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의 기만 미국 달러 금태환 사기 비트코인 알트코인

imagediet(56)
Published in
#kr
Words
1203
Reading
6 min
Listen
Play
9y

아타우알파(스페인어: Atahualpa, 1497년 3월 20일 - 1533년 7월 26일)는 잉카 제국의 14대 황제이다. 현 에콰도르 지역에서 11대 황제 와이나 카팍의 서자로써 출생하였다. 1527년 형제 와스카르가 황제로써 즉위하자 이에 반발하여 키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5년간에 내전 끝에 아타우알파는 와스카르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성공하였는데, 이를 기념하여 와스카르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황제로써의 생활은 얼마 가지 못하였다. 1527년 남아메리카에 상륙하여 잉카 제국을 침략할 기회를 노리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아타우알파가 내전에서 승리한 후 수도 쿠스코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접근하여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아타우알파가 거부하자, 피사로는 이끌고 온 180명의 군대로 아타우알파의 행렬을 습격하였다. 아타우알파 일행은 7천 명에 달하였으나, 대부분이 비전투원이어서 피사로의 습격을 막아낼 수 없었고, 결국 아타우알파는 타고 있던 가마가 붕괴하면서 피사로에게 체포되었다. 아타우알파는 몸값으로 자신이 감금된 방 안에 자기 어깨 높이에 이르는 금을 가득히 채워줄 것을 약속하였고, 그의 명령 하에 잉카인들은 대량의 금을 방안으로 수송하였다. 그러나 잉카인들이 약속을 이행한 뒤에도 에스파냐군은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아타우알파의 목뼈를 부러뜨려 처형하였다.

나무위키를 보면 피사로는 잡힌 황제를 안심시킨다. 첫째, 우리는 기독교의 신 아래 신성 로마 황제랑 교황의 이름으로 수많은 왕국들을 정복한 무적의 전사들이니 전쟁에 지고 포로로 잡혔다고 치욕스럽게 생각하지 말 것. 둘째, 툼베스를 비롯 저멀리 아즈텍이나 파나마에서 우리에게 복종하고 충성한 사람들은 다 자유롭게 풀려났다. 셋째, 우리는 평화적으로 만나달라고 간청했다. 그런데 당신이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책을 집어던지며 거부했다(싸움이 일어난 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 네 잘못!). 아타우알파도 이번에는 용케도 속뜻을 전부 알아들었는지,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은 휘하 장군들이 잘못된 간언을 했기 때문인데, 공교롭게도 그들은 이미 일전의 전투에서 전부 죽었다고 대답했으며, 살아남은 잉카인들에게 명을 내려 더 이상 도망치거나 당황하지 말고 계속 황제를 따르라는 명을 내렸다.
피사로의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식민지 건설 및 본인이 그곳의 총독이 되는 것이기에 피사로로선 잉카의 최고 통수권자인 황제를 최대한 옆에 끼고 있어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식민지 건설이 가능했기 때문에 황제를 죽인다거나 잉카에 대해 정복전쟁을 벌인다거나 할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코르테스는 그나마 휘하 병력이 천 단위인데다 틀락스칼라라는 든든한 동맹 원주민 세력이 있었다.
피사로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달성되었다. 이제 남은 건 차근차근 공을 들여 잉카의 통치체제를 스페인에 흡수하는 일로 아타우알파는 이 괴상하고 무시무시한 이방인들의 금은에 대한 끝없는 탐욕의 약점을 알아차렸다. 탐욕스러운 침략자들에게 그 유명한 제안을 한다.바로 자기가 잡혀있던 방의 부피만큼 금과 은을 줄 테니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아타우알파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으나, 이 제안이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게 된다. 어차피 피사로는 재물과 상관없이 황제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고,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 버려 아타우알파는 살해되었다.
처음에 아타우알파의 처우는 나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생포된 이후에도 잉카인들 앞에선 냉정하고 거만한 태도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시종과 시녀들의 시중을 받았다고 하며, 매일같이 만찬을 열어 스페인인들과 함께 식사했다고 한다. 참고로 잉카는 아즈텍과 달리 라마고기가 있었기 때문에 인육에 환장할 필요는 없었다.
아타우알파는 스페인인들의 앞에선 황제라는 신분을 벗어던지고 매우 활기차고 다정하게 굴었다고 하는데, 특히 에르난도 데 소토와 피사로 가문의 둘째 에르난도 피사로와 친해져, 체스를 두는 법을 배워 몇 시간씩 같이 두었다고 한다. 스페인인들의 기록 또한 호의적이어서 황제는 매우 현명하고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문제는 막대한 양의 재화를 수집하고 분배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거의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아타우알파 입장에선, 쿠스코 입성을 앞두고 인질로 잡혀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 못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좀이 쑤실 수밖에 없었다. 또, 피사로 입장에선 운 좋게 황제를 생포하긴 했으나 선발대 인원이 너무 적어 쿠스코에 입성하기엔 불안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툼베스까지 황제를 끌고 갈 수도 없었던 게, 그렇게 되면 황금을 수집해서 운반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게 된다는 것. 또한 키스키스를 비롯한 잉카의 장군들은 자신의 주군을 구하겠다고 위협까지 벌였다.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에 피사로의 구원 요청 + 황제 생포라는 희소식을 들은 디에고 데 알마그로가 서둘러 후발대를 이끌고 도착했는데, 이는 아타우알파의 사망을 낳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버렸다. 왜냐면 후발대는 아타우알파 체포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산 분배에서 제외되었다. 알마그로 일행 250명의 입장에선 바로 코앞에 막대한 양의 금은보화가 존재하는데 늦게 왔다는 이유로 손가락 하나 갖다 대지 못하게 되었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스페인인들 사이에 질투와 불화를 일으키게 된다. 알마그로 일행은 피사로의 의견에 일단 이의 있음부터 외치게 되었고 아타우알파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
잉카의 재물이 다 모였고 피사로의 원정대가 이것들을 처리한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악명 높다. 전부 용광로에 넣고 녹여버렸다. 사실 피사로가 다른 문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야만인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였던것 같다. 단지 휘하의 장병들에게 재물을 정확하게 분배하기 위해서였다. 기록에 따르면 기병 1인당 은 82kg와 금 41kg, 보병들에겐 그 절반이 분배되었다. 이를 2014년 기준 시세로 계산하면, 기병 1인당 18억, 보병 1인당 9억원 정도 받은 셈. 피사로의 경우 기병의 일곱 배를 받았으며, 아타우알파에게서 보너스로 80kg짜리 황금 가마까지 선물 받았다고 한다. 한편, 카를로스 1세는 도장 한번 잘 찍어준 덕분에 금 1톤과 은 2톤을 받았다.
아타우알파는 절망한다. 금을 다 모았는데도 풀려날 낌새는커녕 새로운 스페인인들이 도착한데다가, 이들은 자기들이 재물분배에서 제외되었다며 흉흉한 표정으로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상태로 아타우알파는 대화를 통해 피사로의 진짜 속셈까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피사로가 어느 잉카 귀족에게 무심결에 "각 족장마다 스페인인을 한 명씩 붙여서 제국을 통치할 계획"이라고 털어놓았다.
피사로 집안의 둘째인 에르난도 피사로가 스페인로 돌아간다. 국왕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하고 추가지원을 요청하는 동시에 피사로와 알마그로 간의 분쟁도 조정하기 위했다. 스페인인들 중에서 가장 친했던 에르난도가 떠난다는 사실에 충격 받은 아타우알파는 울음을 터뜨렸으며 에르난도가 떠나게되면 알마그로 무리가 자신을 죽일거라고 외쳤다고 한다. 에르난도 본인도 몇 년 뒤 국왕에게 "신변의 위험을 느낀 아타우알파가 차라리 스페인로 함께 데려가달라"고 사정했다고 보고했다.
결국 아타우알파는 이들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런 의심을 주변인들에게 숨기지 않고 전했다. 이로 인해서 급기야 아타우알파가 비밀리에 휘하 장군들에게 전갈을 보냈으며, 이들이 카하마르카를 향해 행군 중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게 되었다.
당연히 스페인인들은 심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에르난도 데 소토가 기병 몇 명을 이끌고 정찰을 위해 떠나는데 소토가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니카라과에서 데려온 원주민이 달려와 도시 주변에서 잉카군을 목격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멘붕 상태가 된 스페인인들은 긴급 회의를 열었으며, 격론 끝에 아타우알파를 처형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이때, 피사로는 황제를 살려두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으며 그의 처형에 반대했다. 디에고 데 알마그로가 강력하게 처형을 주장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며 자신이 처형된다는 것을 알게 된 아타우알파는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엉엉 울면서 이들의 뒤통수를 친다는 소문은 잘못된 것이라 주장했으며 금과 은을 두 배로 주겠다고 제의하지만, 이미 스페인인들은 의심을 했다.
1533년 7월 25일, 아타우알파는 억지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교살된 뒤 시신은 화장된다. 죄목은 근친상간, 일부다처제, 우상숭배였다. 기록에 따르면 피사로는 매우 안타까운 나머지 흐느꼈다고 한다.

서양인 오랑캐는 타국 인질을 잡아 분명히 황금을 받으면 풀어준다고 해놓고 결국은 사형을 시켜버리고 말았는데 평행이론처럼 미국이 스페인의 바통을 이어받아 또 달러 금태환에 대해서 사기를 치고 있다.
달러화를 기축으로 한 금본위제인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체제가 고전적 금본위제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태환을 독자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금태환을 실시하는 것으로써, 타국 통화는 모두 USD와의 환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과 연결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화폐가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고정환율로 달러와 고정되고, 달러는 35달러당 1온스로 교환할 수 있게 고정한 것이다. 이 제도를 시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2차대전동안 유럽의 각국이 미국의 물자를 금으로 구입하고 패전국들이 전쟁배상금을 금으로 지불하면서, 종전 당시 미국이 야마시타 골드등을 훔쳐 전세계 금의 무려 70%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레튼 체제의 아버지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패권국이 된 미국의 USD를 통용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소련의 스파이였다.
1971년 이전은 달러에 TEN DOLLARS IN GOLD COIN이라는 문구가 있다.
금태환지폐.jpg
금태환지폐를 비교해보라!
불환으로 변경 이후 달러는 98%에 가까운 가치폭락을 보여 주었다.(2010년대 초, "USD 1382/금 1온스") 그러나 파운드 스털링이 기축통화의 자리를 탈환하지는 못했고, 그대로 미국 달러가 유지하고 있다.
이런 사기사건이 미국의 세계경찰 패권 무력으로 유지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역사를 볼 때 강건했던 바빌론, 메데페르시아, 그리스헬라, 로마, 중국 청나라, 대영제국처럼 언젠가는 이런 사기를 못치게 점차 기울고 있고 중국에 패권을 내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안전자산이라면 첫째는 금, 둘째는 달러이다. 금은 교환이 어렵고 저장이나 운반이 힘들어 실제 거래하기 불편하고 종이금을 찍어내 금값상승도 없다. 달러는 앞서도 말했다 시피 금태환이 안되는 휴지조각이다.
따라서 대안은 그래픽카드로 채굴하는 금이라고 불리는 비트코인밖에 없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1268만원으로 물론 쪼개서 구매가 가능하지만 이미 서민이 구입하기 끝이 났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더리움이나 리플, 퀀텀, 메디블록이나 보스코인등 일반인이 살수 있는 알트코인이 존재한다.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의 기만 미국 달러 금태환 사기 비트코인 알트코인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