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8] 유동성 / 비유동성, 에피소드

jack8831(72)
Published in
#sct
Words
1350
Reading
6 min
Listen
Play
7y

연어입니다. 일전에 투자 회사에서 근무할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 고변동성에 유리한 상품과 고객의 불만

주가지수가 오르건 내리건 수익을 내볼 수 있는 상품으로 사모펀드를 만들었는데, 수익 모델은 주로 주가지수 변동성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대체로 주가지수 변동성이 커지면 수익이 커지는 구조라 지수가 야금야금 오르는 상승장에서는 주가지수 수익률을 따라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지요.

그런데 상품 운용이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저희 상품이 가장 힘들어하는 종류의 주가흐름이 연일 지속되었습니다. 상품 판매는 모 증권사의 PB분들이 맡았는데 어느 고객의 항의에 견디지 못한 한 PB분이 연락처를 주고는 직접 상담을 받으라며 저희 회사쪽으로 떠넘겨 버렸죠. 원래 운용인력이 직접 고객과 상담을 나누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지만 상황상 제가 그 고객분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판매 PB 분들에게 충분히 상품 운용에 대한 교육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겉으론 상품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속내는 아마 귀찮은(?) 고객을 떼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보통 제가 아침 6시 이전에는 회사에 나와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아챈 고객분이 적어도 아침 7시 부터는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죠. 거의 매일 최소 1시간씩은 상품과 수익모델을 설명하고, 상황을 얘기하고, 불만과 불안에 찬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꾸 트집을 잡으시려는거였죠. 저를 자꾸 자극해서 이런 대답을 유도하는 것이 뻔했습니다.

  • 제가 다 책임질테니 상품 해약하고 좀 나가주시죠!

그러나 저의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 저희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판단할 때 이 모델이 지금 상황에서 수익이 잘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모델은 이런 상황에 수익이 잘 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닙니다. 모델은 문제 없이 잘 견뎌나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인내를 갖고 기다려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 고객문은 매일 하소연입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주식을 샀으면 지금 얼마가 수익 났을텐데.. 억울해 죽겠다...


■ 반전, 2011년 8월 5일의 미국 국가 신용등급 하락

그러다 반전이 왔습니다. 2011년 8월 5일, S&P가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트리플A에서 AA+로 강등시킨 것이죠. 순간 주가지수는 미친듯이 빠지기 시작했고, 주식 시장은 억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저희 상품은 이때다 싶을 정도로 수익률이 급등하기 시작했지요.

갑자기 몇몇 언론 매체가 이 상황을 인터뷰 해 가기도 하고, 대부분의 주식 기반 상품들이 급작스런 주가 폭락에 죽을 쑤고 있는 반면 저희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그 고객분의 아침 전화가 왔지요.

  • 아이고, 다른 주식들 다 망가졌던데 이 상품은 수익이 많이 났더라구요.
  • 네, 그 동안 심적으로 많이 힘드셨을텐데 잘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했다, 애썼다 얘기까지는 기대 안했지만 그래도 고객분이 한숨 돌린듯 하여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 그래서 말인데요, 마침 주식들이 다 폭락해서 엄청나게 싸던데... 그렇지 않아도 이 상품만 수익이 많이 나고 해서... 이것 좀 팔아가지고 주식을 사볼까 하는데요.
  • 네? 아, 글쎄요. 제가 조언을 드린다면 애초에 주식을 사시든 간접 운용 상품에 가입을 하시든 처음에 생각하고 설계했던 이유가 특별히 사라지지 않았다면 각각 그대로 갖고 가시는게 투자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계속 얘기를 듣다보니 이 고객분은 약정 운용기간 내에 상품 해지를 할 경우 물어야 하는 해약 수수료를 안내기 위해 저를 통해 어떤 방법이 없나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하..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더군요.

그 이후로 저희 회사에 전화가 오지 않을 것을 보니 이 고객분이 상품에 만족하고 계셨거나 얘기대로 상품을 해약하고 주식을 더 매입하셨겠지요. 아마 후자 쪽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 다른 회사 상품 가입 손님들

입맛이 날아가 점심 식사를 거르게 할 정도로 저를 힘들게 했던 이 고객분의 전화 폭주가 멈췄을 무렵, 갑자기 회사로 3명의 신사분들이 급히 방문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제가 상담을 맡게 되었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이 또한 머리 아픈 일이더군요.

  • 저희는 xxx라는 회사의 파생 운용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입니다.
  • 아, 그러신가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저희 회사에 상담을 오셨는지요?
  • 이번에 생긴 주가 폭락에 운용 상품이 엄청난 손실을 보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게 된건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설명을 좀 들어보려 왔습니다.
  • 네? 그 회사 쪽에서 설명을 해주지 않던가요?

네

  • 저희야 설명을 요청했죠. 대표는 만나주지를 않고,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상품 운용팀장을 만났는데.. 뭐라고 설명은 합디다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도 없더라구요. 무엇보다도 자기들도 처음 겪는 일이라 당혹스럽다는 얘기만 합니다.
  • 제가 다른 회사의 상품에 대해 왈가불가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다만 그쪽에서 충분한 해명을 듣지 못하셨다고 하니 제가 파생상품과 관련한 기본적인 설명 선에서 말씀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옵션 상품에는 기본적으로 매수와 매도가 있습니다. 이건 쉽게 생각하자면 복권과 비슷합니다. (복권도 일종의 옵션 상품이니가요.) 매도는 발행자의 입장이 되어 프리미엄을 받고 결제 의무를 지게 됩니다. 매수는 매입자의 입장이 되어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결제 요청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죠. 쉽게 생각해 볼까요.

  • 복권 발행자 : 1등 당첨되면 우리가 그 금액 내줄게. 대신 1장에 500원 내.
  • 복권 매입자 : 꽝되면 내가 1장당 500원 날릴게. 대신 1등 당첨되면 너희가 지불해 줘야해.

이분들이 가입한 상품은 복권 발행자 같은.. 즉 옵션 매도자로서 거래를 하는 상품이었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복권 발행자였죠. 어마어마한 금액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꽝이 되는 500원을 챙기며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수익을 불려나가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복권과 주가지수 옵션이 설계가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복권은 발행자가 계산을 통해 어떠한 당첨금이 나와도 손실을 보지 않게 설계를 해두죠. 그러나 주가지수 옵션은 이론상 무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러므로 이 회사의 상품은 미국 신용등급 하락에 급작스런 주가지수 폭락을 맞으면서 엄청난 손실금을 물어내야 하는, 즉 큰 손실을 맞이한 것이 됩니다.

제가 기본적인 상품 구성이 어떠한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니 이 분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을 하시더군요. 왜 그 동안 작지만 꾸준한 수익이 났는지, 왜 갑작스레 그 이상의 큰 손실이 한 번에 나게 되었는지 이해를 해주셨습니다.

  •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이 상품을 가입할 때 자신들은 손절을 칼같이 지키기 때문에 얼마 이상의 손실은 날 수 없다고 확언했었거든요?
  • 시장이 그런 손절이 가능하게 놔 두질 않습니다. 그 분들이 그런 현상을 모르지 않을텐데요?
  • 운용팀장 얘기는 자신들의 원칙대로 손절을 들어가려고 했는데 호가에 물량이 없더랍니다. 체결을 시킬 수가 없었대요.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자기들도 모르겠답니다.
  • 그건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군요. 왜냐하면 불과 몇 년 전(2008년)만 하더라도 주가지수 선물 상하한가, 주가지수 옵션 상한가 등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부지기로 일어났었는데요?
  • 그 시장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 그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이론적으로만 손절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면 안되는건데요... 이쪽도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면 유동성 위험이 무척 커지거든요.

■ 반전의 반전

결국 이 분들도 2시간에 가까운 설명을 듣고서는 돌아가셨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가입한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였고, 그런 부분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부분에 불만을 토로하시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상품의 강점과 약점이 어디 있는지 알게된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고 가셨습니다.

헌데 나중에 그 분들의 전화가 왔었지요. 저는 이 분들이 상품을 해약이라도 하셨나 했습니다만, 정반대로 상품 운용을 계속 맡기고 거기에 추가 자금을 더했다고 하시더군요. 주식으로 치자면 물타기였습니다.

  • 선생님, 제가 다른 말씀은 드릴 수가 없지만 저번에 말씀드린 유동성 위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고 내리신 결정이신지요.
  • 네, 잘 압니다. 저희끼리 얘기를 좀 나눠봤는데, 어차피 한 번 그런 일 발생한거 또 있지는 않을 것 같고요, 이 상품이 그래도 꾸준히 야금야금 수익이 나던거라 그 맛(?)을 좀 잊기 어렵네요. 그래서 이참에 자금을 더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 고객 성향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

이렇게 두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려 봤습니다만, 한 분은 저희 회사 상품을 통한 간접적인 고객분이었고, 다른 분들은 다른 회사의 고객분들이었지만 저는 2011년 8월을 전후로 겪은 이분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수익 난 분은 해지를, 손실 난 분은 추가를 ㅋㅋ)

사실 이분들은 모두 '시장 유동성'과 관련된 결과를 얻으신 것입니다. 앞의 분은 왜 갑자기 수익을 많이 거둘 수 있었을까요? 네, 변동성이 커지면 유리한 상품을 쥐고 있었기 때문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커질 때는 생각지도 않은 유동성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호가 갭이 커지지요. 호가에 물량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가격이 극단적으로 오를 때는 이런 입장이 됩니다.

  • 매도자 :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 난 급할거 없어. 저만치 비싼 가격에 내왔으니 한 번 사보시던가.
  • 매수자 : 저 가격이라도 잡아야 하는걸까? 비싸지만 지금이라도 잡지 않으면 더 비싼 가격에 사는건 아닐까?

혹시 안사도 그만?이라고 생각하셨는지요. 하지만 때에 따라 '무조건 사야하는 쪽'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매도를 먼저 해두어서 매수를 꼭 해야하는 경우처럼요.

반대로, 가격이 극단적으로 떨어 질때는 또 이런 입장이 되지요.

  • 매수자 : 가격이 폭락하고 있으니 난 급할거 없어. 저만치 싼 가격에 주문 넣어뒀으니 누가 던지겠지 뭐.
  • 매도자 : 이 가격에라도 던져야 하는걸까? 지금이라도 팔지 못하면 나중에 더 낮은 가격에 던지는거 아닐까?

결국, 유동성 위험은 시장에 존재하는 엄연한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런 유동성 위험은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커지거나 극단적으로 줄어들 때 모두 발생할 수 있지요. 변동성이 너무 적으면 거래량이 적게 되고, 거래 호가가 얇아지거나 호가가 아예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나마 평소 거래량이라도 많다면 이 유동성 위험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현물 자산의 경우 유동성 위험은 자본 입출금이 경직되고 거래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더 타격이 될 수 있지요.

유동성 위험이란 것은 우리가 평소 인지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거래가 잘 되고 있으면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올 것이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유동성 위험을 줄이기 위해 여러 방식의 대안들이 나오고 있지요. 그 중에 한 가지 방법이 '쪼개기'입니다. 굵직한 하나 보다는 작은 여러개가 유동성을 키우고 거래를 원활히 소화시키는데 유리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크립토를 활용한 토큰화도 유동성 위험을 줄이는 측면에서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