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때의 입덧은 장난이 아니었다.
냉장고 문만 열어도 우웩~!
칫솔질엔 꾸웩~!
하루에도 몇번씩 구역질이 났으니 뭘 먹을수가 없었고 몸도 천근만근 무거운것이,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밥은 모래알 씹는것 같았고 우유는 뚜껑만 열어도 그자리에서 토했으니 말이다.
어느날, 이상하게 매운탕이 먹고싶어졌다. 얼큰한 매운탕 국물을 좀 마신다면 니글거리는 속이 좀 가라앉을것 같았기에.
당시 18개월이었던 딸아이, 감기에 걸렸는지 코를 질질 흘리는 애를 태우고 집에서 입던 옷차림 그대로 한인들이 많이 모여있는 동네 한국식당으로 갔다. 앉자마자 메뉴도 보지않고 시킨 동태매운탕...
좀 맵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맛으로 먹는다기보다는 그냥 맵고 얼큰한 국물때문에 계속 떠먹었나보다.
난 매운음식을 먹으면 콧물이 난다. 넘 매우면 눈물까지 흘린다. 냅킨으로 훌쩍훌쩍거리는 코를 닦으며 눈가에 살짝 비치는 눈물까지 훔치며, 딸아이한테는 반찬으로 나온 계란말이와 콩나물을 조금씩 밥위에 올려주고, 훌쩍훌쩍 난 매운탕 국물을 마시면서 입덧으로 니글거리는 속을 달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서 혼자서 조용히 식사를 하시던 나이 지긋하신 중년의 남자가 나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하시는 말...
"아주머니~ 나이도 아직 젊으신것 같은데...
어떤 딱한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살기 힘들고 어려워도 저 어린 자식을 봐서라도 용기를 내셔야지요. 이것 얼마 안되지만 점심값에 보태세요..."
이러면서 20불짜리 지폐한장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휑~ 하니 나가버리는것이 아닌가? 냅킨으로 콧물을 닦고 있던 나는 벙~ 쪄서...
" 네~??? 아니, 저... 그게 아니고......"
제대로 대꾸할 시간도 없이 아저씨는 식당밖으로 나가버렸다. 바로 따라나가서 돈을 돌려주려 일어섰지만 애기용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를 두고 나갔다가는 위험할것 같았기에 난 그냥 그자리에서 멍청히 테이블에 올려진 지폐만 쳐다보고 있을수밖에 없었다.
우연이었을까...?
이상하게도 20불짜리 지폐에 그려져있는 앤드류 잭슨 미국 초기 대통령 얼굴이 방금 나가버린 아저씨랑 어쩜 그리 닮아있던지... 그냥 썩소가 나왔다, 피식~!
차안으로 돌아와서 거울을 보았다.
파마한지 오래된 부시시한 머리, 푸석한 피부, 너구리눈이 따로없는 다크서클, 너덜한 티셔츠에 무릎나온 추리닝 바지까지... 18개월 딸아이 머리는 그날따라 머리핀도 못꽂아주어서 쑥대머리에, 코는 닦아주어도 또 흘리고 있고.
내가 봐도 상거지 모녀가 따로 없었으니...
그래도 아직 이세상에는 어려워보이는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인류애(?)가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지만 그날 이후로 난 한국식당에 갈때면 꼭 거울에 비친 내모습을 확인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동태매운탕은 그이후로 한동안 먹지 않았는데...
냉동실에 뒹구는 동태랑 아무런 이해관계 없는 조기 몇마리로 매운탕을 끓이다가 떠오른 그옛날 동태매운탕 에피소드...
보글보글~ 끓이다 옛추억 떠오르듯 생각나기에 몇자 적어보았다. 히히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