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며느리 동성애자 봉씨의 거짓 상상임신과 산후 튼살치료

imagediet(56)
Published in
#kr
Words
648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세종 며느리 동성애자 봉씨의 거짓 상상임신과 산후 튼살치료

요사이 괴이한 일이 있다. 말하기도 수치스럽지만 (중략) 글쎄 세자빈(봉씨)이 궁궐의 여종 소쌍을 사랑하여 잠자리를 함께 한다는구나.
1436년 10월26일, 세종이 사정전에서 주변을 물린 뒤 도승지 신인손과 동부승지 권채를 은밀히 불러 하소연한다. 세종이 이토록 비밀리에 신료들을 만난 것은 며느리 동성애 스캔들 때문이었다.

“소쌍이라는 아이가 동침을 거부하면 세자빈이 마구 윽박지른다는구나. 그래 마지못해 옷을 반 쯤 벗고 병풍 속에 들어갔더니 세자빈이 나머지 반을 강제로 벗기고 눕게 한 뒤 남자와 교합하는 형상과 같이 서로 희롱한다는구나.” 《세종실록》

*세자빈의 금지된 사랑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임금 체면에 만고의 성군이라는 세종의 며느리, 즉 세자(훗날 문종)의 정부인인 세자빈 봉씨의 추행을 미주알고주알 밝혔으니 말이다. 희대의 성군이 왜 며느리를 쫓아내야만 했는지 구구절절 역사 앞에서 변명했으니 말이다.
이어지는 소쌍의 진술은 세종을 절망시켰다. 세자빈은 소쌍이 다른 여종인 단지라는 여인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미행을 붙여 감시하고, 서로 만나지 말라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소쌍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려 하면 대놓고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소쌍은 지나친 세자빈의 사랑에 질려 주변 사람들에게 넋두리했단다.
“세자빈께서 날 사랑하는데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무서워 죽겠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전형적인 ‘조선판 스토커’가 아닌가. 세종은 결국 봉씨를 세자빈의 자리에서 쫓아내고 말았다.

*알코올 중독 세자빈

봉씨는 전형적인 조선의 여인이 아니라 문제적 여인이었다. 우선 성격이 과격했다.
《세종실록》 1436년 11월 7일조를 보면 세종은 <열녀전>을 가르치게 했다. 하지만 봉씨는 며칠만에 “이따위 책을 배워서 뭘하느냐”며 집어던졌다. 또한 말술을 즐겼고, 주사 또한 대단했다. 세종의 넋두리 속에는 세자빈 봉씨의 술버릇이 생생하게 표현된다.

“세자빈은 항상 방 속에 술을 준비해두고는 큰 그릇으로 연거푸 술을 마셔댔다는구나. 취하는 것을 좋아해서 어떤 때는 시중드는 여종으로 하여금 뜰 안에서 업고 다니도록 했고(중략). 술이 모자라면 사가에서 가져와 마시고(중략). 이 어찌 세자빈이 할 노릇이냐.”

그랬다. 봉씨에게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자인 남편, 즉 문종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봉씨는 두번째 세자빈이었다. 세자(문종)은 일찍이 김씨라는 여인를 세자빈으로 삼았다. 하지만 김씨는 남자를 미혹시키는 압승술(壓勝術)을 썼다는 단서가 발각됨으로써 폐출됐다.

‘압승술’은 남자의 사랑을 받는 술법을 뜻한다. 말하자면 ‘사랑의 묘약’이라고 할까. 김씨가 썼던 술법 가운데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신발을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든 뒤 술에 타 남자에게 먹이는 방법’이 있었다. 또 ‘두 뱀이 교접할 때 흘린 정기를 수건으로 닦아 허리에 차는 방법’도 있었다. 이럴 경우 남편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세종실록》 1429년 7월 20일조를 보면 해괴한 방술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부덕을 행했다’는 죄목으로 폐출된 것이다.

*좌절감의 다른 표현

김씨의 뒤를 이어 봉씨가 두번째로 세자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 역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승휘(承徽·세자의 첩) 권씨가 세자의 아들을 낳자 봉씨의 좌절감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봉씨는 가만 있지만은 않았다. ‘거짓임신’을 고해 한 달 간에나 남편을 중궁전에 붙잡아 두었다. 봉씨는 또 남편을 사랑하는 내용의 노래를 지어 여종들로 하여금 부르게 했고, 빈궁을 지키던 늙은 여종에게 ‘세자를 불러오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남편은 봉씨의 마음을 너무도 몰라줬다.
제발 빈궁의 처소에 가보라는 아버지(세종)의 꾸지람이 있어야 겨우 세자빈의 처소를 찾았다. 그것도 며칠 왕래하다가 발길을 끊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세자가 봉씨의 처소 근처에 어슬렁거리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그 때마다 세자빈의 애간장이 녹았다. 세자빈은 지게문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넋두리했단다.

“저 분은 왜 안방에는 들어오지 않고 공연히 밖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인가.”
세종도 그런 무심한 아들을 어지간히 닦달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세종의 한탄이 하늘을 찌른다.

“저렇게 금슬이 좋지 않으니(중략). 비록 부모라 해도 침실의 일까지야 어찌 자식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세종실록》 1436년 10월 26일조

그러고 보면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려 했던 김씨나 봉씨의 분투가 가여울 뿐이다. . 혹시 봉씨가 남편의 아이를 갖겠다는 집착이 낳은 상상임신은 아니었을까? 또 첫번째 세자빈이었던 김씨는 오죽했으면 사랑의 술법까지 써서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 했을 정도이니 봉씨의 동성애 소동 역시 남편의 사랑을 얻을 수 없었던 좌절감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환 기자의 이야기 조선사 흔적의 역사, 이기환 지음, BM 책문, 페이지 284-287

필자는 상상 임신이 아니라 봉씨가 그냥 임신한 척 연기를 했다고 본다.
상상 임신(想像妊娠, wt8001.jpg)은 여자 스스로 임신이라고 믿음으로써 나타나는 의태(擬態) 임신을 말한다. 상상임신은 실제로 임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월경의 중단과 함께 자궁 확장, 월경 기간의 휴지, 입덧, 젖의 분비와 같은 임신의 징후가 나타나며 그 원인으로는 심리적 상태, 복부 종양 형성, 호르몬 이상이 있다.
아무튼 임신을 봉씨는 애타게 고대한 것만은 사실인데 산후에도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배나 가슴 옆구리에 튼살이 발생한다는 점인데 www.imagediet.co.kr 자향미 한의원의 튼살침인 ST침으로 해결할 수 있다.

세종 며느리 동성애자 봉씨의 거짓 상상임신과 산후 튼살치료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