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내가 만약 지리리도 못사는 남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한다고 하면 결혼 허락할거야?
돈이야 상관없지. 너를 아껴주는 사람이면 된다. 살아보니 돈만으로 세상을 사는 게 아니더라. 사글세방에서 숟가락 두개 가지고 시작해도 둘이 아껴주며 살림살이 하나 둘씩 장만해 가는 재미로 그렇게 살면 되는 거야.
자라오면서 드라마에서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꼭 엄마한테 묻곤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돈보다 사람을 아껴주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며 젊을 때 서로 힘을 보태 하나둘씩 장만해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런 이유로 나는 가난한 남자를 만나더라도 행복할 자신이 있었다. 엄마 말대로 돈이 없으면 작은 단칸방 월세부터 시작해 콩나물값 깎아가며 푼돈이라도 꼬박꼬박 저축해서 전세방을 마련하고, 더 열심히 살다보면 내집도 마련하고 그런 것이 사는 재미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꼭 그런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있어 첫번째 기회는 우연찮게 얻은 미국 연수의 기회였다. 집안 형편상 어학연수는 커녕 등록금 내기도 빠듯했던 탓에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버는 것이 낫겠다 싶어 쉼없이 대학 4년을 졸업했다. 그러니 2년간 석사학위를 취득하는데 회사에서 제공하는 모든 지원을 받는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인생의 다시 못 올 기회였던 것이다.
미국에 가서 살다 보니 미국 사람들은 젊은 나이부터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집을 사다보니 돈이 있을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집을 담보로 상당한 액수의 대출을 받아 모기지로 집을 산다. 그리고는 평생을 갚아나간다. 젊은 나이부터 비교적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살아간다. 물론 대출 이자가 좀 쎈 편이지만 말이다.
그러면 예전 우리 부모 세대들은 어떠했는가. 평생을 뼈빠지게 일해야 노년에 작은 집 한칸 마련했다. 우리 엄마 말대로 사글세에서 시작해 못 쓰고 못 입고 살았어도 결국 나이가 꽤 들어서야 집 한채 장만하고 그 집에서 얼마 살지도 못하고 자식들 좋은일만 시켰지 않은가.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때 미국에서 내가 느낀 문화적 차이는 정말 컸다.
현재 우리 젊은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집은 없어도 차는 엄청 좋은 차를 몰고 다닌다고 이 시대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다 늙어 좋은차 타고 다니는 것보다 지금 젊을 때 자기가 할 수 있는 여건 안에서는 충분히 즐기고 살자는 주의다.
돈벌어서, 돈 모아서 집 사자, 여행가자,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자.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는 정작 젊은 시절은 다 가고 늙어서 아픈 다리로 아무데도 갈 수 없는 나만 남을 것이다.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지금 만끽할 수 있는 것들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물론 아무런 대책없이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는 배짱이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노후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지금 현재를 소홀해서는 안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이를 핑계삼아 나는 오늘 겨울 파카 하나를 장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