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재능을 사랑하기로 했다
현요아
6살 보람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장난감을 리뷰하거나 뽀로로 짜장면을 먹는다. 유튜브의 '튜브'와 '보람'을 합쳐 채널 이름은 '보람튜브'. 그 꼬마친구는 많은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95억짜리 강남 빌딩 매입, 월 순수익 15억을 번다. 이 소식을 듣고 나서 많은 이들이 현타를 겪고 있다. 나도 엄청난 현타를 매일 같이 갱신하는 요즘이라 사람들의 반응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졌다. 역시나 보람튜브의 영상들은 댓글창이 막혀있었다. 그래서 강남 건물을 95억에 매입했다는 뉴스 영상(물론 이것도 유튜브)을 눌렀다. 초 단위로 업데이트 되는 댓글들을 쭉 읽었는데, "내가 왜 돈 내고 가야 할 대학 때문에 재수를 하는거지?"라는 댓글부터 "다 때려치우고 싶다. 인생 자체에 현타를 느낀다."라는 댓글까지 연령과 직업을 불문하고 모두 보람이를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급기야 자신의 인생에 물음을 던졌다.
나는 저번 주부터 웹소설 강의를 듣는다. 강사는 오리엔테이션에서 <구르미 그린 달빛>과 <김 비서는 왜 그럴까>를 언급하며 몇십억을 얘기했다. 추가로 <템빨>이라거나 <달빛 조각사>의 억 수입들도. 이렇게 유명한 웹 소설 뿐만 아니라 네이버나 카카오페이지 상위랭크에 오른 작품들도 어느 정도는 번다, 라 얘기했고 그 수익은 내가 80%의 대출을 끼고 들어온 전셋집을 킁 콧김 내고 가버릴 것 같은 정도의 돈이었다. 웹소설은 상대적으로 내가 4-5년간 배웠던 순문학보다 문장력도 약하고, 가장 중요한 건 중학교 때 내가 흥미삼아 썼던 판타지소설의 계보를 잇는 글이었다. 1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일주일 간 내리 그 생각만 했다. 순문학을 왜 배웠나 싶었다.
보람튜브를 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만 같다. '아,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유튜브 할걸', '보람튜브처럼 우리 애 먼저 유튜브 시켜둘걸.' 작년 비트코인이 2000만원을 돌파했을 때도 이런 반응이었다. '아, 회사 다 때려치우고 비트코인이나 할걸.', '그 때 얼마 사뒀으면 지금 일할 걱정 없이 평생 노는 건데.' 가장 중요한 건 돌릴 수 없는 시간. 현대 판타지에 등장하듯 시간을 슉슉 뛰어다닐 수 없으니 암호화폐의 가치와 유튜브의 가치를 알긴 어렵다. 생각해보니 이 후회는 과거부터 계속됐던 로또와도 비슷하다. 열 자리도 안 되는 이 숫자들만 알면 평생 일하거나 공부할 필요 없겠네. (아직도 로또를 다루는 현대 판타지물이 많다).
애매한 재능이 싫었다. 암호화폐의 꼭대기에 선 사람, 공부의 꼭대기에 서서 청담동에서 몇 십억을 버는 의사, 행사 조금만 뛰어도 몇 천만원을 버는 연예인, 글을 너무 잘 써서 전 세계 동시 출간되는 유명 작가들.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어도 죽을 때까지 될 수도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을 보면 현타만 느껴지니까.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건 두 번째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무의미로 만들곤 하니까.
보람튜브를 다룬 영상에 달리는 댓글을 실시간으로 보다가 휴대폰을 껐다. 그리고 카톡 메모장을 켜서 이렇게 적었다.
돈을 벌기 위해 유튜브를 하고,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취업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애매한 재능들을 조금씩 모아서 철저히 내 재미를 위한 일을 하는데 그 일이 돈을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는 무슨 말만 쉽지 엄청 어렵다. 많은 선배들은 '좋아하는 거랑 잘 하는거 딱 나눠. 좋아하는 걸 일로 하면 도피처가 없어. 일이 싫어진다니까.'라고 했지만,
저는 잘 하는 게 없어요! 껄껄...껄....껄....
그러니 좋아하는 걸 많이 해서 잘 하는 걸로 만들고, 그 잘 하는 걸 하며 돈을 벌어야지. 웹 소설을 가르쳤던 그 강사도 작가들의 억대 수입을 공개하고는 이렇게 끝마쳤다. "여러분도 벌 수 있어요. 해봅시다!"가 아니라(사실 이건 내 상상이었음), "하지만 돈을 목적으로 쓰면 절대 안됩니다.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라고. 약사라는 직업을 병행하고 글을 썼던 마흔 살의 <김 비서는 왜 그럴까> 작가님처럼. 순전히 흥미를 가지고 써야만 독자들도 흥미를 보인다고. 추가로, 순문학을 배웠으므로 웹소설까지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문장력과 짜임새 있는 글을 천천히 잘 배워뒀으니, 이제 펼칠 때다! - 그 말은 다수에게 하는 말이었으나 나는 마치 일대일 상담이라도 받는 듯 마음 한 켠이 따땃해졌다.
남들보다는 잘 그리지 않지만 좋아하는 색연필 그림, 다니다가 그만둔 피아노와 산수 학원들. 교양으로 배운 중국어와 댄스 스포츠까지. 내가 가진 이 애매한 재능. 돌이키거나 후회할 수 없으니 잘 모아둬야겠다. 특출난 재능 하나랑 애매한 재능 오십개랑 비벼보지 뭐. 물질중심사회에서 돈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그 당연한 이치를 위해 내가 행동하는 모든 동기와 가치를 넣지는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