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극한을 맛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가 그랬다. 너무 슬플 때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고. 눈물이 많은 나는 아직 극한의 슬픔까지는 경험해 본적이 없는것 같다. 조금만 슬퍼도
한껏 울어야 감정의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그저 소리내어 한껏 울어버리면 가슴속에 억눌렀던 무언가가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첫사랑의 헤어짐이 그랬고, 아빠와의 이별이 그러했다.
할머니의 입관식..모두가 숨죽여 진행과정을 지켜봤다. 아들 다섯에 딸 하나. 그 아들들이 장성해서 모두 결혼을 하고 손주를 낳고 또 그 손주 중 몇은 또 증손주까지 안겨드렸으니 할머니 한평생이 덧없지는 않으셨으리라. 모두가 숨죽여 흐느껴 우는가운데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작은 아버지와 어머님들이 할머니 가까이에서 마지막으로 할머니와의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스무살 초반에 장손에게 시집온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참으로 매서웠단다. 조근조근 다정한 말만 듣고 살았던 평생이었는데 시집 와 시어머니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가시박힌 말에 욕설에 큰소리 버럭이었으니 꽃다운 나이의 처자에게 그 후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더랬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한평생 모신 시어머니와의 이생의 마지막 인사. 어머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머니의 얼굴 표정에 그 눈물에 많은 의미가 닮겨 있었으리라. 둘째 작은어머니가 통곡하듯 몇마디 말을 내뱉으신다.
어머니..죄송해유. 더 잘 해 드렸어야 했는디 제가 진짜 죄송해요.
할머니와 더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실 어머니는 결국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셨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표정이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느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내가 책임을 지고 추진하는 일에 문제가 생겼다. 물론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내가 책임자였고 그로 인해 회사에 피해를 입히고야 말았다. 그 때 나는 너무 죄송했고 그 일에 대해 사과하는자리에 섰지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죄송했기에 무슨 말을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미안하면 아무말도 할 수 없음을 그때 알았다.
인생을 살다 보니 이렇듯 말로는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말로 표현 못 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표현의 시대에 살지만 인생사 희노애락이 다 마음처럼 표현되는 것은 또 아님을 느끼며 또 숙연해 진다.
그럼에 표현할 수 있을 때 마음껏 마음을 표현하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