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 수련회를 청평으로 왔었습니다. 청평 시내를 벗어나 땜 방향으로 향하니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더군요. 우리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도착지인 양진리에서 하선했습니다. 선착장 바로 옆에 양진 분교가 있었는데 그곳이 모임터였습니다.
방학 중이어서 선생님 한 분만 계셨는데 성함은 물론 얼굴도 희미하지만 시인이셨습니다.
늦은 밤까지 모닥불을 피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학교에는 학생이 세 명이랍니다. 두 아이는 학교 근처에 사는 형제이고, 한 아이는 믿기지 않게도 화전민 가정의 자녀랍니다.
호명산 중턱 어디쯤에 사는 그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걸어서 등교한답니다. 두 시간 남짓 걸리는 산길을 혼자 걷다가 다람쥐를 만나면 함께 놀고, 뱀이라도 만나면 짓궂게 굴기도 하고, 바람 선선하면 한 숨 자기도 하면서 어쨋든 10시나 되서야 학교에 도착합니다.
어린 아이에겐 벅찬 거리여서 도착하면 일단 엎드려 쉰답니다. 쉬다보면 점심시간. 두 형제는 가까운 집에 가도 좋으련만 한사코 선생님과 잠에서 깬 녀석과 점심 먹는 걸 좋아한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면 손바닥만한 운동장에서 공놀이도 하고, 깊어서 수영은 어렵지만 선착장 근처에서 물놀이도 하다가 오후 수업을 시작합니다.
문제는 가을부터입니다. 해가 짧아지면서 산 아이가 어둡기 전에 산길을 거슬러 올라야 하기 때문에 점심식사가 끝나면 어영부영 집으로 향한답니다.
그 당시 세 아이 중 한 명이 6 학년이고 둘은 3,4 학년이었는데, 이 아이들이 졸업하면 학교는 폐교될 거란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몇 년이 지나 그 곳을 다시 찾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사이 길이 2차선으로 포장되어 배를 타는 대신 차를 몰고 갔습니다. 오대골과 호명리를 지나 양진리에 가까워 지자 가슴이 설레이는데, 도데체 학교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기도 했거니와 레포츠 시설과 카페와 별장들이 줄지어 들어선 풍경이 전혀 와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몇 해가 지나 사랑하는 이와 그 근처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때문인지는 잊었지만 그날 밤 엄청 다투고 새벽, 그녀는 혼자 떠나버렸습니다.
아침에 선착장에 주저앉아 시를 한 편 썼습니다.
시는 낼 올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너무걱정하진 마세요. 지금 그녀와 살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