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두 번째 이사 온 집이고 3층 높이다.
동네 지대 자체가 높아서 3층만 해도 엄청 높은 편인데 창문까지 커서 부엌 창문, 거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집 안에 선풍기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분다. 선풍기를 돌리는 방은 방문 닫아놓고 집필하고 있는 내 방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햇빛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향을 바꿔가면서 거의 직사광선일 수준으로 들어오는데 덕분에 집 안이 습하다거나 곰팡이가 핀다거나 하는 문제는 없다.
옛날 집에 비하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큰데 그래도 내 집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떤 유대감이나, 귀속되는 느낌이라던지, 그런 종류의 편안함은 느끼지 못한다.
방금 낮잠을 잘 때 꾼 옛날 집 이야기.
옛날에 살던 집은 마당이 딸려 있는 2층짜리 연립주택이었는데 벽돌이 이어져 있다 뿐이지 개개인의 주택들이 모여서 있는 구조의 집이었다. 나는 1층의 작은 방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방으로 받았다가 고 3이 되고 나서 2층의 큰 방을 받았다.
1층 작은 방에 대해선 이렇다 저렇다 할 기억이 별로 없는데 부스러기 같이 남아있는 기억이라고 해도 별로 좋은 건 없다. 나는 용납받지 못하는 창의성을 가진 아이였고 항상 혼나고 있었으니까.
그 집에 대한 추억은 2층 내 방과 마당, 뒷뜰 이 정도가 있는데 그렇게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 대해 남아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게 참 신기하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 집에서 나와 처음으로 이사를 할 때도 집 구조 빼고는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했던 게, 그 집에서 가져왔던 가전제품이나 가구나 도구들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고스란히 집을 옮겨온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집이 아니라 가구일지도 모른다.
고3은 여러모로 질풍노도 광란의 시기였고 농담이 아니라 목숨이 위험한 시기였기 때문에 2층 방에 대해서도 사실은 그렇게 좋은 기억이 많지가 않다. 선명하게 기억나는거라곤 2층 내 방 바로 밖이 마루인데 그 마루 전면창으로 들어오는 오후 4시의 햇살이 눈이 부실정도로 오렌지 빛이었다던가, 그 마루 밖에 살구나무 가지가 살짝 뻗어 봄이 되면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모습이 나 홀로 독차지였다던가, 이런 것이 있다. 그 살구나무 꽃은 내 첫사랑이 부러워하며 탐내던 광경이기도 했다.
또 하나, 2층 현관문으로 통하는 쪽 벽면에 벽면 가득 책장을 짜 넣어서 벽 자체를 책장으로 활용했는데 거기 있던 모든 책이 내 것이었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내 방에 위에서 아래까지 4단짜리, 총 3칸 짜리 책장으로 벽면 한쪽을 꽉 메워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장서가 400권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도 아동용은 전부 처분하고 도서관에 기증하고 난 다음의 숫자다. 이사올 때는 이 책의 절반정도를 처분했지만 두 번째 집으로 이사올 때는 그 남은 분량의 80% 정도를 처분해서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 나는 전자책을 가지고 있다. 킨들 페이퍼화이트 4를 그냥 이런저런 옵션 다 붙여서 가장 비싼 가격 주고 샀는데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전자책 얘기의 결말이라면 내가 울적한 마음으로 공간이 없어서 처분했던 책들을 지금은 한 손 안에 수십 수백권씩 소장하고 있다는거다. 도서관을 들고 걸어다닐 수 있는 세상이라니 기술의 진보는 참 놀랍다.
2층은 원래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한 채의 집으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렸을때는 다른 가족에게 세를 주었었다. 그 집 아들이 나보다 4살 정도 어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곧잘 나한테 누나 누나 하고 따라다녀서 그 애를 내 세발 자전거 뒤에다 태우고 마당을 질주하던 게 어린 날의 기억이다. 저녁시간에 그 애랑 놀려고 2층에 올라갔다가 마침 저녁식사 중인 그 가족들 사이에 염치도 없이 끼어서 열무국수를 얻어먹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민폐가 아닐 수 없는데 어려서 용납이 됐던건지 그 시대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던 때였던건지 아니면 그 애랑 워낙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 집 아주머니 아저씨가 용서하고 넘어가준건지는 모를 일이다. 셋 다 일수도 있다.
애가 참 귀여웠다. 새끼손가락을 내밀면 그 손가락을 꼭 붙잡고 내 뒤를 졸졸졸 따라다녔다. 그 애에 대해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벽 같이 커다란 남자가 되서 연세대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는다. 눈 앞에 나타나도 내가 기억하는 그 꼬마 어딨냐고 두리번 두리번 찾고 있을 것 같다.
어쨌든 2층이 원래 다른 사람의 집으로 쓰이다가 그 가족이 집을 나가고 약간의 개조를 통해 집 안에서도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게끔 계단을 만들었지만, 본래는 마당에서 2층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게 바깥에 철제 계단이 있었기 때문에 2층 전용 현관도 따로 있었다. 여름이면 그 현관문을 활짝 열고 모기장을 쳐놓고 자연바람을 맞으면서 거기 앉아 책을 읽곤 했다. 개를 키울때는 마당에서 뛰어놀던 개가 우다다 달려올라와서 그 현관 앞에 앉아 쉬다가 자고는 했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추억이 없는 건 아닌데 지금 생각해보면 묘하게 햇빛이 들지 않는다는 인상이 있는 집이었다. 창문도 분명히 크고 널찍하고 햇빛의 색깔까지 기억할정도로 선명한데 그 시기를 회상하면 이상하게 어둡고 음침한 느낌이 있다. 굳이 내 인생이 괴로웠기 때문은 아니다.
그 집에서 실제로 뭔가를 본 건 2~3번 정도 있다. 귀신이라고 하기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귀신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나만 이상하다 싶을정도로 많이 봤고 나머지 가족이 공통적으로 겪은 것은 2층에 있을 때 유독 현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2층에 있는데 1층 현관에서 누군가 자기를 부르거나, 다른 사람을 부르거나, 발소리가 난다던가 하는 것이다. 나는 엄마 목소리는 몇 번 들었는데 오빠는 바깥 철제 대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까지 들어서 도둑인 줄 알고 골프채를 들고 달려갔었다고 한다.
그 집에서 제일 무서운 건 주먹만한 바퀴벌레였기 때문에 귀신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기는 했다.
글이 길어졌기 때문에 나머지는 다음에.
그보다 꿈일기라고 써놓고 그냥 단순한 회상글이 됐다. 꿈에 옛날집이 나왔는데 내가 기억하는 그 집이 맞았지만 어딘가 음침하고 기분나쁜 분위기가 있었다는 걸 쓰고 싶었다. 이렇게 한 줄로 정리될걸 줄줄이 늘어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