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봄방학이 어머님 필리핀 여행 일정이랑 겹쳐 버렸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신랑이 휴가를 내서 아이들을 돌보고 오늘은 내가 휴가를 냈다. 그래서 아주 오래간만에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두 조카들을 데리고 내려 왔다. 아주 오랜만에 낮시간에 우리집에서 사람 소리가 크게 난다. 아이들 다섯이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웃고 또 울어댄다.
엄마는 아이들 쫒아다니며 애들 뒤치닥거리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작년에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는 하루종일 TV가 유일한 친구셨으니 엄마에게도 아주 오랜만에 정신없이 바쁜 하루이리라. 손주들이 혹시라도 다칠까 계속 따라다니는가 하면 아이들이 어지러놓는 장난감을 계속 치우셔서 어차피 치워도 소용없다고 그만하시고 쉬시라고 해도 정신사납다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신다. 그리고는 힘이 드셨는지 한마디 하신다.
하루가 열흘 같다고...
다행히 우리 막내만 어리고 동생네 아이둘이랑 우리 아이둘이 성별이 같고, 터울이 비슷해서 서로 같은 터울, 성별끼리 신나게 논다. 평상시에는 남매가 사이좋게 지내고, 이렇게 사촌끼리 모이면 사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니 나중에 커서도 서로 좋은 친구이자 의지가 되고, 서로 마음이 통하는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해외여행을 가시는 덕에 우리 셋째도 하루 종일 엄마 껌딱지가 되어 엄마 품속에서 잠도 들고 형, 누나들 쫓아다니며 방방뛰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요즘 일에 묻혀 여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다보니 이런 일상이 힘들어도 너무 행복하다. 진짜 회사 그만두고 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내 주위에 남자들 중에 특히 이제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했고 곧 정년이 맞이하시는 분들 중에 전원생활을 꿈꾸시는 분들이 많으시다. 회사를 그만두면 도회지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물 좋고 산 좋은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서 전원을 즐기며 조용히 여생을 마감하시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본인은 그러고 싶은데 와이프가 죽어도 싫다고 해서 고민이라는 분들도 계시다. 그런 얘기를 나눌 때마다 나역시 귀촌은 절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차만 몇분 몰고 나가면 백화점에, 할인마트에, 영화관에, 커피전문점에, 온갖 종류의 음식점에, 병원에, 학교까지... 이 좋은 것들을, 이 편한것들을 뒤로 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전원생활이라니...
근데 오늘은 그냥 그렇게 사는 것도 좋겠다 싶다. 부모님, 형제들 모두 옹기종기 모여 살아 대문 열고 몇발자국 안가도 되고, 부침개 하나 부쳤다고 나눠 먹으며 그렇게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서 그저 하루 하루 살아있음에, 웃을 수 있음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렇게 사는 것도 참 좋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