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검정고시 있는날 ! - 야학 선생님 경험담 1)

Words
472
Reading
3 min
Listen
Play
8y

2011년부터 자원봉사로 야학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다. 영어,한국사를 가르치다가 요즘은 사회를 담당하고 있다. 학생들은 평균 60대 여성들로 중고등교육을 받지 않으신 분들이다.
일년에 2번 검정고시가 있는데 응원을 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솔직히 내게 그만한 효용가치가 없다는 생각때문이였다. 내 귀중한 주말을 소비하기 싫었다.

올해는 내가 중3반 담임을 하고 있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갔다.
중2가 응원을 7명 정도 왔다. 학교 전통으로 아침에 커피를 타주면서 응원을 하고, 점심 때 배식을 도와주신다.
자신들도 내년에 받는 혜택이지만, 소중한 주말을 반납해주신 분들이 감사했다.
점심시간 10분 전에 딱 맞춰서 간 내가 괜히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시험장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경험인데.... 난 역시 계산적이야...

점심 때 어머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시험이 어려웠다고 하소연하시는데 마치 내 일 같이 갔았다.
속상해 하는 마음이 느껴지니까, '긴장이 많이 되시는구나' 새삼 느꼈다.
평소 학교에서 어머니들을 보았을 때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데 왠지 색달랐다.

같이 담임을 하시는 용준샘이 청국장집에서 단체로 식사를 주문했다.
시레기국과 반찬 여러가지에 1명당 5000원 꼴인데 꽤 맛있었다.

중3 어머님들은 시험문제를 상의하면서 밥과 차를 먹고 4교시를 치르러 갔다.
응원오신 중2 어머님들이 거의 가시고, 3시까지 시험이 끝나길 기다렸다.
용준샘 차에서 기다렸는데, 옆에 중2분이랑 같이 담소를 나눴다.
다른 때같으면 시간이 아깝다고 밖에 나가서 팟캐스트를 듣거나 책을 봤을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괜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끝까지 남으신 분들에 대한 배려라고 할까? 공부 어렵다는 하소연도 듣고, 영어도 좀 알려드리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원래는 남는 시간에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볼려고 했는데... 그냥 포기했다.

어머님들이 시험을 마치고 내려오시길 시험 시작 20분부터 기달렸다.
다른 때같으면 책을 보면서 서있었을텐데, 오늘은 추운 날씨에 그냥 서있었다.
누군가를 응원와서 기다리는 마음이 이런 거구나 싶다.

검정고시 학원에서 재빠르게 답지를 작성해 나눠줬다. 참 훌륭한 마케팅이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님들이 내려와서 시험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을 이야기했다.
마지막 과목 '도덕'이 쉬워서 기분이 다들 편안해 하셨다.

야학이 있는 외대 근처로 이동해 회식을 했다.
담임인 나도 긴장이 풀리는데 어머님들은 오죽 하실까 싶었다.
안 되면 어쩌나 싶다가도, 내심 기대를 하시는 분위기다.
시험끝나고 2주 동안 방학인데 정말 푹 쉬었으면 좋겠다.
방학을 한다면 엄청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공부에 대한 열정때문에 빨리 학교가 가고 싶다는 분이 꽤 많았다.
'몇 십년 동안 쌓인 공부에 대한 갈증이 이런거구나' 싶다.

옆에 앉으신 어머님 한 분이 갑자기 팔찌를 채워주셨다.
'건강팔지에요. 저는 또 있어요' 하시는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담임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해 항상 미안했는데 그래도 인정받는 것 같다.
비싼 거 같아서 풀러서 돌려드리고 싶었지만, 괜히 마음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감사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 한거 같다.

20180407_231327.jpg

내 담당과목인 사회가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대학생들도 헷갈려하는 수요공급곡선이 나왔으니...
기출문제 위주로 수업을 했는데 평소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들이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다른 과목들이 쉬었다고 한다. 중2 사회수업은 좀더 꼼꼼히 수업을 해야겠다.

오늘 첫 검시응원을 하면서, 내가 야학교사를 왜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하고 싶어 시작했는데, 점차 다양한 것들을 느끼고 있다.
요즘 내가 가장 크게 와닿는 것은 '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얼마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지'이다.
각박한 사회를 살고 내 주변에는 별로 사람이 없는데, 야학교사로 자원봉사하는 것은 마음을 참 따뜻한다.

토요일 하루를 꼬박 여기에 쏟았지만 많은 것들을 느낀 새로운 하루였다.
내일도 즐겁게 화이팅~!

오늘은 검정고시 있는날 ! - 야학 선생님 경험담 1)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