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아마 아시는 분들이 많을 듯 합니다 . 코치들이 강연을 하면 거의 다 한번씩은 써 먹는 이야기입니다 . 어찌되었든 이 이야기는 게리 하멜이 그런 실험을 한적이 없다고 했다고도 하는데도 워낙 이야기의 상징성이 강해서 계속해서 인구에 희자되고 있습니다.
원숭이 집단에 장대를 세워놓고 꼭대기에 바나나를 매달아 놓았습니다. 원숭이 하나가 바나나를 먹으려고 장대를 올라가서 바나나를 집는 순간 위에서 찬물이 쏟아져서 원숭이를 불쾌하게 합니다. 원숭이는 깜짝 놀라서 바나나 먹는 것을 포기하고 장대를 내려옵니다.
또 다른 원숭이가 또 바나나를 먹기 위해 장대를 오릅니다. 그리고 또 찬물을 뒤집어 쓰고 장대를 내려 옵니다. 그런 사건이 원숭이 무리에서 여러번 있었겠죠.
원숭이 하나를 꺼내고 새로운 원숭이를 무리에 넣습니다 . 새로 들어온 원숭이는 바나나를 보고 먹으려고 장대를 오릅니다. 그런데 다른 원숭이들이 적극 막아서서 장대를 오르지 못하게 합니다.
또 원숭이 하나를 꺼내고 새로운 원숭이를 무리에 넣습니다. 이 원숭이 역시 바나나를 보고 장대를 오르려 하지만 또 다른 원숭이들에 의해 끌어 내려집니다.
집단의 모든 원숭이가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아무도 바나나를 따기 위해 장대를 오르려 하지 않습니다 . 왜냐하면 오르려 하면 끌어 내려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그 집단의 원숭이가 새로운 새대로 교체 되었습니다. 물을 뒤집어 썼던 원숭이들은 오래전에 그 집단에 있었고 더는 거기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집단의 원숭이들은 아무도 장대를 오르지 않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그냥 오르지 않습니다.
실험이 진실인가를 떠나 이 이야기는 대단히 상징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류가 학습과 경험을 나누며 어떻게 고정관념이나 관습으로 박제해 가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바나나가 장대끝에 있고 좋아하는 것을 먹기 위해 원숭이가 장대를 오르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 그러나 바나나를 잡으면 찬물이 쏟아집니다. 원숭이는 이것을 "바나나를 먹으면 안돼!" 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바나나를 포기합니다 . 찬물을 뒤집어 쓰고서라도 바나나를 먹는 원숭이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나나를 먹으면 안돼!"는 다른 동료 원숭이들의 같은 경험에 의해 검증이 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바나나라도 장대 끝에 있는 바나나는 먹으면 안돼! 라는 하나의 강력한 룰이 생기고 그것을 집단 다수가 공유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원숭이가 들어옵니다. 새로운 원숭이는 당연히 장대를 오르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원숭이가 가로막거나 혹은 끌어 내립니다. 이 가로막거나 끌어내리는 행동은 대단히 선한 의도에서 나옵니다. 찬물이 쏟아지는 기분 나쁜 경험을 하지 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즉 상대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대다수 우리 인간들도 이와같은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가로막거나 끌어내리는 원숭이는 대단히 큰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자기 경험의 절대화" 내지 "상대방이 경험할 권리를 가로막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경험을 보편적인 진실로 스스로 규정하고 상대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집단은 이렇게 돋보이거나 자기 경험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끌어 내려 평준화 합니다. 그래서 보면 유명한 스승아래 제자들이 모여 들어도 그 스승 아래서 뛰어낸 제자가 하나 못나옵니다. 그 안에서 끌어내려지고 평준화 되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사람은 무리를 나오지 않으면 절대로 성장할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부모에게서 아이에게로 선생에게서 학생에게로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인간 세상에서도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 새로운 세대는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었음에도 지난 세대의 경험과 그 세대가 확신하는 "장대끝에 있는 바나나는 먹으면 안돼!" 라는 일반화된 오류를 진리로서 받아 들이기를 강요당합니다. 그것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배신감을 느낍니다. 태극기 집회 어르신들이 느끼는 배신감도 그와 같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대가 실패 내지 실수 같은 자기 경험을 통해 새로운 규칙을 발견하는 것을 계속해서 가로막히고 그것은 또 다시 그 집단에 새로운 메세지가 됩니다. "장대를 올라가려는 것은 나쁘다."입니다.
점점 그것이 왜 나쁜지 모릅니다. 그저 나쁩니다. 그냥 악입니다. 그냥 하면 나쁜 짓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의 룰이 됩니다. 이 룰속에는 깊숙하게 잊혀져 가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언뜻 기억나는게 있습니다. 몇년전 에 이슈화 되었던 이화여자대학교의 "재학중 혼인시 퇴학 규칙" 입니다. 규칙을 고치겠다는 기사까지는 읽었는데 고쳤다는 기사는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안돼! 안돼! 안돼!에 가로막힌 새로운 세대는 무기력해집니다. 점점 그냥 이유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집단은 점점 무지해집니다. 그리고 맹목적이 되고 무력해집니다. 인간 사회도 이런 모습이 정말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모든 오류를 찾아 반박하고 되돌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룰을 찾아내어 사회적 합의로 만들고 장대를 올라갈 새로운 동기들을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그런 소수의 깨어나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