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딸딸한 정신에 막걸리가 가득찬 배를 안고 좁은 밭둑길을 따라 걷기가 수월치는 않았습니다. 몇 번을 밭에 빠지며 겨우 언덕마루에 다다르자 갈증이 납니다. 마침 할머니 한 분이 소쿠리에 무언가 담아 놓고 파시길레 다가가 보니 이게 또 막걸리입니다.
너무 목이 타니 또 한 잔씩 들이켰는데 이게 사단입니다. 숙녀분의 기분이 지나치게 '업'되셔서 마구 뛰어 내려가더니 부산대 뒤편에 이르러 암벽등반을 하듯 축대를 타기 시작합니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높이가 상당하고 가파릅니다. 갑작스런 일이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사내 둘이 따라내려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술이 확 깹니다. 다행히 별일없이 내려오고 보니 이 두 사람 산악인이 맞긴 한가 봅니다.
교정에 주저앉아 잠시 숨을 돌리려니 대단하신 숙녀께서 한 잔 더 해야겠답니다. 정중히 사양했지만 이젠 말이 통하질 않습니다. 질질 끌려 학생들로 붐비는 선술집에 들어갔습니다. 다시 막걸리를 들이붓습니다. 이젠 정신이 몽롱해서 술이 술을 마십니다.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도 희미한데 깨보니 부산대 잔디밭이었습니다. 속이 부대껴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무더기를 쌓은 후 정말 본능이 이끄는 대로 부산역으로 가서 어찌어찌 표를 끊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가 흔들리는데 이게 또 문제입니다. 속이 뒤집어져 몇 번이고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서울에 도착할 때 즈음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아차! 친구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겁니다.
친구야 미안하다. 그날 너무 급한 일이 있어서 말도 못 하고 올라왔다고 했는데 사실은 술에 취해 약속을 잊어버린 거였다. 다음에 내려가면 산성마을에서 염소불고기 안주로 한 잔 살께.
P.S 부산대 관리하시는 분께 이제야 사과드립니다. 그날 아름다운 캠퍼스를 더럽혀서 너무 죄송합니다.
NAVER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