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전용 앱 브라우저를 만들고 있는 @hanyeol입니다.
디지털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기를 권하는 드라마가 바로 블랙미러입니다. 블랙미러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미래의 모습을 영국 특유의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으로 그려냈다는 평이 따라 붙는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끔찍한 미래를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목적은 아닙니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미래 사회가 겪게 될 딜레마에 대해 미리 성찰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고품질 드라마죠. 다소 무거운 의도와는 다르게 드라마 자체는 매우 흥미롭고 볼거리가 많으며, 특히 재미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특히 스팀잇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전망 글이나 미투 운동을 둘러싼 격렬한 SNS 논쟁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블랙미러의 에피소드들이 다뤘던 딜레마가 떠올라서 머릿 속이 더 복잡해지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매개로 전개되는 사람들 간의 소통 양상과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딜레마를 매우 흥미롭게 다룬 2편의 에피소드가 머릿 속에서 쉽게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네요. 이 참에 스팀잇의 미래를 고민하는 분들께 영감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2편의 에피소드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시즌 3의 첫번째 에피소드인 추락(Nosedive)은 타인과의 인터랙션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행위가 평판이라는 점수로 환산되어 누구에게나 공개되는 미래를 형상화했습니다. 자신의 평판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혜택이 달라지는 까닭에 평판의 등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가식적인 예의가 기본이 된 사회입니다. 평판 점수가 낮은 사람들은 기피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하루 아침에 평판 점수가 추락한 주인공이 처하게 되는 상황은 정말이지 지켜보고 있기 힘들었습니다. 요즘 스팀잇에서 비밀번호를 탈취당해 의도치않게 스팸 계정으로 분류된 후 수많은 다운보팅으로 평판이 추락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들이 떠오르는데요, 개인의 다양한 행위와 그 행위의 의도, 그로 인한 결과가 오로지 평판 점수라는 숫자로 단순화될 때 발생하는 컨텍스트의 실종이 어떤 딜레마를 가져오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제가 제일 애정하는 시즌 3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미움 받는 자(Hated In the Nation)는 어느날 갑자기 혐오의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에게 SNS나 댓글을 통해 저질러지는 일종의 테러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더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지만 인터넷 상에서 너무나 쉽게 저질러지는 혐오의 언어를 극단으로 끌고가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지를 매우 흥미롭게 그려낸 에피소드입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극혐인데요, 혐이 얼마나 크면 극으로 치달았을까 싶으면서도 그 정도로 혐오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이 그렇게나 많을까 싶어서 듣기 싫은 단어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극혐의 언어가 가져오는 파국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려낸 명작입니다. 저는 2번이나 봤는데도, 다시 보고 싶은 에피소드네요.
위에서 소개한 2개의 에피소드는 디지털 미래의 양 극단을 각각 다뤘습니다. 하나는 평판에 얽매이게 되어 타인과의 관여도가 매우 높아진 사회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나와 별 관계가 없는 타인에 대해 즉자적인 판단과 단죄가 이뤄지는 개인주의 사회의 미래 모습입니다. 스팀잇은 커뮤니티와 신용협동조합 모델이라는 고관여 사회를 기반으로, 업보팅과 다운보팅이라는 무기가 각자의 책임 하에 사용할 수 있도록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2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여러가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팀잇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직 저의 결론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물론 우리의 발목을 잡아채서 디스토피아라는 구렁텅이로 끌고가려는 다양한 딜레마가 난관처럼 우리 앞에 놓이겠죠.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더 나은 길을 찾아 가지 않을까요? 스팀잇이라는 플랫폼 역시 많은 난관에 시달릴 게 분명합니다. 그러면 좀 어떤가요. 이제 막 두 살이 된 플랫폼이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찾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과정이겠죠. 그 발버둥 끝에 도달한 곳이 디스토피아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저의 근거없는 낙관입니다. 그나저나, 블랙미러, 꼭 한번 보세요. 초창기 스팀잇에 발을 들일 정도의 디지털 감수성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