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 역시 소진처럼 여러나라를 떠돌며 유세를 펼치다가 초나라 재상의 식객이 되었는데 만찬이 끝난 뒤 재상은 몸에 가지고 있던 옥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장의가 곧 의심을 받았고, 재상은 장의를 붙잡아 고문을 가했다. 장의는 고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했고 소득이 없자 장의를 석방했다.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장의에게 아내는 원망과 푸념을 늘어놓았다.
당신이 쓸데 없이 책만 읽고 유세만 벌이지 않았더라면 이런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 아니오?
아내의 말을 들은 장의는 느닷없이 입을 쩍 벌리고 혀를 쑥 내밀며 아직 내 혀가 있는가 보시오라고 말했다. 아내는 아직 그대로 있군요 라고 대답하니 장의는 싱긋 웃으며 그럼 됐소라고 말했다.
사기 70권 장의열전은 “내 혀가 아직 그대로 있는가라는 설상재 舌尙在 한마디는 훗날 많은 책략가와 유세가를 격려하는 말이 되었다.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김영수 지음, 위즈덤하우스, 페이지 485-486
장의(張儀, ? ~ 기원전 309년)는 위나라 출신으로, 연횡책의 대가이다.
친구 소진(蘇秦)과 함께 귀곡 선생(鬼谷 先生)에게서 수학한 적이 있었다. 그는 진나라에 등용되기 전까지 갖은 수모를 겪다가 마침내 진 혜문왕을 만나 정치 고문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재상으로 승진되었는데, 촉나라를 평정하고 위나라의 일부를 차지하는 공을 세웠다.
6년 뒤에 진나라와 짜고 위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위나라로 하여 진을 섬기게 하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아니 하자 진에게 몰래 연락해 위나라가 크게 지도록 만들었다. 이듬 해 제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고 마침내 진나라가 위를 공격할 목적으로 먼저 한나라를 쳐, 8만 명을 몰살시켰다. 이에 장의는 위나라 왕을 설득하여 소진이 이룩해낸 합종책의 약속을 깨고 진나라와 화친했으며, 장의는 다시 진으로 돌아가 재상이 되었다. 3년 뒤 위는 진을 배반하고 합종에 재가담했으나, 진이 공격하자 다시 화친했다.
장의는 강대국 초나라로 달려가 초를 망국의 위기에 몰아넣고, 다시 한나라로 가 그 왕을 협박, 한 역시 진을 섬기도록 했다. 진나라로 돌아간 그는 혜문왕으로부터 무신군(武信君)이라는 칭호를 받고 다시 제나라로 갔다. 제나라 왕 또한 장의의 설득을 듣고 진을 섬기게 되었으며, 조나라로 간 장의는 또한 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연나라까지 설득하여, 진나라와의 연횡책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그는 진나라로 돌아갔으나 왕이 혜문왕의 아들 무왕으로 바뀌어 있었다. 진 무왕은 어릴 적부터 장의를 싫어하였을뿐더러, 이를 눈치챈 신하들이 비방을 하기 시작했다. 장의와 왕의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이 퍼져 다시 모든 나라는 연횡책을 버리고 다시 합종책을 택하였다. 이후 장의는 자원해서 위나라로 간 뒤 1년 동안 재상으로 있다가 죽었다.
尙有十二 微臣不死 상유십이 미신불사: 우리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고, 이 보잘것 없는 신하가 죽지 않았습니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말한 말인데 혀가 아직 남아 있다는 장의의 태도와 비슷하다.
상처로 흉터가 발생하면 피부가 완전히 망가져 흉측하다. 그런데 아직 피부에 콜라겐과 엘라스틴등의 교원섬유 탄력섬유의 결합조직이 남아 있다. 따라서 잘못 배열이 되었지만 다시 재건이 가능하다.
특히 성형 수술 흉터나 화상 흉터등 다양한 흉터조직에 대해서 강남역 4번출구 자향미한의원에서 흉터침으로 혀가 있어서 유세가로 재기한 장의처럼 흉터를 원래 피부에 가깝게 복원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