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얘기 좀 해야겠다. 술 많이 마시기로, 내 아버지만큼 술 마시는 분은 아직껏 보질 못했다. 하루에 백 잔은 마신다, 하여 별호가 <1日 백 잔>이다.
아버지는 이조 말 순종 임금 때 태어나셨다.
소년과 청년 시절을 일제하에서 보냈다. 부안 변산 산골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까막눈이다. 글 공부를 못했다는 얘기다. 생업에 의욕은 강했던지 15살 때 곰소항과 격포항, 어선 건조장에 목재 납품하는 일을 주관했단다.
옛날에는 열다섯 살짜리 소년도 어른 취급을 했었나 보다. 변산에서 아름드리 목재를 벌목하여 목도꾼들을 동원하여 곰소항까지 운반하는 일을 도맡아 했는데 15세 소년이 무슨 궁리가 있어 이문을 보았겠는가? 큰 적자를 보고 빚더미에 몰리자 나의 아버지, 소년은 밤에 쪽배를 훔쳐타고 밤바다를 향해 도망쳤다.
며칠 동안 천신만고의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일본의 한 어촌마을, 갯벌에 쓰러져 있는 소년을 구한 사람은 어촌마을 주막집 주인, 소년은 그렇게 살아났다. 왜 어를 모르니 자연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된 셈,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주막집 허드렛 일꾼이 됐다.
일하다 출출하면 몰래 주방에 들어가 목기 잔으로 한 대접씩 퍼마신 것이 시초가 되어 훗날 1日 백 잔의 위업을 이루게 된다. 소년은 주막일 이 없을 때는 갯가 어선 건축장에 나가 배짓는 목수들의 기술을 구경 타가 버려진 나뭇조각 등을 주워다가 솜씨 것 손님들의 식탁을 만들고 의자 등을 만들어 주막집 주인을 즐겁게 해주었다.
어느 날 어선 건축장의 도목수(기술이 제일 가는 목수, 건축장의 총괄 책임자)가 주막에 술 마시러 왔다.
소년의 물건 만드는 솜씨를 유심히 보고 주막 주인과 한참 뭐라 떠들더니 주막 주인에게 꽤 많은 돈을 건네고 소년을 데려갔다. 팔려 간 것이다. 소년은 그때부터 어선 건축 일을 배우게 됐고, 기술이 일취월장하여 도목수 의 수제자 급이 됐다. 후일 그 도목수가 조선(한국)의 인천 조선소 공장장으로 부임할 때 따라왔다.
조선(한국)에 와서도 많은 어선을 건조했고 그 기술을 인정받아 당시 조선총독부 데라우치 총독의 유람용 모터보트를 손수 제작하여 한강에 지수 시켜 조선인으로써 최초의 모터보트의 제작자가 됐다.
세월은 수레바퀴처럼 흘러가, 일제는 패망하여 물러갔다. 소년은 청년기를 거쳐 장년이 됐다.
황해도 해주 바닷가에 자리 잡고 어선 건조업을 하며 나름대로 생업의 기틀을 세웠다. 매일 백 잔씩을 마셔가며... 3.8선이 막히고 전쟁의 기미를 눈치챈 나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배에 싣고 북한을 탈출했다.
<일본으로 가자.> 그런데 나의 어머니가 엄청난 뱃멀미를 하셨다. 어머니 뱃속에는 내가 자라고 있었기에 잘못하면 두 목숨 잃겠다. 싶어 아버지는 연평도에 닻을 내렸다. 6월 25일 전쟁은 터졌다. 연평도는 순식간에 북괴 치하가 됐다.
북쪽 세상이 싫다고 해주에서 도망친 아버지는 걸리면 죽는다. 그 아버지를 술이 살렸다. 주, 약 장창 마셔대고 동네 떠나가라 고래 고래 외쳐대는 주정뱅이 더러, 학습이다. 교육이다. 무슨 동원령이 멕일 턱이 없다.
' 에잇! 저 사람~ 저 사람 저리 가라 그래!'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연평도에 북괴군이나 내무서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한국 경찰이 진주했다. 보도연맹이다. 무슨 연맹이다. 모이는 곳에 따라다니며 장부에 이름 올린 사람들은 모조리 끌어나가 맞아죽거나 총살됐다. 나의 아버지는 매일 백 잔씩 마셔가며 건재했다. 전쟁은 끝났다.
나의 아버지는 얼마나 북쪽이 싫었던지 한발이라도 남쪽으로 간다고 고향 땅 부안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60의 노년이 됐다. 그때는 60이면 극 노인이다. 우선 노쇠로 인해 백 잔의 술은 마실 수 없게 됐다.
병이 든 것이다. 위장은 위장대로 간은 간대로, 폐렴이며, 해소며 뼈골 마디 마디 안 쑤시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의사도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어떤 약 처방을 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앞으로는 단 한 모금 의 술도 드시게 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의사는 엄포를 놓고 갔다. 송장 치르려면 맘대로 하라 했다. "아버지, 의사 말 들으셨죠? 이제 절대로 술 드시면 안 된대요..." 술을 강제로 끊게 했고 여러 가지 약을 시차를 두어 복용케 했다.
그러나 효험이 없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아버지는 이제 갈 곳은 저승뿐인 것 같았다.
<막내야!>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내가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 죽기 전에 내 소원 한 가지만 들어다오.>
나는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시려나 보다 했다.
"네. 아버지 말씀하세요."
<건어물 전에 가면 북어가 있다. 그 북어 두 마리만 사다가 방망이로 팍! 팍! 팍! 두드려서 고기 살을 부드럽게 해서...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춰 끓이고. 거~ 포도주란 게 있다. 포도주 두 병만 사 오너라, 내 죽어도 그건 먹고 죽어야겠다.>
나는 서둘러 아버지의 말씀대로 했다. 돌아가실 건데 그것도 안 해드리면 큰 벌을 받을 것만 같았다. 뜨끈 뜨끈 한 북엇국을 후후 불며 드시고 포도주 두병을 다 마셨다. 그리고 주무셨다. 푸우~ 푸우~ 깊은 잠을 주무시고 난 아버지!
<막내야...>
"네, 아버지"
<병원 약 많이 남았지?>
"네"
<다 갖다 버려라 내 병엔 술이 약이다.>
"...?"
아버지는 그 후로도 6년을 더 사셨다. 내가 군에 입대하여 추운 엄동에 포병 RCT 훈련을 마치고 귀대하자. 관보(전보)가 와 있었다. <부친 사망 급 귀가요> 면장의 확인인 이 찍혀 있었다.
급히 귀향했으나 아버지는 이미 땅속에 묻힌 후였다. '1日백 잔'도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