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부족.
경쟁사회에서 ‘노력부족’은 어디에 붙여도 그럴싸한 이유가 된다.
취업을 못하면 합격자에 비해 스펙이나 역량을 쌓는 노력이 부족했고, 연애나 결혼을 못하면 자기관리나 이성을 만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한다.
“사회가 너무 각박해서 그래요.” 반박하면,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을 가리키며 다시 얘기한다.
“네 노력이 부족한 거야.”
이 논리는 너무나 강력해서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다.
경쟁에서 이길 때까지 노력하는 수밖에.
‘붉은 노을’을 부른 가수로 누가 떠오르는가?
빅뱅인가 이문세인가?
누구든 당신에게 익숙한 가수가 떠올랐을 것이다.
생각도 그렇다.
어떤 상황을 보면 익숙한 쪽으로 생각한다.
여기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있다.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경쟁 그리고 승자와 패자를 떠올렸다면, 반갑다.
우리는 경쟁에 익숙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다음 질문에 같은 답을 할 확률이 높다.
‘불합격자가 다음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노력.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노력 중이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얼마 전 중2 딸이 10시까지 학원에 있다가 온다는 과장님의 말을 들었다.
그 딸은 중2부터 왜 그렇게 늦게까지 공부할까?
나중에 그녀가 취업경쟁에서 졌을 때 ‘노력이 부족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나는 못하겠다.
출퇴근 시간 신도림역.
일명 지옥철이 강림하는 이 시간대엔 가만 있어도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쓸려 나간다.
우리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는게 그렇다.
가만 있어도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쓸려간다.
초중고-대학-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삶의 방식은 분명 주류다.
원래는 힘 빼고 가만 있으면 그대로 흘러 가야 한다.
하지만 이젠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온몸에 힘을 주고 달려야 한다.
혹시 주류가 가는 방향이 바뀌었는데 우리가 착각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노력이 필요한 걸까?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하루하루 ‘특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다음 세대에게 빚을 지고 있다.