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고흐는 신문지에 뭔가를 둘둘 말아서 들고 찻집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황진이가 흘긋 자신을 보는걸 모른채하고 옆문을 열고 햇살이 드는 창고로 들어가 가지고 온 것을 펼쳤다.
황진이: 그거 뭔데 숨기고 거길 들어가요? 대마초라도 구했남?
아..그거 해바라기네? 어디서 구했어요?
고흐: 어느 집 마당에 핀건데 하도 예뻐서 내가 잘라왔소. 그릴거요. 여기 좀 이용해도 되겠지? 미안하지만 나 혼자 있게 해줄 수 있어요?
황진이: 아니 그릴려면 살아있는 해바라길 그려야지 목을 댕겅 잘라가지고선 먼 짓이래?
그녀는 말없이 노려보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혀를 끌끌 차며 돌아나와 문을 닫았다.
그가 몇시간만에 창고에서 오줌을 누러 나온 사이 황진이는 얼른 고개를 디밀고 고흐의 그림진행을 엿보았다.
테레핀유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그의 그림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녀는 그 그림에서 뿜어나오는 기백에 질려 탄성이 나오려는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뒤에서 돌아온 고흐가 물었다.
고흐: 저거 전시에 출품하려고 하는데...어떻소?
황진이는 화들짝 놀라서 물러서고는 저만치 앉아있는 쥔장의 표정을 살폈고 쥔장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한숨을 꺼질듯 쉬었다.
황진이: 빈센트! 당신 저 작품은...공모전에 내놓고 심사위원따위에게 평가받을 작품이 아니에요!
고흐: 음...그런가? 당신은 시간을 달리는 여인이니 이미 그 결과를 아나보군. 후우....당신의 평가는 어떻소?
황진이: 말할 수 없어요. 한 작품 갖고는...더 보고 싶어요. 당신의 해바라기-더..그려줘요. 난 며칠이고 몇달이고 기다릴게요.
고흐: 내 작품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니...이거 그릴 맛 나는군! 가끔 커피 좀 넣어줘요. 샌드위치도 ...
다시 들어간 고흐는 화장실 가러 나오는 일 외에는 문을 열지 않았고 심지어 말도 한 마디 없었다.
황진이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가지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서도 그의 집중된 기운에 압도되어 말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나오곤 했다.
시간이 뒤엉켜 흘렀다. 고갱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어리기도 했고 어디선가 앙리 마티스의 헛기침소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이 찻집에 들어와 차를 마시고 농담을 뇌까리다가 일어서서 나가고...어디선가 모리조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듯한 장면과 소리가 고속으로 흐르다가 치렁치렁 흐르기도 했다.
"진이! 나를 좀 봐주겠소?"
그의 목소리에 흠칫 고개를 돌린 황진이는 넋나간듯한 한 사내의 모습과 갓 짜낸 혼이번들거리는 해바라기 그림을 보았다.
황진이: 오오...당신...! 미쳤어 정말 미쳤어요! 생명이 떠나간지 오래된 해바라기에서 이렇게 타오르는 생명을 담아내다니...너무 많은 힘을 들이고 있어요. 너무...
그녀는 바람에도 펄럭거릴 것 같은 그에게 달려들어 와락 끌어안았다.
안은 그녀의 손에 그의 앙상한 견갑골이 만져졌다.
"이제 그만! 당신의 진액을 쥐어짠 그림-이제 됐으니 그만 해요! 이러다 당신 죽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