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서해안 바닷가를 쭉 더듬어 내려오면 충청도 태안반도를 지나 안면도가 나오고 군산을 지나고 나면 바다 쪽으로 툭 불거진 산세를 만난다.
거기가 이름하여 변산이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쳐 있다고 변산반도 라 부른다. 산면이 바다이기는 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를 한 반도라 부르듯이 변산반도 돌아가면서 바다와 인접된 곳곳마다 절경이고,
지역마다 항구 아니면 포구다. 크고 작은 어선들이 드나들 때마다. 싱싱한 해산물이 어장에 펄떡이고 어부들의 풍어 가는 흥겨웠다. 그러나 6.25 참상은 변산을 비켜가지 않았다. 폭격에 나무들은 불탔고 50년 대 60년 대의 참혹한 국가 경제는 민중의 발길을 변산으로 변산으로 향했다.
당시 부안군 민 중에서 변산에서 걷어온 나무로 밥하고 방구들을 덮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무를 잘라먹다 나무 없으면 가랑잎을 긁고 가랑잎이 떨어지면 나무뿌리를 뽑아냈다. 말 그대로 민둥산을 만든 것이다. 바다를 겸한 지역적 특성 때문인 지 북한 간첩단 출몰 지역이기도 하여 대대적인 대 간첩 작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변산의 주봉은 신선봉이고 그 옆으로 옥녀봉이 있고 또 동쪽으로 월명산이 있다. 월명산 산 중턱에 월명사가 있는데 월명사 마당에서 바로 보이는 서해 위도만 의 은빛 물결은 조수의 밀물 때 와 석양의 황혼이 어우러져야 구경 할 수 있는 절경이다. 월명사 아랫길로 내려오면 드문 드문 몇 가호 초가집과 너와 집이 있는 가마소 가 나온다. 6.25 전란에 웅거하고 있는 산 빨치산을 퇴치하기 위해 국군이 가마 솥 걸어놓고 밥해 먹었다는 가마소, 개울의 맑고 풍부한 수량으로 우리 군인들이 밥해 먹고 물 마시고 빨래하고 목욕도 했으리라.
가마소에서 동쪽으로 곱이 곱 이를 수도 없이 넘다 보면 눈앞에 턱하니 넘기 어려운 악산이 가로막으니 나무꾼들이 이 고산 길을 넘으면 휴~ 하고 거친 한숨이 나온다. 하여 휴양골, 이 골이 변산의 동쪽 가상 자리다. 희미한 안무 속에 바라 보이는 들녘에 멀리 고창만 줄포만이 보이고 흥덕을 거쳐 정읍으로 가는 버스 길과 들판 길이 아스라이 보인다. 휴양골 아래로 내리 내리 걷다 보면 좌측에 깎아지른 거대한 암벽 아래 굴바위가 보인다.
바위 굴의 속 넓이가 얼마나 넓은지 옛날 필자가 국민학교 시절 소풍을 갔을 때 1개 학년에 다 들어가서 정렬하고 놀기도 하고 도시락도 먹었으니 그 크기가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 밑으로 우동리 저수지가 있고 그 저수지 아래로 평지 길이 나는데 그 아래 동네가 우동리다. 속칭 우뱅이라고도 한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이승만 정권 말기에 이 마을에 있었던 윤 씨가 이 비극을 이야기하려 한다.
우동리 사는 윤기범 군은 부안 농고를 거쳐 육군에 입대 간부 후보생으로 소위가 됐다. 계급이란 올라가는 것이니 중위를 달고 대위가 됐다. 전방부대 중대장으로 복무 중 어느 날 방첩대 요원들이 들이닥쳐 윤 대위를 연행해 갔다. 방첩대에서 엄중한 심문을 받았다.
'윤 대위... 솔직하니 얘기 하라! 윤 용범이 누구냐?'
윤용범이요? 제... 제 형으로 알고 있는데요?
'형으로 알고 있다...? 네 형이 아니고 형으로 알고 있다?'
네, 저는 사실 그 형은 얼굴 기억도 잘 안 납니다. 물론 사진을 보아 알고는 있지만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일본에서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가서 지금까지 생사를 모릅니다.
'그래? 그런데 그 형이 살아 있다.'
그렇습니까? 그럼 그 형은 어디 있습니까?
' 이 새끼야~ 어디 있는 줄은 네가 더 잘 알잖아!'
저는 ... 모릅니다.
'몰라~? 이 새끼가 죽어봐야 제대로 불껀가?'
이것 보시오. 무조건 욕지거리 만 할게 아니라 제대로 말해 주시오. 뭘 알아야 무슨 대처를 할게 아니요?
나도 대한민국의 육군 대위요. 나라에 충성 맹세한 사람이란 말이요.
' 호오~ 그래? 그 기백 하나는 됐구먼, 그럼 여기가 어디냐?'
육군 방첩대 아닙니까.
'뭐 하는 곳이고?'
말 그대로 첩자를 잡아내는 곳 아닙니까?
'그래, 방첩대에서 이십몇 년 전에 행방불명 된 윤 용범에 대해 추궁하면 짐작이 갈 텐데~'
그렇다면 형 이...?
' 그래, 거물 간첩이야. 남한에 침투하여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려는 동선을 우리가 막으니 번번이 귀신같이 빠져나간단 말이야. 우리는 당신 부모님 계신 고향 마을에 그물을 쳐 놓았지. 거기는 한번 다녀갈 거란 생각이야. 보이는 즉시 사살하란 명을 내려놓았어. 여하튼 당신 앞길도 캄캄 해질 거야.'.........?
'무슨 생각 해?'
나를 내보내 주시오. 내 보내 주면, 내가 형을 만나 자수하고 전향토록 하겠소.
'그게 안되면...?'
그땐 내 총으로 쏴 죽이겠소. 절대로 산목숨으로 북으로 돌아가진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게 마음대로 될까? 당신 부모님이 살아 계신 데 말이야.'
우리 부모님도 어려운 형편에 일본 유학 보내며 빨갱이 되어 있길 바라진 않았을 겁니다.
' 좋소. 나 윤 대위를 믿어 보겠소. 하나 죽이는 것보다는 전향 쪽을 우리는 바랍니다. 그것이 당신에 가정이나 국가적으로 이롭습니다.'
저도 그쪽을 더 원합니다.
'건투를 빌겠소..."
윤 대위는 부대로 돌아왔다. 대대장에게 경위를 설명했다. 똘똘한 부하 5명을 인솔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과 만일을 대비하여 칼빈 소총 다섯정과 실탄 50발 그리고 권총 1자루와 실탄 10발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날 윤 대위는 부하 5명을 사복을 입혀 데리고 고향으로 갔다.
윤 대위는 부하들 과 집 주면에 잠복했다. 잠복 3일째 머슴 최 씨가 빈지게 걸머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윤 대위는 무심히 넘겼다. 그러다 한참 만에 무릎을 쳤다. "머슴, 최 씨가 수상하다?!"
최 씨가 나무하러 갈 일이 없다. 윤 씨 집안엔 드넓은 선산이 있다. 선산의 나무만 해도 지천이다. 최 씨가 힘겹게 먼 산 나무할 일이 없는 것이다.
윤 대위는 그때부터 눈에 불을 켜고 살폈다. 너덧 시간 후 날이 어둑어둑 할 때 최 씨가 돌아왔다.
마른 삭정이 나무 두 단을 짊어지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지게질이 서투르다. 나뭇짐이 기우뚱 기우뚱하는 게 지게 짝이 등에 묻지를 않는다. "형이다...!"
윤 대위는 곧바로 부하들을 배치했다.
집 뒤에 2명 양옆에 1명씩 2명 그리고 마당에 1명 도망치면 총을 쏘되 허벅지를 쏘라고 명했다. 그리고 오른손에 권총을 쥐고 마루에 올라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저 기범이 예여.
방문을 열고 막아서는 어머니를 제치고 권총을 들이밀었다. 형, 이었다.
형이 머슴 최 씨 옷차림 그대로 어머니와 이야기 중 들어오는 동생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윤 대위는 두 손으로 형의 머리를 겨냥했다.
형님, 3일 전부터 이곳에서 형님을 기다렸소. 일어서시오. 밖에 내 부하들이 있소. 도망칠 생각은 마시오.
그때 노모가 윤 대위의 팔에 매달렸다.
'이놈아~ 이놈아 나 죽이고 네 형 잡아가거라 나 먼저 죽여라 이놈아~'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형은 내 손에 잡혀야 형도 살고 나도 삽니다. 다른 군인에게 잡히면 형도 죽고 나도 죽습니다.
형님. 두 손을 머리에 얹으시오. 그리고 밖으로 나가시오.
간첩 윤 용범은 동생의 말대로 두 손을 머리에 얹었다. 그리고 문 밖으로 나가 신을 신고 마당에 섰다. 윤 대위 눈짓에 부하가 윤 용범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때다. 윤 용범이 쏜살같이 대문 밖으로 도망질쳤다. 부하들도 당황하고 윤 대위도 놀랐다. 부하들이 총을 겨눴다.
쏘지 마! , 쏘지 마라! 그리고 윤 대위 가 손수 권총을 겨눴다. 허벅지를 겨냥하여 방아쇠를 겨눴다. 타앙~ 총소리와 함께 윤용범이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절뚝 거리며 뛴다.타앙~ 다시 총을 쐈다. 윤용범이 핑그르 돌며 하늘을 보며 쓰러졌다. 가슴에선 더운 피가 솟는다. 두 번째 총알은 가슴을 관통한 것이다.
윤 대위가 달려와 형을 부둥켜 안았다. 형님 왜 이러십니까? 왜? 어머니 앞에서 형을 죽이는 꼴을 보이게 하는 겁니까? 형도 살고 나도 살고 다 사는 길이 있는데!
'용범은 웃었다. ' 기범아... 내가 이렇게 죽어야 네가 산다. 그리고 북쪽에 있는 내 아내와 자식이 산다. 용서해라 기범아...'
이것이 50여 년 전의 우동리 윤 씨가의 비극이다.
그러나 어찌 윤 씨네 만의 비극이겠는가? 양분된 국가의 비극이오.
민족의 비극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