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아저씨! 찻집에 들어오실건가요? 그냥 앞에 서 계시면...
남: 돈이 없으니 안에 들기는 그렇고 저기 평상에 잠시 쉬었다 가도 되겠소?
황진이: 아 거기는요. 오늘 머나 먼 청평에서 귀한 손님이 오시기로 해서 비워둔거에요. 아! 마침 오시네?
@jjy : 그리 멀지도 않구먼요. 하긴 이 게으름뱅이 새 한고조(寒苦鳥) 같은 내가 예까지 걸음한 것두 용치 뭐. 반가워요.
남: 그럼...난 가보리다.
말을 하려니
입술이 시리구나
가을 찬바람
物いへば脣寒し秋の風
제제이: 저..잠깐만요. 혹시 일본 하이쿠의 대가이신 바쇼선생님 아니세요?
바쇼: 하이구! 대가라는 말씀은 접어두시죠. 파초로 무성한 집에 살았다하여 파초(芭蕉)..바쇼는 맞습니다만...
제제이: 앉으시지요. 제가 차 한잔 모실게요. 저도 글의 향기는 아는 사람입니다. 바쇼선생님의 삶에 대해서도 듣고 싶고요.
바쇼: 고맙구려. 나의 삶!...내 어렸을 적에 요시타다라는 영주의 잔심부름을 하며 지냈다오.
영주래봐야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그 분은 날 친구로 대해주었소. 그가 하이쿠를 하면 내가 답으로 하이쿠를 하곤 했으니...
참 좋은 친구였지요.
그런 그가 요절하고...난 생에 회의가 몰려와서 사무라이를 그만 두고 방랑의 바람 속으로 나를 던져버렸소.
말이 방랑이지 거지가 되었다 이 말이오. 아! 이 나라에도 나랑 비슷한 이가 있다던데..?
제제이: 아! 김삿갓이라는 분이 그러했죠.
바쇼: 언제 한번 만나게 해주시요. 그 양반은 한시를 하겠지만 난 하이쿠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제제이: 그게 신비로왔어요. 하이쿠는 그 짧음 속에 어떻게 그런 진한 울림을 남길 수 있죠?
바쇼: 시인은 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저 자연이 되어 존재를 꿰뚫고 삶을 관통하여 부드러운 바람 빠른 창처럼 보는 이의 심장에 신속하게 이르러야 하지요. 군더더기가 하나도 붙으면 안됩니다. 주장도 필요없어요.
설명이나 주장은 모자란 이들의 촌스런 장신구죠.
제제이: 지금 한 번 하이쿠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바쇼: 마침 연못이 있고...연잎이 떠 있고...개구리가 앉았구려. 충분하오. 읊어보리다.
오랜 연못
개구리 뛰어드네
첨벙!
古池や蛙飛こむ水のおと
제제이: 아....그저...그러할 따름이군요! 여여한 이 울림...소름이 좌악 번집니다.
바쇼: 당신도 글의 향기를 즐기신다니...한 수 화답해 주시겠소?
제제이: 저는 하이쿠는 처음입니다만 그저 그 가락에 변죽이나 맞춰 보오리다.
저어기 빌딩에 햇살이 눈부시네요.
해오름에
금빛 물이 젖어드네
빌딩 유리벽
바쇼: 오...이거 우리 대화가 되는구려! 이리 사람에게 운치를 느껴본 것이 얼마만인지..난 과분한 명성을 받았던 사람이오.
파초집이 불타서 내가 할 수 없이 방랑길에 오른줄 사람들은 알지만 실은...내가 스스로 집에 불을 질렀다오.
난 입발린 칭찬만 공허하게 해대는 사람들의 우상이 되긴 싫었거든. 그 빌미로 난 떠났소.
아...아가씨! 여기 난로에 물이 끓는구려.
난로 속 장작불
사그라드네 눈물
끓는 소리
방랑의 길은 그 실상이 참으로 혹독하다오. 당신의 삶은 어떻소?
제제이: 떼이고 남은 날들이 모여
어렵사리 꾸리는 살림이지요.
게으름뱅이겨울이 걸친
사그랑이 외투 같은...
떠나도 안온한 이가 있고
머무름 속에서도 방랑하는 혼이 있지요.
바쇼: 그러하오. 하지만 언제나 봄은 여지없이 옵디다.
제제이: 그러네요.
살핏한 봄 기척에 놀라
달아나는 낡은 겨울의 발소리가
언 땅 아래서 들려오곤 하지요.
바쇼: 고맙소이다. 문득 내 가슴 속에서도 따스한 피가 흐르고 있음이 느껴지는군요.
잠시 시간도 세월도 잊은 공간에 머물렀다 가오. 그럼 이만...
황진이: 차 한잔 더 하시지...벌써 가시려구요?
쥔장: 아 저는 대접도 못했는데...
제제이: 시인이시여! 당신은-
마지막까지 소명을 다하는 억새풀
하늘은
빛으로 축복할거에요!
바쇼: 그 축복 품에 안고 가겠소.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