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대문을 선물해 주신 영혼의 Artist @leesol님 감사드려요.
우리 아버지는 옛날분이셨지만 내가 봐도 머리가 좋은 편이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당시 유명했던 경기상고를 졸업하시고 성균관대 법대에 입학하셨다. 아버지 뿐 아니라 아버지 형제들은 다 머리가 좋아 둘째 작은 아버지는 서울대, 삼촌도 역시 성균관대를 졸업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항상 하던 말씀이 있었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는 졸지에 학업을 중단하고 가장이 되어 동생들 뒷치닥거리를 하셨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집에는 쌀을 되박으로 사다 먹어도 시집간 고모네 집에는 쌀을 포대로 사다 주셨다고 한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자식을 가르치는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 나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반이나 전교 석차가 뒤에서 세면 더 빨랐던 것 같다. 그래도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나는 대학에는 꼭 갈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상업고등학교를 추천해도 말이다. 대학교에 부속된 여중과 여고를 6년 동안 다니면서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일 지나 다니던 서울에 있던 그 대학교는 그냥 거저 보내준다고 해도 안 가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다.
그런 나도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현실을 깨닫고 공부라는 걸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담쌓고 지낸 기초였다. 암기과목은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영어, 수학은 기초가 없다보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힘들었다. 자연스레 영포자, 수포자가 되었고 영어도 그냥 단어만 죽어라 암기 해서 내용을 대충 때려 맞춰 시험을 봤다. 한번은 학원에 다니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용기를 내서 학원을 보내 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돌아온 대답은 역시 내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공부는 혼자서 하는 거라고 하시며 학원에 가져다 줄 돈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길로 작은아버지네 큰아들이 대학에 입학했다고 축하선물로 용돈을 보내시러 가셨다. 벌써 20년도 훨씬 더 된 일이지만 그 때 그 기억은 영원히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고등학교 때라도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취업을 위해 토익시험을 볼 때도 유형을 외우고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외웠다. 영어는 그 때도 나에게 암기과목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대학시절 영어회화 학원 새벽반에 몇달을 다닌 덕에 회화 몇마디를 할 줄 알았는데, 업무차 만난 미국인이 자꾸 연락을 해 왔다. 얼굴 보고도 힘든 영어인데 전화로 연락을 해 오니 부담이 되었고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전화를 피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난 영어 공부를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놈의 영어회화라는 게 하루 이틀 한다고 느는게 절대 아니더라. 특히 이놈의 토종 한국인 발음은 외국인 앞에서 나를 더욱 작아지게 했고, 말문은 쉬이 트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방향을 바꿔 승진에 도움이 될 고득점 토익점수를 받는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꽤 높은 토익점수를 받아놓은 덕에 나는 운좋게 2년간의 미국 연수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만약 그때 토익점수가 없었다면 나는 언감생심 외국에 나가서 공부한다는 꿈을 꿔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깨달았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 찾아온다고. 일단 준비만 되어 있으면 기회가 어느 때 찾아오더라도 잡으면 된다고. 애 낳고 바쁘게 산다고 한동안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난 다시 토익시험을 접수했다. 이렇게 라도 접수를 해 놓으면 내 스스로 하루 몇분이라도 영어 공부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제 시간을 더 쪼개써야 할 것 같다.
@ 2017. 9. 25, 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