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백가쟁명(중국어 간체: 百花齐放, 百家争鸣, 정체: 百花齊放, 百家爭鳴, 한어 병음: bǎihuā qífàng, bǎijiā zhēngmíng) 또는 쌍백운동(雙百運動)은 1956년부터 1957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전개된 정치 운동이다.
1950년대 후반 동유럽에서 반공주의 운동, 유혈 폭동이 일어나자 이에 자극받은 중국 공산당이 사상의 유연함을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1957년 5월 1일부터 인민일보에 사상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글을 게재했고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가능하도록 했으나 비판은 수준은 날로 높아졌다. 38일이 지난 1957년 6월 8일 중국 공산당은 태도를 급변하여 반우파 운동을 주도하여 그동안 입을 열었던 비판적 지식인들을 탄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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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 14: 중국2(현대편) 김영사, 이원복님 지음
1953년부터 시작된 '사회주의로의 과도기'는 1956년에 이미 끝나고, 그해부터 사회주의제도가 기본적으로 확립되었다고 선언했다. 1956년에 열린 공산당 제8회 전국대회에서 모택동은 중국에서는 이미 사회주의 사회가 본격적으로 실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국의 공산당원은 1,073만 명에 달했기에 모택동은 만족했고, 여기서부터 모택동의 과신이 시작된 것이다. 기적 목표에 지나지 않았던 사회주의 체제가 이렇게 쉽게 실현될 수 있다면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현실은 모택동의 희망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모처럼 획득했던 자신들의 토지를 농업 집단화를 통해 상실하게 되었으며, 경작 농지가 '내 땅'이라는 의식이 없어짐으로써 노동의욕이 감퇴했다. 그리하여 집단화는 결국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리게 되었다. 나아가 1957년이 되면 합작사로부터 탈퇴하는 농민이 늘어나 합작사가 해산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공산당이 주도하는 국가체제가 확립되었으나 모택동은 결코 현상에 만족하지 않았다. 1957년 2월에는 〈인민 내부 모순을 바르게 처리하는 문제에 관하여〉라는 강연을 하여 공산당에 대해 당 외에서 적극적인 비판을 환영한다고 했다. 이것이 '백화제방(白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이었다. 즉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공산당에 대해서도 비평해 보자고 호소했다.
공산당이 주도하는 체제가 되어 있었으나 새 중국에는 공산당 이외의 8개의 민주당파가 연립 정권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 공산당 이외의 세력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들이 공산당의 위협이 되지 않겠는가? 모택동은 그것을 확인해 보고자 했다. 그러나 사실상의 공산당 독재체제 속에서 공산당을 비판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누구도 쉽게 발언하기를 꺼렸다. 모택동은 언자무죄(言者無罪)2)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유롭게 비판하도록 재촉했다. 모택동의 이와 같은 열성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공산당과 함께 새 중국을 건국하는 데 전력을 다했던 '민주당파' 사람들이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당이 천하를 손에 넣은 사태에 대한 비판이 튀어나온 것이다. 공산당의 독재로 국가기관의 모든 수뇌부에 공산당원을 배치하고, 공산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상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과 국가기관의 분명한 구별을 요구한 의견도 나왔다.
공산당에 대한 여러 비판이 분출한 뒤 모택동의 반격이 나타났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호소가 시작된 지 겨우 4개월 후인 1957년 6월 모택동은 "조직적인 힘으로 우파분자의 광기 어린 공격에 반격하자!"라는 당내 지시를 발표했다. 공산당을 비판한 인물에 대한 탄압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반우파투쟁(反右派鬪爭)'이었다. 공산당을 비판한 세력은 '지식분자'라고 불린 사람들이었다. 당시 중국에는 문맹률이 높았으며, 읽고 쓰기가 되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인물은 지식분자라고 분류되었다. 반우파투쟁에서는 공산당을 앞장서서 비판한 사람뿐 아니라 '지식분자'들이 모두 '사상개조'의 대상이 되었다. 모택동의 사회주의 노선에서는 노동자와 농민만 중요했고, 비판정신을 지닌 지식인은 귀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이 반우파투쟁에서 5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파'로 인정되어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좌천되었으며, 11만 명 이상이 투옥되었다. 모택동이 "우파는 인구의 5% 정도일 것이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에 이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직장의 5%를 우파로서 인정하여 추방한 기관도 나타났다. '우파'라고 인정된 인사의 가족들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은 200만 명이 넘는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 55만 명 중 53만 명은 모택동이 사망한 지 3년 후에 겨우 명예회복을 했기 때문에 너무나 늦은 괘도 수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모택동은 왜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주장하고 그 뒤 그 주장을 바꾸어 '반우파투쟁'을 추진했는가? 모택동의 방침전환을 호의적으로 해석한다면 당이 모르고 있던 것을 당 외부로부터 솔직히 지적함으로써 당을 개선해 보려고 했는데. 예상 이상으로 비판이 심해져서 반격이 시작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최초로부터 '반(反)공산당 분자'를 노출하기 위해 "자유롭게 비판하라"고 선동했을 가능성이 더 짙다. 모택동은 급속하게 사회주의화를 추진하고자 했다. 그것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우파들이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상은 뿌리가 깊어서 항상 인민에게 '올바른 사상'을 각인시켜 주지 않으면 자본주의로 되돌아갈 염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출처 모택동의 사회주의국가 창업 – 세계현대사, 오인석,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위 내용을 보면 모택동은 불순분자를 가리기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허락하는 척하고 마음껏 기탄없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해보라는 판을 깐 뒤에 조금씩 말을 하는 사람들을 색출해서 죽여 없앴다. 그냥 색출한 것이 아니라 비열한 거짓말을 통해서 한 것이 꼭 조고의 지록위마와 같다.
「조고는 반란을 하려고 했지만 여러 신하들이 따라 주지 않을 것이 두려웠다. 조고는 먼저 신하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2세 황제[호해]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이것은 말입니다.” 2세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승상이 오인한 것이오. 사슴을 일러 말이라 하는구려.” 조고가 좌우에 대신들을 둘러보며 묻자 어떤 사람은 말이라고 하며 조고의 뜻에 영합했다. 어떤 사람은 사슴이라고 대답했는데,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암암리에 모두 처형했다. 모든 신하들은 조고를 두려워했다.(趙高欲爲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鹿獻於二世曰馬也. 二世笑曰, 丞相誤邪. 謂鹿爲馬. 問左右, 左右或言馬, 以阿順趙高. 或言鹿者,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候群臣皆畏高.)」출처 《사기(史記)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
이런 비열한 방법으로 모든 권력자들이 권력을 휘둘렀다.
정부 고위 관료자인 금감원의 최흥식은 비트코인 폭망에 내기를 걸고 벤쯔 2대 박상기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것은 모택동이나 김일성도 울고갈 최상의 사회주의 철권통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래놓고 정부는 몰래 뒤에서는 결국 법정통화인 원화를 블록체인으로 암호화폐로 만들려고 온갖 술수를 다 부린다.
한국은행은 분산원장기술(DLT, 블록체인)에 기반한 은행간 자금이체 모의테스트 결과를 2018년 2월 13일 발표했다.
http://www.segyefn.com/newsView/20180410004319
영국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과 중국 인민은행 등은 지난 2016년 초 CBDC 발행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2017년에는 캐나다 중앙은행도 관련 연구를 발표했다.
스위스와 폴란드, 대만, 말레이시아 중앙은행들도 블록체인 시스템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상태이다. 인도 중앙은행(RBI)은 최근 통화정책위원회 회의를 통해 CBDC 발생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019년에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발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2018년 4월 10일 금융권 및 외신에 따르면 안토니 루이스(Anthony Lewis) R3 연구이사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블록체인관련 국제회의에서 한국은행이 내년도에 CBDC를 발행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의 도덕적인 기준을 뛰어넘어 내가 하면 업적이고 남이 하면 불법이니 감옥에 가야 하는 아이러니가 상당히 많다.
정부가 하는 짓중에 경마, 경정, 로또, 강원랜드 카지노, 스포츠 토토는 합법이고 법적으로 진흥책을 쓰는데 민간이 하면 도박이고 범법 행위이다.
정부가 전쟁을 일으키고 제주 4 3 사건, 한국전쟁때 20만명을 아사 동사로 죽인 국민방위군 사건, 좌익이라고 자수한 자를 학살한 보도연맹사건, 거창과 문경 양민 학살사건등은 합법이고, 1명 상해만 해도 교도소에 가야 하는 현실이 대비된다. 이런 간교한 술책에 놀아나지 않고 암호화폐의 대중감시처럼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이런 失政실정을 민간에서 감시해야 한다.
암호화폐는 춘추전국시대처럼 몇천여 가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혼란한 틈을 노려서 꿀벌이 일한 꿀을 암호화폐의 달콤한 이득만 빼가려는 나쁜 정부의 비열한 술책에 더 이상 놀아나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