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사회의 깊고 은밀한 곳에서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다. 그것은 언론들에 의해 양지로 떠오르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때 빛이 등장한다. 빛은 어둠을 추적하고 결국에는 사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찬사와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전혀 나무랄 게 없어 보인다. 범죄자는 벌을 받거나 사회에서 사라지고 탐정은 명예와 부를 얻는다. 그리고 사회는 안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우린 늘 본질을 보지 못한다. 셜록 홈즈가 잭 더 리퍼를 잡으면 영국 사회는 안정될까?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잭 더 리퍼를 잡든 잡지 않든 그 사회는 원래 불안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단순히 범죄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그것을 해결하는 탐정들한테 열광하지만, 소설 뒤편에 있는 것들에는 숙고하지 못한다. 그럼 우리가 보지 못한 본질과 숙고하지 못한 건 무엇인가? 바로 현실이다. 범죄 소설에서 나오는 범죄는 그 사람의 인성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각각의 범죄는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보여주는 작은 거울이다. 거울을 보고 얼굴이 더러워졌다고 생각되면 씻어서 깨끗하게 만들면 된다. 하지만 우린 그 더러운 얼굴을 보고서도 그저 낄낄거릴 뿐이다. 혹은 더러운 얼굴에 잠시 분노하지만, 탐정이 자그마한 얼룩 하나를 지우면 그것으로 만족해버린다. 거울은 사실상 그대로지만,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범죄소설은 은폐와 축소라는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소설이 그러지는 않는다. 뉴게이트류의 소설에서는 사회적 배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또한 저항을 유도하기도 했다. 단순히 유흥거리에서, 사회 변혁의 도구로 소설이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사회를 유지하기를 원했던 사람들에 의해 좌절되게 된다. 소설이라는 불씨라도 계속 살렸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범죄소설은 사회에 타협했다. 사회문제라는 속성을 제거함으로써 범죄자에 대한 분노 만을, 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여 그에 대한 찬사만을 남기게 했다. 이런 성향은 범죄소설의 한 전형으로 남는다. 후에 등장한 하드보일드 소설이 이것을 어느 정도 희석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사람들에게 범죄소설이란 ‘악덕한 범죄자와 멋진 탐정이 싸우는’ 활극에 지나지 않는다. (하드보일드 소설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고, 탐정의 고결함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보여 준다.’라는 수준에서만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범죄소설이 아예 저항적인 요소를 넣어 보지도 않았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범죄소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 시도했는데, 대표적으로 탐정을 남성이 아니라 여성을 바꾼 경우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탐정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남성으로 향하는데, 그것을 깨뜨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주체적인 여성이 주도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대중을 열광시키면서 또한 바람직하게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젠더룰을 파괴하면서 성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고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기존의 젠더룰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었고, 변화를 쉽게 수용할 사회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범죄소설은 또다시 사회와 손을 잡는다. 여성 탐정이 나오지만, 남성에 순응적인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 다시 가부장에게 돌아가는 여성을 그렸다. 남성 탐정은 즐거움을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그리지만, 여성은 궁핍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젠더를 잠시 이탈한 것처럼 그린다. 즉, 남성 탐정은 당연하지만, 여성 탐정의 추리담은 그저 일탈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옅어지지만, 여전히 결혼하지 않은 늙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것으로 끊임없이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
범죄소설은 이런 식으로 타협하고 본질을 은폐하지만, 결국 그건 우리 눈앞에 보이게 되어있다. 감춘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문학은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에, 애초에 축소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범죄소설은 이를 훌륭하게 해왔고, 지금도 사람들의 시선을 잘 돌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직도 단순한 여흥 거리로 여겨지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을 알기 전에는, 범죄소설을 어떻게 독서 하는지는 순전히 본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런 성향을 알았을때 계속해서 여흥으로만 범죄소설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여흥을 넘어 그것이 감추고 왜곡하고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때야 범죄소설이라는 가면을 벗고, 사회라는 민낯을 보게 될 것이다. <범죄소설의 계보학>은 그 이정표를 세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