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이대 메이퀸에 대한 오해와 진실!

hwangmadam(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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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제. 때를 추억하다 보니..
이번에는 또.. “메이퀸” 이 생각 났고..

“이대 메이퀸” 에 대해서.. 무수한..
오해와 거짓. 들이 난무. 하는 것 같아서..

그 진실! 을 한번.. 밝혀 보도록 하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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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여왕’ 이라는 뜻의.. “메이퀸” 은..
이화여대. 가.. 한국에서의 시초. 이긴 했다.

그러나.. 그 의미가.. 사뭇 달랐는데..

1908년에 열린.. 22회 이화학당 개교기념 축제에서..
창립자였던,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에게..

꽃을 엮어 만든 관과 함께.. ‘메이퀸’이라는..
칭호를 헌사. 한 것이 그 시초였기에..

그 시작은..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 이었다고 하겠다.

학생들 중에서.. 메이퀸을 뽑았던 건..
1927년 부터. 였는데..

이 때도.. 선정 기준은.. 성적, 품행, 신앙 등..

졸업 예정 학생들 중에서.. 우수한 학생! 을..
투표로 뽑는!! 대회를 만들었던 것. 이었고..

(흔히 생각하는.. 미(美)의 기준이 절대! 아니었다!!)

일제의 탄압. 으로.. 1933년부터 중단. 되었던..
메이퀸 대회는.. 개교 70주년. 이었던..
1956년에.. 다시 시작이 되었는데..

이때. 에도.. 자격 규정은..

“각 대학 각 학과 4년 급에서 (개신교) 신자로서
신앙이 돈독하며 성적과 품행이 우수하고
활동적이며 지도자격이 있는 대표적 인물.”

이런 기준으로.. 각 과에서..
한 명씩의 메이퀸 후보자가 투표로! 선출된 후..

(특이한 점은.. 선출된 후보자는..
기권. 을 할 수 없었다! 고 한다.)

교수와 동창생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최종 투표! 를 거쳐..
최고 득표자가.. 메이퀸으로.. 선출!! 되었다.

따라서.. 민주적인 투표! 의 결과. 였으므로..

스스로의 의지와 비용으로 출전. 했던..
일반적인 미인대회와는..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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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관식. 까지도..
선출되었던 각 과의 퀸. 들까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의상은 한복! 에.. 아악으로 연주를 했으니.. 이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보전하기 위함. 이었다.

그런데.. 60년대 중반부터.. 갑자기 메이퀸 대회가..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주목! 을 받게 되더니..

잡지에.. 표지 모델로 등장. 을 하게 되기도 했고..
(대관식 때의 사진을.. 그냥 막 갖다 쓴 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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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대관식 자체를..
취재하기 위해서.. 헬기까지 뜨고!!

구경을 하겠다고 몰려드는 인파에..
메이퀸의 옥좌가 무너지는 사태까지 발생!

이렇게.. 사회적 관심이 과열되자..
동문과 재학생을 중심으로..
메이퀸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전체 과의 절반에 달하는, 24개과가.. 성 상품화와
평등권 위배. 를 들어.. 과 퀸의 선발을 거부하면서..

1978년에.. 메이퀸은 폐지! 되었다.

따라서.. 메이퀸의 유구한 역사 속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 메이퀸. 이 존재했던 기간은..

겨우.. 10년 남짓.. 아주 짧게! 존재. 했던 셈인데..
그것마저도.. 선정의 기준과 방법이 전혀 달랐으니..

누가 과거에 이대 메이퀸. 이었다더라..
류의 ~ 카더라. 통신의.. 대부분은..
새빨간 거짓말! 이라고 할 수 있겠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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