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유명해진 소설이다.
소설가 한강의 작품은 묘사력이 뛰어나고, 문체가 세련되다.나는 '소년이 온다.'를 읽고, '채식주의자'를 읽었는데, 두 작품 다 그의 세련된 문체와 표현력에 감탄했다.
특히 아름다운 문체로 잔인한 장면을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다음날 새벽이었어. 헛간 속의 피웅덩이, 거기 비친 얼굴을 처음 본 건."
"꿈에 누군가의 목을 자를 때, 끝까지 잘리지 않아 덜렁거리는 머리채를 잡고 마저 칼질을 할 때, 미끌미끌한 안구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때, 그러다 깨어날 때. 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오래 지켜보았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조르고 싶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맺힐 때,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때,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솟구쳐올라와 나를 먹어버린 때, 그 때."
우리에게 우리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싶은 걸까.
'소년이 온다'에서는 광주 학살의 폭력성을,
'채식주의자'에서는 생명의 폭력성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폭력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감성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의 담백하고 세련된 문체 속에 빠져들면서,
나의 내면에 스민 모순에 아파했다.고기를 먹지 않다가 식물이 되기를 꿈꿨던 영혜의 모습을 아파했다.
그 모습에 상처받은 영혜 주변 사람들이 서늘한 감정으로 몰아쳐 왔다.
영혜는 채식을 하다가 채식의 폭력성을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가 금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작가가 아름다운 문체로 쓰고 싶었던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다 덮었을 때도 나는 그 핵심에 다다르지 못했다.
추측건대, 작가는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삶을 다른 관점으로 풀어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독자들의 열린 해석을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충격적인 꿈으로 채식과 금식을 택한, 현실에 절대 타협하지 않는 영혜의 삶을,
아내의 동생을 사랑하게 된, 그 사랑을 예술로 표현하고 싶은 예술가의 삶을,
남편과 동생의 성관계를 보게된 영혜 언니의 끈질긴 책임감을,독자의 해석에 맡긴 것이리라.
나는 영혜 언니의 끈질긴 책임감과 상처에 주목했다.
무언가의 항의하듯 어둡고 끈질긴 눈길로 나무를 바라보던 그녀의 감정이 아련했다.
동생을 존중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그녀의 내적 갈등이 '우리네 삶'의 모습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