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약 6개월 전에 포스팅한 제 글을 오마주 합니다. 당시 짱짱맨을 제외한 1분의 보팅을 받았던 흑역사의 글입니다. 뉴비의 아픔이 고스란이 생각난 글입니다. 원문 그대로 다시 오마주를 해봅니다. stylegold님 항상 감사합니다.
스티미언 여러분 Kenstar입니다.
백제의 의자왕 시대에 백제가 위기에 몰려 의자왕의 삼천 궁녀들이 자신들의 몸을나당 연합군 들에게 더럽힐수 없어서 낙화암에서 삼천궁녀들이 몸을던져 자살했다는 3000 궁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서 또 의문이 생겼습니다.
과연 3000 명이 동시 강에 투신하는 것이 가능한지, 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 번 알아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글은 절대로 역사적 사실을 조롱,왜곡하려는 의도가 결코 아니며 순수히 개인적인 호기심임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3000 명이 있을려면 어느 정도의 면적이 필요한가?
웹서핑을 해보니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블루스퀘어(Blue Square) 가 스탠딩 관객 2800 명이라하니 얼추 비슷하네요 연면적 2만9492m2 규모 입니다.
계산해 보니 8921 평이네요. 즉 3000명이 있으려면 8921 평이 필요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725번지에 위치한 이 유적은 현재 왕궁지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면적은 95484m2
즉 1번 의문은 플렸네요. 가능합니다.
두번째 의문은 이동 거리 였습니다. 지금의 부여여고에서 차로 25분정도 걸리네요. 사적지라서 직선거리 그리고 보행 거리를 구글맵이 못잡네요. 차로 25분이라는 것은 시속 60키로로 달린다면 25km, 도보는 시간당 4키로인데, 당시 상황의 긴박상을 감안하면 5키로, 따라서 제일 끝 쪽 궁궐에 있던 궁녀들은 5 시간을 낙화암을 향해 갔다는 결론이 나오네요.
이동 거리고 뭐 이해가 갑니다.
3 번째 의문은 동시에 다 빠졌을 까 아니면 줄서서 빠졌을 까 인데, 사서에는 낙화암에서 빠졌다고 했으니 순차적으로 빠졌겠군요. 옆으로 나란히 해서 일렬로 줄을 스려면 평균키 150센치만 잡아도 4500 미터가 됩니다.
제 이전 글 참조 (https://steemit.com/kr/@hersnz/2-wierd-theory-by-hersnz), 특히 손 잡으려고 25키로에서 달려오는 궁녀들을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그렇다면 어떤 광경이 벌어졌을 까요.
일단 3000명이 순차적으로 떨어지는 데 일 인당 1초 걸린다고 해도 3000 초 가걸립니다.(50분), 이건 25키로 밖에서 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5-6간에 걸져 벌어진 일이다 라는 결론이 납니다.
팩트: 백마강 수심은 당시로 8-10 미터로 예상을 합니다. 그리고 낙화암은 40미터 높이입니다.
궁녀들의 평균키 : 경남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에서 출토된 성인 유골의 평균신장은 남성 167.4㎝, 여성 150.8㎝로 조사됐다. 신라와 백제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카페에서 발췌) 즉 151㎝ 정도 됩니다.
위의 표를 보시면 Small size 의 가슴과 엉덩이 사이즈가 나오네여. 이것을 참고로 대략 30cm 정도가 누워있을 때의 몸의 두께입니다, 즉 3000 명이 일렬로 싸이면 30 x 3000 =90000cm=900m 가 나옵니다. 백마강 깊이의 90배가 나옵니다. 하지만 일렬로 쌓일 수는 없으니 백마강에 이미 떨어졌던 시신을 피해 90군데를 향해 뛰어야 한다는 이야기 인데 스티미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이렇게 생각 하신 분 있으셨나요?
그리고 제일 마지막 차례 였었던 궁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가볍게 쓰려고 했는데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끝으로 비극적인 역사의 뒤안길에 떠나신 선조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