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은 천도교 신자였고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 선생의 사위였다. 그는 천도교 청년회 도쿄 지회장으로 일본에 갔다가 도요대학에서 철학과 더불어 아동심리학과 아동문학 등을 전공했고 이후 귀국 후에는 독립과 아동 관련 운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그는 어린이라는 잡지 발간을 비롯 ,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고 다수의 집필과 번역 잡지 계몽 운동을 하다가 33세의 나이로 과로사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이라는 말이 세종대왕이 만들었던 어리석은 이라는 뜻에서 따왔다고 주장하고 우긴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어린이 할 때의 '이'는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지금은 많이 쓰지 않지만 한 때 우리가 쓰던 말속에 저 이, 그 이 하던 말이 있었다. 그것은 하대하던 말이 아니었다. 저분이, 저 사람이 또는 그분이, 그 사람이 하는 뜻으로서 어린이라는 말도 '어린 사람' 혹은 '어린 분'이라는 존중의 뜻을 담고 있다.
방정환 선생이 몸 담았던 동학(천도교)은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지극한 인간 존중의 사상을 설파했는데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어린이와 여성을 하늘님으로서 함부로 대하는 것을 금했고 지극한 공경심과 존경심으로 대하도록 했던 종교다.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동학 사상이 민간에 퍼져 있을 때 어린이들은 훨씬 더 잘 자랐다.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오고 유학을 다녀오고 전문직을 가진 현대의 엄마 아빠들은 예전에 시골에서 농사짓고 산나물을 채취하며 힘들게 살아가던 어머니 아버지에 비해 아이들 교육을 대단히 힘들어 한다. 가장 큰 원인은 부모들이 "나"라는 자아가 너무 강해져서 아이에게 내 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의 부모들은 자식들과 함께 살았다. 교육에 대해서는 스스로 물러났다. 엄마 아빠는 못 배웠으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은 마을에 명망 있는 어른에게 맡기거나 학교 선생에게 맡겼다. 그리고 집에서는 가정에서는 어린이와 함께 살았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의 교육을 직접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가르쳤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서, 마을 어른들을 공경하고, 집안일과 마을일을 돕는 법을 가르쳤다. 그렇게 부모는 어린이와 함께 살았다. 어린이는 당연하게 형제들과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이웃과 함께 사는 살아가면서 삶의 이치와 지혜를 깨우쳤다.
그리고 부모는 있는 힘껏 자식에게 헌신했다. 자식이 하려고 하면 부모는 할 수 있는 한 힘써서 공부를 시키려 했다. 그때의 부모는 그다지 자아실현을 해야 한다거나 혹은 세상을 누리겠다는 욕망이 없었다. 이전에 우리 부모들은 자아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도 그다지 없었다. " 지가 배워서 사람 노릇 하면 되지." 이 정도였다. 고작 출세한 아들이 봄에 부모님께 꽃놀이 관광 한번 시켜 주면 그것으로 모든 효도를 다 받은 듯이 여겼다. 그랬기에 아이들은 알아서 자기 길을 찾아 나가고 필요성을 따라 스스로 공부하며 성장했다.
현대에는 어린이와 함께 사는 삶을 거세시키고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또 가르친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가르치고 다 주입하려고 하는 게 문제이다. 아이들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게 하려면 어린이들에게 삶을 돌려줘야 한다.
현대에 좋은 교육받고 좋은 대학 들어가서 출세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모들의 생각을 지배하게 된 이후로 이런 어린이와 함께 사는 법이 사라졌다. 다른 사람보다 성적이 좋아야 하고, 뛰어나야 하고, 더 좋은 데 가야 하고... 이기심이 부모의 마음을 지배한 이후로 모든 부모가 아이를 교육시키는데 불을 켰다. 자신은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하는데 "애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한다.
"애가 왜 그러냐 하면요. 부모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그래요. 부모 마음속에는 사실 온통 자기밖에 없어요. 아이가 차지하는 공간은 아주 작아요. 아이 교육도 다 자기를 위해 시키는 거잖아요. 아이들은 삶을 거세당했어요. 오직 공부 외에 여가시간에 게임하고 인터넷에서 놀고 그것으로 자기 삶을 살려하니까 또 그것 조차도 제한하고 문제라는 눈으로 바라보잖아요. 아이들은 어른들 하고 함께 삶을 사는 것을 본래 좋아해요 인간이 진화하면서 인간은 그렇게 부모와 함께 살면서 배우고 깨우쳐 왔기 때문에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받아 들일 만한 마음의 공간 또한 없을 것이다.
한 가정에는 보통 늦게 말을 배우는 아이들이 있다. 보통 아이 대여섯을 낳으면 어떤 아이는 말을 빨리 배우고 어떤 아이는 유난히 말을 늦게 배우는 아이가 있다. 옛날에는 말을 늦게 배우는 아이는 주로 위에 있는 언니 오빠들이 아이를 돌보며 말을 가르쳤다.
우리 집의 예를 들어 보자면 이렇다. 나의 경우는 말을 빨리 깨우쳤다. 어렸을 때는 또랑또랑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남동생은 유난히 말이 늦었다. 다섯살이 되었을 때도 말이 느려서 친구나 형제들이 간식을 먹을 때면 "나도 줘" 라는 말을 빨리 하지 못해서 손가락으로 자기입을 먼저 가리켰다. 그래도 누구하나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도 형제들도 이웃들도. 모두들 나를 대하듯, 나에게 말하듯 남동생에게 말했다. 간혹 내가 부모님에게 동생의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네 동생까지 칠남매를 키웠지만 모두 달랐단다. 늦거나 빠른게 뭔 대수겠니? 때가 되면 다 자기 스스로 깨우치게 되더구나."
그리고 정말로 그랬다. 말을 빨리 배운 나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말이 느려서 언제나 자기 몫을 얻지 못할까봐 마음이 급했던 동생은 나보다 삶을 훨씬 더 똑똑하고 단단하게 산다. 그러면 된거다. 동생에 비하면 나는 참 엉성하고 이쪽 저쪽 치우치면서 기우뚱 기우뚱 산다. 이젠 남동생이 나보다 앞서서 자기 삶을 산다. 나는 남동생이 쉽게 하는 그 쉬운것도 어려워서 찾고 읽고 배우고 하면서 삶을 공부해야 했다. 그런데 또 그래서 나는 삶에 대한 글을 쓰고 나눌수 있게 되었다. 노년이 되면 내가 남동생을 조금은 또 앞서가지 싶다.
요즘에는 아이가 말문을 열 때가 되었는데 말문이 안 터지면 말을 가르쳐줄 언니나 형이 없다. 부모 역시 일도 하고 자기 여가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아이와 차분하게 함께 말을 해주지 못한다.
행여 이웃이라도 만났는데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것을 이웃이 알고 비웃거나 혹은 깔볼까 봐 먼저 방어부터 한다. "애가 말을 못해요." 그리고는 아이가 해야 할 말을 전부 다 자기가 번역해서 하거나 해석해 준다. 아이가 직접적으로 의사소통할 기회를 이런 식으로 모두 차단한다.
엄마가 너무 자아가 강해서 아이가 성장 할 공간이 이렇게 다 막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병원에 데려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딱지를 붙인다. 이 또한 자기 불안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의 지능과 감성을 모두 수치화해서 측정해서 꼬리표를 붙인다. 그리고 내 아이는 이 정도라고 마음속에서 아이가 자랄 공간마저 딱 한정해 버린다. 현대의 부모가 부모로서 하는 일이 이정도다.
현대의 부모가 다시 되찾아야 하고 다시 배워야 할 것은 무엇 보다도 어린이와 함께 사는 법이다. (어린이와 함께 산다는 것 다음 기회가 되면 조금더 구체적으로 써야 겠다. ) 어린이날이나 생일,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로 어린이가 어른과 함께 사는 삶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것은 사실 없어도 좋다. 어린이에게 필요한것은 어른과 함께 사는 삶이다.
현대의 교육이란 지식을 외우는 능력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을 키워주고, 마음의 눈을열어주고 사람의 크기를 키워주는 것은 함께 사는 삶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을 어린 시절에 배우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 배워야 한다. 어른이 되어 자아가 굳어진 다음에 배우는 것은 더 어렵고 더 오래 걸린다. 어떤 경우는 어린시절에 배우지 못했던 것을 배우기 위해 아주 치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