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기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나한테도 좋은 작품을 여러 개 소개 시켜 주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오소마츠상(おそ松さん)이다. 이 만화는 오소마츠군(おそ松くん)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마츠노 가(家)의 여섯 쌍둥이의 일상을 다룬 개그 만화다. 오소마츠상을 처음 보고나서 꽤 괜찮기에, 원작인 오소마츠군(한국판 : 육家네 6쌍둥이)도 찾아서 보았는데, 역시 개그가 일품이었다. 다만 80년대 작품이라 2010년대 작품인 오소마츠상보다는 식상한 느낌이었다. 식상해도, 그런 만화들을 한국에서 재방영해주는 판으로 시청하면서 자라온 나로서는 추억에 빠지면서 충분히 즐거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소마츠군과 오소마츠상이 어떤 차이가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둘 다 웃기는 만화지만, 그 속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조금 달랐다. 오소마츠군은 일본에서 쇼와 시대(昭和 時代, 1926~1989)에 방영된 작품이고, 오소마츠상은 헤이세이 시대(平城 時代, 1989~)에 방영된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만화라고 할지라도 시청자가 받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오소마츠군이 자라서 오소마츠상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쇼와 시대 개그는 이제 옛날 거라구!’라고 외치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걱정한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잠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오소마츠상 시리즈를 처음 보더라도, 과거 시대의 추억을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과거의 화려했던 만화 세계 속에서 미소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새롭게 펼쳐질 장면들 앞에 웃을 준비를 한다. 또한 자신도, 만화도 더 성장하게 되었음에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우리 세대의 절망이 그대로 들어나 있다. 일본에만 한정지을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그렇다. 오소마츠상의 여섯 쌍둥이는 사토리 세대(さとり 世代)는 아니지만, 그런 요소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취업에 상당히 달관하며, 사회에 스며드는 듯, 스며들지 않는 듯, 애매하게 녹아내리고 있다. 계속 부모님 옆에 붙어살고 있지만, 미래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즐겁고,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누가 보기에는 그저 한심한 니트족일 뿐이다. 그러나 도대체 니트는 왜 생기는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묶어 왜 니트족이라고 했는가. 그런 걸 생각해보면 캐릭터들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쇼와 시대와 헤이세이 시대의 여섯 쌍둥이들을 비교해보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더 풍족한 삶을 살고 있으며, 반세기 넘도록 평화로운 세상 안에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다른 전쟁들(취업 등)에서 패배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신음하고 있다. 아베 노믹스로 취업률이 아무리 올라간다고 할지라도, 이미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더 이상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만의 시대를 살고 싶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들을 투영한 것이 헤이세이의 오소마츠상이다. 그러나 이제 이 헤이세이 시대도 내년이면 끝난다. 이제 연호를 바꾸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모른다. 새롭게 시작할 시대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단지 이웃나라의 현상이라고 넘어가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도 사실상 같다. 촛불 이후에 펼쳐질 세상들 속에서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 그들만의 세계는 영원할 것이다. 그 세계를 좋게 생각하던, 그렇지 않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