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신앙이 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종교적인 집안의 아이도 아닌데 교회에 다니는 걸 좋아했고, 장래의 꿈이 성직자였습니다.
중3 때즈음, 교회에서 중앙대학교 주변으로 전도 활동을 나갔습니다.
그 친구는 대학생 누나와 형들에게 전도지를 전할 생각으로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는데, 분수대 근처에 덩치가 곰같은 사내가 팔장을 끼고 눈을 감은 체 앉아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냉랭해서 그냥 지나치려다 한 번 더 돌아보니 몹시 쓸쓸해 보였습니다.
생각을 바꾸고 다가가 말도 없이 전도지를 건네고 돌아서려는데 잠시 바라보던 그가,
"얘야 지금 교회에 함께 갈 수 있겠니?" 하는 겁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그 당시 그분은 무엇 때문인지 세상에 회의하며 차라리 죽어버릴까 갈등하고 있었고, 어린 아이의 손에 이끌려 하소연이라도 해보려고 성직자를 찾아간 것 입니다.
놀랍게도 그분은 회심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종교적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늘, 긴 추위는 사그러들고 햇살이 따사로와 화단의 겨울 자취를 걷어내려다 시들어버린 화초들 사이에서 파릇하게 오르는 새싹들을 보았습니다.
아직 완전히 녹지도 않은 땅에 한나절 햇살이 생명을 깨운 것이지요.
문득 햇살을 받은 우리도 햇살이 되어 겨울이 끝나지 않은 이들에게 따스하게 비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한나절이면 시든 생명을 깨우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앵두나무와 수국 사이에 국화의 싹이 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