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 양육 에세이 (2)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쓰려는 건 아니었는데 생활에세이를 쓰려다 보니 점점 더 시트콤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자동차 에세이, 행복 에세이, 고양이 양육 에세이, 가사노동 에세이 등등을 쓰려고 했는데, 그것들이 제 생활상을 보여주면서 머릿속에서 통합되고 있는 것이죠.
이왕 시트콤 비슷하게 된 거 멤버들부터 소개해야겠습니다. 저희 집 구성원은 ‘대집사장’이라 호칭되는 30대 중반 남성인 저, 저를 철저하게 컨트롤하는 ‘가모장’, 그리고 두 고양이 란포와 란마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큰 아이 란포에 대해서 설명하려 합니다.
(2017년 11월 6일의 사진. 란포는 성묘가 된 이후에도 매우 작고 귀여운 고양이입니다.)
2015년 4월생, 수컷이며, 검은 고양이인 란포는 축복받은 아이입니다.
란포는 어머니가 서울 거리에서 로드킬 당하고 형제들이 범백을 앓아 죽어가는 와중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범백이란 ‘범백혈구감소증’의 준말로 고양의 질병의 끝판왕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고양이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건너보냈고, 그만큼 수많은 애묘인들을 슬프게 했죠. 바이러스성 장염인데 전염성이 강하고 면역력이 약해져서 쉬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지나가던 애묘인이 새끼들을 데려가 살려보려 했지만 몇 마리는 죽었습니다. 그 애묘인이 가모장과 건너건너 아는 사이였는지라 범백에서 살아남은 새끼 두 마리를 입양해달라고 했어요. 애묘인의 집엔 이미 고양이가 있었던 탓이죠.
반면 당시 저희 집은 가모장이 출생시부터 만 6년 동안 기르던 치즈태비 고양이 레온이 하필 2015년 3월 12일 범백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여기에도 슬픈 사연이 있는데 나중에 설명드릴 기회가 있겠습니다.
란포는 태어난 지 6주가 지난 후인 2015년 5월 25일, 석가탄신일 날 분양되어 레온이 사라진 저희 집의 새로운 첫째로 입성하게 됩니다. 두 마리를 넘겨주겠다고 했던 그 애묘인은 ‘나머지 한 마리도 지금 범백 증세의 차도가 좋지 않다. 그래서 바로 넘겨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란포가 저희 집에 온 지 며칠 후, 란포의 마지막 형제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결국 란포는 형제 중에서 홀로 살아남은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희 집에서 무려 32개월을 지냈네요. 고양이는 1년이면 성묘가 되어 인간 나이 20세라고 비유하니, 만 세 살에 다가가는 란마는 20대 초반의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2018년 1월 22일, 가모장의 발 밑에 딱 붙어 있는 란포. 란포는 매우 사람에게 친화적인 고양이입니다.)
란포의 이름은 란포를 넘겨받아 집으로 오던 전철에서 가모장이 지었습니다. 이름을 짓는 것은 가모장의 권능이었던 탓이지요. 가모장은 ‘검은 고양이’에서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에드거’나 ‘앨런’은 이름이 그닥 귀엽지 않았고 ‘포’는 너무 짧았지요. 그래서 가모장은 한발 더 나아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본 딴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을 떠올렸지요. 그렇게 우리 집에 온 검은 고양이의 이름은 란포가 되었습니다.
란포는 자신의 생존이 행운만은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듯 건강하고 활달한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란포를 만나본 이들은 모두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를 본 적이 없네!”라고 반응했습니다. 언젠가 저희 집에서 하루밤 자고 간 대집사장의 친구 한 놈은 “(처음 보는 사람이) 부른다고 오는 고양이는 처음이야!”라고 했습니다. 란포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기분이 좋아지면 사람의 다리에 치대고 주변을 맴돌아 왔습니다. 앉아 있으면 무릎 위로 오고 누워 있으면 배 위로 왔습니다.
(입양 다음날, 2015년 5월 26일의 란포 모습. 애기 때는 당연히 더 귀여웠습니다.)
그렇게 자주 다가오니 양육자들이 일부러 짬을 내어 쓰다듬을 필요없이 란포는 항상 예쁨을 받는 삶을 살았지요. 일부러 놀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 뛰어다녔습니다. 먹이나 화장실 문제로 사람을 크게 보채지도 않는 속깊은 고양이었지요. 뭔가 부족해도 그냥 사람에게 와서 골골송을 불러댑니다. 사실 이렇게 적으면 란포는 참으로 키우기 쉬운 고양입니다. 그러나 둘째를 들이면서는 상당히 걱정을 할 부분이 있었지요. 이 부분은 나중에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날의 란포.)
란포에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사람의 음식을 지나치게 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생선과 참치는 물론이고 육류는 다 노렸지요. 심지어 양념된 고기도 가리지 않고 노리니 양육자들은 식사를 차릴 때마다 란포를 신경써야 했습니다. 맘 같아서야 인간이 먹는 것도 주고 싶지만 건강이 염려가 되어 못 한 것이지요. 다행히 란포는 사람의 음식을 노리긴 해도 건사료도 잘 먹는 아이입니다. 이후 대집사장이 자연주의 육아에 관심을 가지고 생식 사료를 발견하게 되면서 란포는 더 맛있는 것들도 먹어보게 됩니다.
(2015년 6월 6일의 란포. 그렇다고 맥주까지 노린 것은 아닌데, 호기심에 코를 들이밀었고 이런 재미있는 사진이 나왔습니다.)
란포는 성묘가 된 지금도 그다지 큰 고양이가 아닙니다. 란포가 우리 곁으로 왔을 때는 불과 400g이었지요. 그리고 생식 사료를 먹으며 가장 덩치가 컸을 때에도 4.9kg 정도 나갔습니다. 지금은 4.6kg 정도이고, 과거 7개월 때에는 3.7kg 정도에서 정체되어 더 이상 크지 않을까 우려한 적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성묘에 비해선 다소 작아 보였던 것이지요.
어릴 때 어머니 젖을 많이 먹지 못해 더 크지 못하는가 싶어 안쓰럽기만 했던 적도 있지요. 란포가 성묘가 된 후 둘째를 들이고 싶었던 대집사장은 좀 더 구체적인 걱정도 했습니다. 나중에 데려온 둘째가 훨씬 커질 경우 치일까봐 걱정한 것이지요. 란포는 활달한 만큼 성격이 강했습니다. 가끔 여행가는 친구들이 맡긴 자신보다 덩치가 큰 성묘들과의 신경전에서도 지지 않았습니다. 얻어맞아 가면서도 계속 덤볐지요. 성격이 이런 아이가 덩치가 작다면 다른 고양이들과의 관계에서 힘들지 않겠는가란 생각이 당시엔 계속 들었습니다. 그때 시점에선 란포보다도 성장이 느리지만 어떤 의미에선 란포보다도 성질머리가 더러운 란마 같은 동생을 들이게 될 거란 점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요
(2015년 5월 26일, 무언가에 대해 항의하는 듯한 란포 모습. 란포는 처음 왔을 때부터 인간에게 말을 많이 거는 그런 고양이었어요.)
당시 양육인들이 그런 고민을 할 때 친구들은 웃었습니다. 대집사장의 한 친구는 “작은 고양이가 더 귀엽지 뭘 그래?”라는 핀잔을 했다고 합니다. 가모장은 애엄마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너 나보다 더 애엄마 같구나?”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말로는 온갖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평범한 애엄마라고 해요. 친구는 “고양이가 ‘180cm 이하면 루저’ 소리 들을 것도 아닌데 크기가 뭐가 문제야? 밖에 내보낼 거야? 아직 들이지도 않은 둘째는 왜 신경 써? 성격 사나운 애가 덩치가 작으면 다른 고양이와 잘 지내가 더 좋지 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2015년 5월 28일의 란포. 이때야 검은 털실더미 같았지요.)
하긴 양육인들은 란포를 야생에 내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계속 계속 자기들 옆에서 아가처럼 예쁨을 받기를 바랍니다. 저번에 쓴 ‘유형성숙’ 에세이 같은 것이지요. 조금 슬픈 구석도 있지만 그것이 반려동물의 숙명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고양이보다 수명이 길기에 이 이기적인 행각은 이번 생에선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예전부터 오늘까지 란포는 양육인들의 우울증을 치료하며 별 걱정없이 사는 중입니다.
<유형성숙 : 반려동물은 아이의 감정으로 어른이 된다> https://steemit.com/cat/@hanyhy1983/3mvqk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