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규제안은 프라이빗 블록체인 양성화로 귀결되는 듯 하다. 우려스런 일이다. 도대체 개별 기관이 내부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쓸 이유가 어디에 있나. 우리 과 동기의 정확한 지적처럼 블록체인은 매우 비효율적인 기술이다.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은행 시스템보다 수백배는 느리고 전기도 많이 잡아먹는다.
비자카드는 자체 시스템으로 초당 5만 건의 트랜잭션을 처리하지만 블록체인은 현재 초당 100건의 트랜잭션도 처리하지 못한다. 근데,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왜?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체 시스템의 무결성을 보증하려면 블록체인보다 좋은 기술이 차고 넘쳤다. 뭐하러 일부러 비효율을 도입하려 하나. 블록체인 기술이 대형 SI 업체들의 차세대 먹을거리라서? 그저 유행이니까 도입해보는 거다. 돈만 쓰겠지. 이 논리에 관료들이 홀딱 넘어갔다.
퍼블릭 블록체인이 풀려고 하는 문제는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타인 사이에 부당하게 끼어든 중간 거래상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혁신하려는 거다. 그런데, 중간 거래상 없이 나와 타인의 거래를 신뢰할 수 있으려면 다수가 참여하여 해당 거래의 신뢰를 중복으로 검증하고 기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탈중앙화다. 이 과정에서 극도의 비효율이 발생한다. 예전에는 중간거래상이 한번만 검증하면 될 일을 네트워크에 참여한 다수가 지루하게 중복 검증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이 비효율은 탈중앙화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한 의도된 비효율이다. 후져보이는가? 그렇다면 민주주의 체제가 가장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걸 상기하면 된다. 숙의 민주주의에 긍정한 사람들이라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거래상들이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도입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정부가 퍼블릭 블록체인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비용으로 유지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거버넌트 블록체인까지만이라도 논의를 진전시켜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