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렸다. 밤이 어둑해져 있었다. 공항으로 캐리어를 끌고 가니 한적한 슬롯 머신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 있었다. 의외로 썰렁한 분위기였다.
한 대의 리프트를 놓친 후 레벨 G에서 우버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우버 기사는 신나는 EDM을 틀어 주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호텔들의 모습과 paradise 라는 도로 간판이 눈에 띄인다. 과연 그럴까?
호텔에 도착 한 후 짐을 풀고 여독을 풀었다. 왠지 익숙해 지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주말 내내 호텔에서 잠을 잤다. TV에는 흉악한 총기 사고 뉴스가 나오고 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밤에 바람을 쐬러 밖에 나오니 하워드 휴즈 센터가 보인다. 사실 라스베이거는 괴짜 사업가 하워드 휴즈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도시이다. 원래 사막에 카지노가 조금 있고 사람이 별로 없던 도시였는데 하워드 휴즈가 이곳에 있는 데저트 인의 스위트룸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스위트 룸을 어느 날 더 이상 빌릴 수 없어서 그냥 그 호텔을 사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스트립을 위주로 호텔을 매입하여 마피아 계열에 운영을 맡긴 것이 지금의 라스베이거스가 되었다.
사실 라스베이거스는 이 약간의 길인 스트립을 제외하면 볼 것이 없는 도시이다.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모르겠으나 나는 관심이 없어 그냥 그랜드 캐년을 거치기 전 잠깐 쉬는 곳이었다. 그리고 왠지 나에게 맞지가 않았다.
주중에 하루 시간을 내서 스트립을 걷는데 시디를 강매하는 흑인, 팔찌를 강매하는 중, 사진 촬영을 강매하는 코스프레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그리고 흑인에게 시디 강매를 당했다. 얼떨결에 시디를 받았는데 강매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다. 알면서도 당하더라. 아무튼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스트립을 걷는것은 비추이고 한국처럼 뭔가를 준다고 해도 절대 받지 않아야 한다. 여행 경험 중 최악의 경험 중 하나였다.
화가 많이 났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윈 호텔에 가서 뷔페를 먹었다. 우연히도 이곳이 데저트 인이 있던 곳이다. 퀄리티는 나쁘지 않지만 한국의 비싼 부페와 거의 비슷했다.
많이 먹으려고 했지만 3~4번 정도 먹으니 정말 더 이상 먹을 수 가 없었다. 하워드 휴즈의 이야기가 오버랩 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귀중한 교훈은 하나였다. 부자도 결국 세 끼를 먹을 뿐 아닌가? 우리는 도대체 부에 대해 무엇을 추구하는 걸까? 우린 모두 똑같은 '삶'이라는 부를 누리고 있다. 다만 그것은 지구의 중력처럼 느끼지 못할 뿐이다.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이탈리아 계열의 운영이라 섬세한 면들이 있는 호텔이었다. 좋은 방이었지만 기분은 최악이었다. 나는 그저 미국에 있는 동양인 중 한 명이었고 사막의 별은 건조한듯 바스락 거렸다.
다음날 그랜드 캐년을 보러 떠났다. 웅장한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지만 조금 지나니 결국 비슷한 풍경들이 계속 펼쳐지는 듯 했다. 내가 너무 염세적인가? 잠깐 아래 쪽에서 위쪽으로 뭔지 모를 짐승의 똥을 피해 트래킹을 했다. 이 시간이 퇴적된 층의 시간으로 따지면 몇 만년은 여행을 한거라고 한다. 그 때 조금 근사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은 변하지 않고 인간의 실수를 지켜보면서 묵묵한 시간들을 견뎌낸다. 우리는 비교적 짧은 시간을 살아간다. 모든 것은 무한하지만 사실 한정된 한계의 울타리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싶었던 것일까?
그랜드 캐년에서 돌아오면서 끝없이 펼쳐 진 사막의 어둠 위에서 인간이 가진 꿈들이 깜빡 깜빡 점멸해 나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별은 많았지만 어느 별이 나의 별인지 헷갈렸다. 그저 나는 필사적으로 동서남북정도만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다음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로스엔젤레스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날아오르는 비행기 위에서 사막을 배경으로 어린 왕자를 읽었다.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뒤늦게 읽는 어린왕자는 훨씬 더 많은 내용을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돈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허영심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나에게 주어진 꽃을 바라보고 지는 해와 뜨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 등등...
우연히도 이건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라는 비판적인 질문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느긋하게 던지는 듯 했다.
생떽쥐베리는 비행사였다. 그는 사막의 한 기지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외로움과 사색의 순간들이 어린 왕자에 담겨져 있었다. 물론 수 많은 술과 담배의 힘을 빌려 쓴 책인 것은 안비밀...하하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꿈인 비행을 고집하다 행방불명인채로 마침표를 찍었다.
책을 덮었다.
나만의 야간 비행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