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hangeul입니다. 오늘은 제가 쓴 단편 소설을 한 번 발표해 보려고 합니다. 너무 졸작이어서 부끄럽네요. ㅠㅠ 그래도 얼굴에 철판을 한 번 깔고 올려 봅니다.
제목은 '디스커버리를 찾아라'입니다. 이 소설은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롱패딩이 사라진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코인 투자와 관련된 내용도 나오는 어느 한 가족의 이야기로 현실을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 현실과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 이 점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단편 소설은 1부, 2부 이렇게 총 2부로 나누어 오늘, 내일 양일간 연재할 예정입니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라고 재밌으셨다면 리스팀, 팔로우, 보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1부 이제 시작합니다.
디스커버리를 찾아라 - 1부
1 한 남자
체육시간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떠들썩함이 휩쓸고 지나간 후 적막함이 감도는 텅 빈 교실.
한 남자가 조용히 문을 열고 몰래 교실로 들어와 흔들리는 눈동자로 가방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자는 찾던 가방이 눈에 띄자, 가방을 뒤지기는커녕 의자에 걸쳐져 있던 디스커버리 롱패딩만을 들고 황급히 자리를 떠 버린다. 형광등이 꺼진 교실에서 창문으로 들어 온 햇살에 비친 그의 눈은 흔들리며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얼마 뒤 교문을 나서며 그는 아까 그 교실 쪽을 잠시 쳐다본 후 “휴... 미안하다...”라는 말만 남기고 자취를 감춘다.
2 디스커버리가 사라졌다.
“드르륵~ 쾅!”
시끄러운 문 소리와 함께, 체육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중 유독 동국이와 주영이가 찡그린 얼굴로 서로를 비난하며 들어온다.
“으이구~ 누가 이주영 아니랄까봐. 이 바보야, 어떻게 그걸 못 넣냐? 마지막 것만 들어갔어도 4반 애들 바를 수 있었잖아!”
체육시간에 4반과 했던 축구 시합에서 주영이가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동국이가 불만을 터뜨린다.
“뭐라고? 박동국 이 븅신아? 그러는 너는, 니가 오늘 후지산 대폭발슛으로 몇 번이나 삽질했는지 알기나 하냐? 그것만 아니었어도 오늘 경기 이겼다고~!”
주영이도 이에 질세라 동국이가 놓친 기회에 대해 따지며 맞불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뛴 주영이와 동국이가 싸우고 있자, 지켜보던 성용이가 싸움을 말리려고 나섰다.
“야, 이주영, 박동국 그만들 싸우고 음료수나 한 잔 해~ 아름다운 축구 했잖아? 그거면 되지, 안그래? 볼 점유율은 우리가 압도적이었다고! 다른 애들이 뭐라든지 신경쓰지마. 답답하면 지들이 뛰던가! 에이씨~”
성용이의 위로인 듯 위로 아닌 위로 같은 말을 들은 주영이와 동국이는 음료수는 안중에 없는 듯 오히려 서로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이 새끼가 죽을라고! 야 너 죽을래?”
동국이가 주영이의 멱살을 잡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놀란 둘은 다툼을 멈추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으아악~ 내 디스커버리 롱패딩!! 누구야? 어떤 새끼가 훔쳐 갔어! 어떤 새끼야! 빨리 자수해~ 아 돌아 버리겠네! 그게 얼마짜리 옷인데 미치겠다 증말!”
놀라 큰 소리를 지르며 막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어쩔 줄 몰라 펄떡펄떡 뛰고 있는 아이는 은호였다.
체육 시간 전까지 분명 존재했고, 행여 먼지라도 묻을 까봐 의자에 조심스럽게 걸쳐 놓았으며 혹시나 누가 훔쳐 갈까 다음 시간 종이 울릴 때까지 지켜보고 체육 수업을 나갈 만큼 아꼈던 그 소중한 롱패딩이 불과 한 시간 사이에 감쪽같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멘붕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수업을 나가기 전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두 눈으로 도장을 쾅하고 찍고 나갔던 은호가 아니었던가.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어 닥친 고난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지며 손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느끼면서 패딩을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만 드는 은호였다.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되찾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주먹을 꽉 쥐어 보고 있었다.
‘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어... 혹시 저 놈이? 쟤도 아니야... 그럴 애가 아니잖아...’
은호는 패딩이 없어진 것을 안 순간부터 무엇에 홀린 듯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조금 전 까지 함께 축구를 했던 모든 친구들이 패딩 도둑이 아닐까 의심되기 시작했고 혹시나 흙먼지가 묻을까, 옷이 찢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추위를 참아가며 체육수업 시간에 패딩을 입고 나가지 않은 자신에 대한 원망과 자괴감에 몸서리를 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아... 진짜... 미치겠다... 그 옷이 어떤 옷인데... 어떻게 마련한 옷인데... 그걸 잃어버리다니... 어떡하지?...’
“Discovery는 ‘발견’이라는 의미니까 꼭 기억하고 있도록 해요. 아주 중요한 단어니까요.”
영어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은호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찾아야 하는 것은 영어 단어 ‘Discovery’가 아닌 패딩이었으니까.
3 은호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달빛마을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이것이 현재 은호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주소’였다.
다른 아이들이 브랜드가 있는 아파트로 자신의 위치를 표현할 때 은호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달빛’밖에 없었다. 은호에게 달빛마을은 삶의 터전이자 소중한 보금자리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곳을 흔히 ‘달동네’라고 불렀다.
어느날 밤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은호는 옆집에 사는 은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 동네를 ‘달동네’라고 불러. 하지만 나는 여기가 좋아. 하늘과 가장 가까운, 보름달이 뜨면 손쟁반을 만들어 달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곳이거든”
집 앞 계단에 은호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던 은서가 말했다.
“야, 너무 시적인 거 아니냐? 현실적으로 좀 생각해! 달동네가 왜 달동네인지 알아?”
“현실적으로? 무슨 말이야?”
“달동네가 달동네인 이유는 말이야... 쨍하고 해뜰 날이 없어서 달동네인거야? 알겠냐? 희망이 없다고 이 바보야!”
은호의 말에 은서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은호는 조금 심했나 생각했지만 이윽고 자리를 털고 집으로 들어간다. 은서는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 동네가 마음에 들 수도 있겠지만 은호는 아니다. 작년에 이곳으로 어쩔 수 없이 휩쓸려 들어온 터라 이 놈의 동네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은호네는 지금 사는 동네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있는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았었다. 크고 비싼 집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은호 세 사람이 오순도순 살기에 딱 적당했던 곳이었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작년 5월이었을 것이다. 은호의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는 그 동안 모아 놓은 돈과 퇴직금, 대출 받은 돈을 모두 비트코인에 투자했던 것은.
정말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100만원이었던 비트코인이 800만원이 되고 1000만원이 되고 거래소 화면에 찍혀 있는 거액을 보여주며 은호의 아버지는 이제 우리도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은호의 어머니와 은호에게 말하며 환한 미소를 보였었다.
가끔은 은호 아버지는 은호에게 ‘블록체인’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말들을 하며 너도 나한테 잘 배워서 나중에 ‘큰손’이 되어야 한다며,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돈이 얼마가 들든지 밀어주겠다고 했다.
세 사람이 오순도순 모여 살던 아파트를 떠나 펠리스 타워에 들어간 시기도 이쯤이었을 것이다. 돈은 전보다 많아졌지만 가족끼리 함께 하는 시간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여기저기 투자를 한다며 자주 늦은 귀가를 하셨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백화점 쇼핑을 다니기에 바빴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는 어느새 사라지고 은호는 점점 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말 행복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집은 이제 거지구나...’
작년부터 지금까지 은호가 수도 없이 떠올렸다 흘려버린 생각이었다. 은서에게는 달동네가 결코 해뜰 날이 없는 동네라고 말했지만 둥근 보름달 빛 아래 앉아 달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은 은서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은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가난으로 인한 아픔을, 다른 사람은 모르는 마음속 좌절들을, 달빛에 씻어 정화시킨 후 맑게 가라앉은 침전물들로 만들어 겹겹이 마음속에 쌓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은호는 이제 고3, 새 학년이 되고 어느 여자 아이와 새로운 짝이 되었다.
“야 정은호, 너는 어느 대학에 갈거야?”
대학교에 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그 아이가 은호에게 물어 왔을 때 은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저 아이에게는 저리도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왜 고민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정말이지 가난은 때를 가지리 않고 불쑥 불쑥 나타나는 불청객인 것만 같다.
은호는 크게 모나지 않은 성격에, 뛰어나진 않아도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다 운동신경도 남부럽지 않아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왠지 친구들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며 ‘왜 나는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왜 이렇게 사는 게 거지같은 걸까?’라는 답이 없는, 답해 줄 사람도 없는 무서운 의문을 수도 없이 품었다 고개를 흔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은호의 생활이 완전히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다. 달빛마을로 쫓기듯 이사를 오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다시 마음을 잡고 근면하게 일하셨고 또, 정직하고 바르게,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이야기 하시는 좋은 분이셨기 때문이다.
또한 은호의 어머니도 ‘그 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같은 말만 반복하며 살고 있지만 은호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그 누구보다 따뜻했으니까, 은호는 가난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은호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은 햇빛은 아니었지만 달빛처럼 은은한 것이었다.
이렇게 은호는 가진 것이 없어도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불투명한 미래는 은호를 ‘불안’하게 했다.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른 아이들은 변호사, 의사, 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등등 소위 돈 잘 버는 ‘사짜’ 직업, 전문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얼마를 버네, 그런 걸 하려면 로스쿨이 어쩌고 수능 점수가 어쩌고 엄마 친구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떠들어 대곤 했다.
하지만 은호에게 그런 꿈을 꾸는 것은 마치 재래시장에서 산 허름한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내가, 길을 걷다 나이키 매장에 들러 사지도 않을 에어 맥스를 한 번 신어보고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꿈을 꾼다는 것, 그것은 은호에게 사치와도 같았다.
4 아버지와 엄마
은호의 아버지는 전자회사의 서비스 센터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적은 기본급에 제품을 수리한 ‘건 수’가 많아야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업이었다. 힘든 것은 고객들로부터 클레임을 받지 않도록, 일하는 내내 삐에로처럼 쥐가 나도록 입꼬리를 치켜 올리고 웃고 있어야만 하는 것과 흔히들 말하는 도를 넘은 ‘진상’을 부리는 고객에게도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힘들게 감정을 소비하며 남들보다 노력하며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4인 가족의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것이어서 늘 돈에 쩔쩔매야 하는 생활이, 가족에게 이렇게 밖에 못 해주는 자신이, 이 사회가, 이 세상이 늘 노여운 은호 아버지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스마트폰에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고객 응대 지침’대로 ‘공장 초기화’를 권했고 그렇게 하자 기기가 잘 작동되어 고객에게 다시 스마트폰을 건네 주었다. 그런데
“아아니~ 도대체 수리를 어떻게 하신 거예요? 여기 스마트폰에 흠집 난 것 보여요? 안 보여요? 수리를 맡겼더니 오히려 폰을 긁어 놨네!?”
정말이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공장 초기화는 화면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부드러운 천을 깔고 정말 조심스럽게 작업을 했는데 스마트폰에 흠집이 났다고 클레임을 걸다니. 한동안 잠잠한가 싶었는데 여자의 말과 행동을 보니 제대로 걸렸다 싶었다.
“저기..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수리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부드러운 천을 깔고 작업을 했고 공구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장 초기화는 화면 터치만으로 가능하니까 그 흡집은 제가 낸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은호 아버지는 울컥하는 마음을 참으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참아야 한다고, 은호와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양 손으로 허벅지를 꾹 쥐었다.
“아니, 그럼 이 흠집은 어떻게 설명하실 건데요? 분명 아까까지는 없었는데 당신이 폰을 건드리고 나니까 생겼다니까요? 이 양반이 말이 안통하는구만? 여기 서비스 센터 사장 불러줘요. 내 참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보겠네?”
드디어 나왔다.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 말이다. 언제 들어도 두려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땅의 모든 피고용자들의 약점을 날카로운 비수로 찌르고 들어오는 듯한 그 말이.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며칠 전부터 고민해왔던 것의 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날로 은호 아버지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비트코인 투자에 나섰다. 반드시 성공하리라, 성공해서 당당한 아버지가 되리라 다짐하는 그였다.
다행히 비트코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100만원 짜리가 800만원 천 만원이 되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제 부자가 되었고 앞으로는 행복할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오늘은 펠리스 타워로 이사를 가는 날이다. 은호 아버지는 높은 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앞으로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 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오늘은 코인이 얼마나 올랐는지 자산 내역을 확인하는 일이었기에 은호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거래소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이트에 접속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은호 아버지는 지금 거래가 폭증해서 서버가 다운되었구나 생각하고는 또 얼마나 가격이 올라 있을지 기대해 본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접속이 되지 않는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거래소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이버 뉴스에 들어간다.
- ‘해킹으로 파산신청한 거래소 탑빗(Top Bit), 회원들 고소장 제출’
뉴스 헤드라인을 보는 순간 혼이 빠져나간다는 말이 실감되는 것만 같다.
‘안전하다고 했잖아. 블록체인은 안전하다며? 세계적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24시간 모니터링 한다고 했잖아?’
‘아씨~ 사람들이 거래소는 업비트(upbit)라고 할 때 말을 들었어야 했어..’
현실로 돌아오기 까지는 생각보다 얼마 걸리지 않았다. 충격보다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해야할지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 동안 거래소 자산 내역만 믿고 여기 저기 돈을 빌려서 벌여 놓은 사업들, 투자들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려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말을 못할 것 같아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조용한 집에서 전화만 쉴 새 없이 알림을 토해내고 있다. 이제 아내가 은호를 태워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그리고 은호 아버지에겐 죽는 것보다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쇼핑을 마친 은호 어머니는 은호에게 연락해서 학교 앞까지 태우러 가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문화 센터에서 알게 된 친구의 소개로 새로 구입한 외제차의 핸들을 잡고 쓰다듬어 본다. 부드럽고 매끈한 핸들의 감촉에서 새로운 삶을 느끼며 확인하고 있다.
은호를 태워서 집으로 가는 길에 은호 아빠에게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받질 않는다. 많이 바쁜가보다. 그이는 거래를 할 때만큼은 방해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그러려니 한다. 이윽고 집에 도착했고 현관에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집안의 모습이 보인다. 안방의 불빛만 밝다.
“여보~ 나 왔어~. 은호도 태워 왔어~ 저녁은 먹었어? 안 먹었지?”
크게 소리를 내 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어 곧 안방으로 들어가 본다. 방 안에 들어서자 남편과 소주 병 몇이 함께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놀라 왜 이러고 있냐고 물으니 남편이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 준다. 이야기를 듣자 앞이 캄캄해지면서 몸이 기운다. 눈이 감긴다.
충격으로 쓰러져 며칠 후 의식을 되찾은 은호 어머니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24시간 내내 행복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고 이따금씩 “가자~!, 가자~!”만을 외칠 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가끔 은호가 병원에 들를 때만 은호를 알아 보고 반기며 안아 줄 뿐이다.
5 디스커버리를 찾아라 1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는 복잡하고, 당황한 나머지 패딩을 찾아 볼 겨를도 없이, 곧 종이 울리고 다음 수업이 시작되었다. 문학 수업이었다.
오늘 배울 작품은 이범선의 <오발탄>이었다. 교실 앞에서는 선생님이 열심히 판서를 하기도 하고 중요한 것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있었지만, 은호는 좀처럼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딱 한 부분만 빼고 말이다.
철호는 천천히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가자!" 철호는 멈칫 섰다. 낮에는 이렇게까지 멀리 들리는 줄은 미처 몰랐던
어머니의 그 소리가 골목 어귀에 까지 들려왔다. "가자!"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골목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철호는 다시 발을 옮겨 놓았다. 정말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그건 다리가 저려서만이 아니었다. "가자!" 철호가 그의
집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그만치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가자는 것이었다.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렇게 정신 이상이 생기기 전부터 철호의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던 말이었다. 삼팔선, 그것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도 철호의 늙은 어머니에게만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이범선 <오발탄> 중에서-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오발탄> 속의 어머니는 북한에서 부자로 살다가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한으로 피난 와서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제목의 ‘오발탄’은 삶의 방향성을 상실한 철호의 처지를 상징한다고도 했다. 은호는 철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즈아~! gazuuuaaaa~!”
작년부터 유행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은호의 어머니가 유일하게 하는 말이기도 한 ‘가자’. 한 때는 은호의 부모님도 갖고 있는 코인이 오르기를 바라면서 농담 삼아 자주 했던 말이기도 한 그 말. 은호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가족끼리 단란하고 행복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작게 외쳐본다.
“가즈아... 그 때로...”
잃어버린 패딩 생각에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은호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본격적으로 패딩을 찾기 시작했다.
“얘들아~ 내 디스커버리 패딩 본 사람 있어? 아니면 누가 훔쳐갔는지 아는 사람? 혹시 아는 사람 있으면 제발 좀 말 좀 해줘~ 응?”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지만, 친구들은 ‘내가 어떻게 알아?’라는 표정을 지으며 제 각각 휴식 시간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친구들이 예상했던 대로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자 다음으로 은호는 평소 자전거를 훔쳐 인터넷 중고카페에서 팔아 용돈을 마련하던 대도를 족쳐 보기로 결심했다.
“야, 안대도 니가 훔쳤지? 이 도둑놈아!”
마침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대도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사실 은호도 대도가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패딩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물건을 잃어버리고도 쉽게 포기해 버리는 다른 아이들과 자신의 의지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은호는 대도를 거세게 몰아 붙였다.
“뭐? 뭐라고? 도둑노무 새끼? 야! 다시 한 번 말해봐, 이게 꽃샘추위에 팥빙수를 잘못 쳐먹었나..? 니 패딩 없어진 걸 왜 나한테 와서 찾냐? 내가 친구 패딩이나 훔치고 그럴 놈으로 보이냐? 내가 아무리 평소에 손 장난 좀 친다고 그래도 친구 건 안 건드려~ 그리고 너 그렇게 쉽게 친구 의심하는 거 아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이(사실 도둑놈이 맞긴 하지만) 뜬금없는 ‘도둑노무 새끼’ 소리를 들은 대도가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 난.. 니가 평소에.. 아니, 평소 니 놈 새끼 행실이 드러워서 그랬다 어쩔래?”
일종의 시범 케이스 정도로, 만만한 대도에게 큰 소리를 치며 허세를 부렸지만 은호는 한편으로 대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 학교에서 물건을 훔칠만한 아이라곤 대도밖에 몰랐던 은호는 더 강하게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뚫린 입이라고 너 너무 밑도 끝도 없이 말하는 거 같은데, 너 그러다 후회한다? 내가 진짜 범인이 아니면 너 어떡할 건데?”
하며 대도는 은호를 지나치며 어깨를 툭하고 부딪치곤 자기 자리로 향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도의 말은 침착했고 당황한 기색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대도의 짓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은호는 생각했다. 아니 확신까지 들려고 했다.
“후회? 후회 같은거 할 일 없거든? 내가 반드시 범인 잡고 만다. 그 새끼 누군진 몰라도 소년원에 들어가 봐야 정신을 차리지!”
은호는 대도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냥 두기로 결심했다. 대도가 속 깊은 녀석이라면 지금 은호의 행동이 ‘멘붕’ 상태에서 오는 일종의 이상행동이라는 것을 알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혹시나 이 모습을 어디선가 지켜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범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대도와의 실랑이가 결국 무위로 끝난 후 은호는 다시금 주먹을 불끈 쥐며 반드시 범인을 잡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후로도 몇 명의 친구와 답이 안 나오는 문제로 더 다투고 있을 무렵,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띵 띠리리리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띠 띠리리링~”
은호의 속 타는 마음과는 달리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담임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셨다.
“자, 인사하고 수업 시작하도록 합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은호의 담임 선생님은 밝은 표정으로 학생들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하루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나요?”
“네~”
수업을 시작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인사에는 늘 그렇듯 약간은 포장된 활기가 넘쳐흘렀지만 많은 아이들의 표정은 밝을 수만은 없었다. 은호의 패딩이 사라져 벌써 몇 시간 째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어느새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던 탓이다.
인사를 나눈 후 아이들의 표정을 살핀 선생님이 반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을 느낀 모양인지 맨 앞 줄에 앉은 일석이에게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보는 눈치였다. 일석이가 주저하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한 아이가 은호의 패딩이 사라졌다는 말을 했고 선생님은 잠시 충격에 휩싸인 듯 말을 잇지 못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휴~....... 그런 일이 있었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요. 우리 반에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곤 선생님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요.”
선생님은 마치 4년을 준비한 올림픽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을 당한 선수처럼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교탁 옆 접이 의자를 펴고는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자, 여러분. 여러분도 많이 당황했을 것 같네요. 우리 반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고 선생님도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여러분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선생님 마음이 아파요.”
실망한 선생님이 자신들을 탓하며 화를 내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진심어린 걱정에 우선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는, 정말 처음 겪는 일에 당황했지만 서로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닌데 누가 범인일까? 궁금해 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선생님의 입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까 선생님이 잠시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이 일을 그냥 묻고 지나가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여러분들의 동의를 얻어 반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지품 검사라도 해야하는 걸까... 그건 너무한 일이 아닐까... 이 일에 선생님인 내가 나서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고 말이죠.”
“여러분들이 보기엔 잠깐 동안만 생각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선생님이, 교사가 되고 난 이후부터 늘 생각해 왔던 문제였어요. 만약에 우리 반 교실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계속 고민해 왔던 거죠.”
“그래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은 이 문제를 푸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이미 여러분들은 학기 초부터 학급 회의를 통해 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해 왔고 잘 지켜가며 생활해 왔어요. 선생님은 그런 여러분들을 믿어 보도록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수업은 학급회의 시간으로 바꾸도록 할 거예요. 학급 회장과 서기는 앞으로 나와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토의를 진행해 봤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의 문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는 평소의 신념 때문이었는지, 충분히 좋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 선생님은 생각보다 걱정이 덜한 표정이었다.
학급회의 결과가 나왔다. 모든 아이들이 만장일치로 ‘소지품 검사를 하자.’라는 결과를 도출해 내었고 그것에 동의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반 전체 아이들의 소지품과 사물함을 검사했다. 결과적으로 반 아이들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은호는 교실 앞으로 나와서 친구들에게 사과를 하기로 했다.
“얘들아, 정말 미안하다. 너희들을 의심해서, 소란을 피워서 미안해. 근데 사실 그 디스커버리 롱패딩 있잖아. 정말 가지고 싶었던 거고 정말 힘들게 마련한 거야. 그게 없어져서 내가 잠시 미쳤었나봐.. 미안해.. 앞으로는 너희들한테 피해주지 않고 조용히 있을게..”
6 가족
오늘은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는 생각이 든 은호는 좀 뛰면 덜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까지 뛰어서 가기로 했다. 일단 집에 가긴 가는데 부모님께 패딩이 없어진 사실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하면서.
- 집이 가까워 오자 은호는 천천히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가자!" 은호는 멈칫 섰다. 낮에는 이렇게까지 멀리 들리는 줄은
미처 몰랐던 어머니의 그 소리가 골목 어귀에 까지 들려왔다. "가자!"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골목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은호는 다시 발을 옮겨 놓았다. 정말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가자!" 은호가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그만치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가자는 것이었다.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올라가자는 것이었다. 행복했던 지난
날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다. 현실, 그것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도 은호의 어머니에게만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끼이잌~ 덜커덩 쿵쾅 철컼~”
“다녀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은호는 얼마 전 퇴원을 하고 집에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은호의 어머니는 은호를 보자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반기는 표정이다. 은호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어머니는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지금의 현실을 참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예전으로 돌아... 가자..”
은호도 작게 말해 본다.
얼마 뒤 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많이 마신 건지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은호는 오늘 따라 아버지가 참 슬퍼 보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은호가 잃어버린 패딩은 얼마 전에 아버지가 사준 것이다. 집에서 뉴스를 보시던 아버지가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롱패딩이 유행인 것을 알고는 큰 마음을 먹고 사 온 것이었다.
“은호야, 아빠가 요즘 steemit이라는 SNS를 시작했거든? 이 사이트에 글을 쓰면 사람들이 글을 읽고 투표를 해 줘. 그러면 보상으로 코인을 받을 수 있어. 그걸로 이렇게 비싼 패딩도 살 수 있단다.”
“뭐라고요? 아빠! 또 코인에 손 대신 거예요?”
“아니, 은호야 이건 그런 코인 거래들하고는 좀 달라. 글을 쓰고 보상을 받는 건데 일종의 ‘원고료’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아빠! 어쨌든 코인 그거잖아요.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신 거였어요? 지금 우리 사는 꼴을 보세요. 엄마는 또 어떻고요.”
은호의 날카로운 반응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버지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만다.
“아무튼 아빠 코인 끊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고 추우니까 이왕 사온 옷이니 따뜻하게 입고 다녀.”
아버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은호는 방으로 들어간다. 예전 같으면 방이 3칸이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가족 간에 서로 다투고 나서도 단칸방이라 한 방에서 지내야 하는 것이 불편하면서도, 생각해보니 우습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기왕에 어렵게 사주신 옷이니 정말 아껴가며 소중하게 입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은호였다.
그런데 그런 옷을 오늘 잃어버린 것이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말하니 아버지가 오히려 더 괜찮다고 말하신다. 사람이 미안해서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오늘 죽어야만 할 것이다.
‘아버지 패딩 잃어 버려서 정말 죄송해요...’
오늘 밤은 다른 날보다 더 길 것 같다.
7 못
은호는 잠자리에 누워 예전 일을 떠올려 본다.
“아~ 나도 노스 패딩 사줘~. 다른 애들은 다 입고 다닌단 말이야~ 요새 노스 패딩 안 입고 다니면 애들이 그지 새끼라고 뒤에서 수군댄단 말이야. 저기 펠리스 타워에 사는 대용이는 아빠가 노스 대장급으로 사줬다는데 나는 이게 뭐야? 겨우 삼십 몇 만 원 짜리 패딩도 못 사줘?”
“은호야.. 미안한데.. 너 중학교 때 산 아디다스 패딩 있잖아. 아직도 새 것 같은데 또 사야겠어?”
“요새 누가 마이다스 패딩을 입고 다녀? 스타일 안 살게. 노스 패딩 정도는 입어줘야 인간 대접 받고 사는 곳이 학교란 말이야. 엄마 아빠는 뉴스도 안 봐? 노스 패딩이 교복이라고 불린다고 얼마 전에 뉴스에 나왔잖아~ 안 입으면 애들이 무시하고 왕따 당한다고~~~ 아빠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학교에서 애들한테 무시 받고 왕따 땅하면 좋겠어? 안 좋지? 그러니까 나도 노스 패딩 사줘~”
“그래.. 그럼 일단 아빠가 생각 좀 해 볼게..”
일터에서 시달리고 돌아온 은호의 아버지는 철 없는 아들이 원망스럽기도 하면서도 미안하고, 또 못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아~ 지금 그냥 결정해~ 집에 삼십 만원도 없어?”
“그건 아닌데, 옷 한 벌에 몇 십만원을 쓰기에 좀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지. 그래도 일단 사준다고 약속할게, 아빠가 돼가지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 기죽일 순 없으니. 근데 며칠 기다려야 할 거야..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꼭 사줄게”
“정말? 아싸~ 나도 이제 노스 패딩 산다~~ 와~~”
좋아하고 있는 은호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아버지의 표정이 왠지 씁쓸하다. 그리고 은호는 몰랐지만, 아버지는 한겨울인데도 회사에서 나눠 준 ‘(주)행복전자’라고 적힌 낡은 유니폼 점퍼만을 입고 있었다.
이렇게 예전 일을 떠올려 보면 스스로가 참 철이 없었구나.. 부모님 마음에 대못을 박았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은호다. 잠 못 드는 밤이 될 줄 알았건만 어느새 은호는 꿈나라로 가고 있었다.
다음날 은호는 학교 곳곳에 ‘패딩을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이며 다니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그런 은호를 보며 뭐라고 수군대는 것이 보였지만 은호는 아랑곳 않고 열심히 종이를 붙일 뿐이었다.
다들 그렇게 자신이 일이 아닌 일에 무관심했지만 은서는 달랐다.
“야! 정은호. 혼자서 뭘 그렇게 붙이고 다니냐? 내가 좀 도와 줄까?”
괜찮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종이의 반을 가져간 은서는 어느새 은호를 앞서서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하... 교장실 문에는 안 붙여도 되는데...”
은서가 고맙다가도 정말 도와주려는 건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오늘따라 은서가 참 예뻐 보인다.
1부 '끝'
어떻게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그러셨기를 바라면서 내일 2부도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리스팀, 팔로우, 보팅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tata1님의 작품입니다. 잘 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