖는다. 한참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울 나이의 아이들이 책읽고 사색하며 공간을 향유한다. 상상력은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어찌 가능한 것일까?
■ 이성과 감성의 공간
공간은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건드리는 힘이 있다. 레고를 떠올려 보라.
공간은 구조다. 세우고, 엮고, 비틀고, 붙이고, 채우고, 비운다. 구조물은 역학과 밸런스로 가득차 있다. 수학과 공학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곳이다.
공간은 안식처다. 따스함이 있고 차가움이 있다. 빛이 들어오기도 암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색, 향기. 때로는 불쾌함을, 때로는 추억을 안겨준다. 감성의 영역이다.
레고 장난감은 아이들에겐 최고의 공간을 뽑아내기 위한 도전이 아닐까? 그 시간을 마냥 행복해 하는 아이들. 할 수 있는 한 모든 공간을 채우며.
■ 40피트의 미학, 에스제이 쿤스트할레(SJ Kunsthalle)
조금 덧 붙이면, 더 페이지(the page).
맑은 못이 있어 청숫골로도 불렸던 청담동(淸潭洞)에 자리하고 있다. 모던하고 간지나는 건물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의외의 물체, 바로 컨테이너였다.
기본 레고블록은 40피트 컨테이너. 예전에 수출 품목 보낼 일이 있어 보았지만, 20피트와 40피트는 포쓰부터 다르다.
16:9 비율의 아름다운 와이드비젼처럼 늘씬하게 빠진 40피트가 컨테이너 다운 컨테이너다. 게다가 빛을 꿀떡 삼켜버린 듯한 블랙. 무광스럽기도 하고 유광스럽기도 한 독특함.
안으로 들어서면 레고 블록이 시작된다. 자, 상상을 시작하자.
테이블과 의자를 지운다. 멀뚱 서있는 에어컨도 지우고. 슬슬 골격이 보이는가? 기둥이 보이고, 벽면의 들숨과 날숨이 보이기 시작한다.
2층의 영사기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백지스러운 벽면.
블랙의 껍질에 새하얀 캔버스라니. 평시엔 은은한 조명, 어느 순간 스포트라이트, 모두가 주목할 때는 비로소 영사기가. 한 공간은 다양한 빛으로 채워진다.
■ 어른들을 위한 미로 블록
문득 바라볼 수 있는 만큼의 개방감. 지루한 수업에 지쳐 문득 창밖 햇살을 바라보듯. 담소를 나누다 무심코 바라본다. 다른 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또 다른 이를. 그 누군가도 나를 지켜볼 것만 같은.
뚫어질만큼 보기엔 살짝 불편하고. 덕분에 언뜻 지켜보기 좋을 듯한. 현대인의 묘한 아이러니를 꿰뚫듯 오픈된 파파라치 공간.
3층의 스튜디오. 피규어 매니아들에게 성지인 곳인가?
누군가의 작품이 되어 공간의 작은 부분을 꽉 메우고 있다.
40피트의 길이는 터널이 되기도 한다.
빛을 뿜어오는 창에 다가가기 위해선 좁고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공간은 누군가에 의해 또 각색될 것이다.
테이블과 의자로 채워진 공간. 가구는 공간을 규정짓는다.
■ 직사각, 직사각, 그리고 또 직사각
직각의 비틀림 구조들. 앞으로 길게. 위로 쪼개서 길게. 멀찌기 가로로 길게. 밑으로 새롭게 새롭게 길게 길게.
직사각형의 향연은 끝이 없다. 짤라 보면 닮은 꼴. 달리 달리 붙여 놓은 공간. 미로인듯 공간이고 공간인듯 미로가 되었다.
숫자다. 기호다. 적어도 길은 잃지 않으리라. 이 미로같은 공간에 취하더라도 말이다.
온통 직사각 뿐인데 단조롭지 않다. 직사각은 작은 음양을 이루어 물결을 만들어 내지 않는가!
작은 음양의 물결은 파동처럼 겉면을 타고 뿜어져 나온다.
단조로운 듯 단조롭지 않은. 단색인 듯 단색이 아닌. 검은 색채는 밖의 밝음을 먹어버리고 안의 빛을 한껏 뿜어낸다.
직사각형의 기하학은 묘하게도 노면을 타고 흐른다. 바닥의 주차노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차선. 아마도 수없이 지나다닐 직사각의 차량들. 그리고 직사각스러울 우리의 마음들.
때로는 동글동글한 구조물을 찾아다니는 우리들. 직사각스러운 아파트와 빌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들이기에 그렇다.
■ 도시인, 만남, 파동
쿤스트할레는 제대로 된 직사각의 향연이다. 현대식 도시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보기 어려웠을 기하학 수업 발표다.
현대는, 현대스러움은, 현대의 모던함은 직사각을 기본으로 한다. 둘러보면 직사각은 자연의 작품이 아니다. 직사각스러운 산이 있는가? 직사각스러운 강이나 연못이 있는가?
고로, 직사각은 사람의 작품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도시의 작품. 그렇기에 세련됨을, 차가움을, 외로움을 머금는다. 저 기하학을 따사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모이고, 모여서 불을 밝히고, 모여서 따뜻한 온기를 뿜어내는 수밖에 없다.
쿤스트할레에 들어서겠다면 그런 마음가짐이어야 할 것만 같다. 외로운 도시인들이 모여 열기를 발산할 수 있도록 말이다.
■ 마무리하며...
쿤스트할레(Kunsthalle)는 '아트 홀'이란 뜻의 독일어라고 합니다. 기획과 전시가 만나는 곳이죠. 그러니 청담에 자리한 에스제이 쿤스트할레는 컨테이너형 전시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대관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어떤 용도와 분위기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늘 새롭게 변신하는 공간입니다.
공간은 채우는 곳입니다. 같은 얘기로, 공간은 비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채우고 비우는 사이사이에 우리는 상상력을 불어 넣게 됩니다.
공간은 상상력을 이끌고, 상상력은 공간을 채우기도 또 비우기도 합니다. 공간은 이미 채워지기 보다 채워달라고 손짓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생각도 그러합니다.
지금의 과학기술이, 지금의 패러다임이 어디를 향해가고 있나요? 우리에게 더 많은 상상력과 예지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 세상에 공간은 중요합니다. 쿤스트할레는 그런 면에서 특이한 공간이었습니다. 쿤스트할레는 직각이란 미학을 최소한으로 갖춘 곳이었습니다.
이제 여기에 더해야 할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